윤동주 :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집필 의도 및 감상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반이었던 윤동주(尹東柱)는 그 동안 써 놓은 시 19편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다. 총 77부 한정판으로 하여 <병원>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려고 했으나 시집 제목이 좋지 못하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시집명을 고치었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 <슬픈 족속>, <십자가> 등이 일제 검열에 통과하기 어렵겠다는 이양하(李敭河) 교수의 충고로 시집 출판을 포기하고 수제본(手製本) 시집 3권을 만들었다. 그 중 한 권은 이양하 교수에게, 다른 한 권은 후배 정병욱(鄭炳昱 ; 1922~1982)에게 주었는데, 결국 정병욱에게 준 시집이 살아남아 해방 후 1948년에 유고 시집(遺稿詩集)으로 발간되어 유동주란 시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서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로 윤동주 시 세계의 모든 요소가 이 한 편에 반영되어 있다. 윤동주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美學)인데, 시대 현실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인생 태도가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여 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순교자적 의식은 ‘부끄러움’의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굳은 의지와 결의를 <서시>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의 모티프가 되는 시어는 ‘부끄럼•죽음•별’인데, ‘부끄럼’은 현실에 대한 시적 자아의 반응이고, ‘죽음’은 수단으로서의 자기 희생을 뜻하며, ‘별’은 시적 자아가 목표로 삼아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뜻한다. 이 세 시어야말로 윤동주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윤동주의 시 정신을 분명하게 상징한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부끄러움 없는 삶을 소망함.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참여적, 자기 성찰적, 감각적.
어조 : 고백적, 의지적 어조.
이 시를 이해하는 관점 : 반영론적 관점.
시상 전개 방법 (제1연) : 시간 이동에 따른 전개.
[현재(제1,2행)→과거(제3,4행)→현재(제5,6행)→미래(제7,8행)]
창작 연월일 : 1941년 11월 20일.
출전 :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시어 및 구절 풀이
죽는 날까지 ㅡ 평생, 일생 동안, 살아 있는 동안.
하늘 ㅡ 1) 절대적 가치관의 표상. 2) 자기 성찰(自己省察)과 반성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러러 ㅡ 시적 자아가 지상의 현실에 위치하여 천상(天上)의 영원한 가치를 찾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시대 현실 속에서 치욕적인 자세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청교도적인 자세를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끝까지 자기의 양심과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인 스스로의 결의와 소망을 나타낸 의지의 표명이다. ‘ ~없기를’ 다음에 ‘기원한다’, 혹은 ‘바란다’가 생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이 구절은 <맹자(孟子)>의 ‘진심장구(盡心章句)’ 중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제2락인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ㅡ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 남에게 부끄럼이 없는 것”의 구절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ㅡ 1) 섬세한 심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2) ‘잎새에 이는 바람’은 보통 사람은 인식하기 어려운 미세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그 바람이 지금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앞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리한 시인의 감각으로 예감하고 있다. 3) 시적 자아는 시대 현실과 맞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4) 불안의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현실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여 시를 통해 이것을 나타내고,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미래상(未來像)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플라톤이 이상국(理想國)의 제도와 구조를 설명한 저서 <국가>에서 주장한 ‘시인 추방론(追放論)’은 이와 같은 시인의 본질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영원한 이상을 추구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상국’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국’에 시인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이상국’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통해 윤동주는 시인으로서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ㅡ 시에 나온 별은 대체로 ‘이상•동경•영원성•아름다움’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구절의 ‘별’은 ‘영원한 가치’를 뜻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원한 가치를 기리는 심정으로’로 풀이할 수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 ㅡ 이 시가 씌어진 일제 말엽의 암흑기에 우리 민족이 처한 곤혹(困惑)한 시대 상황을 말한다.
사랑해야지 ㅡ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죽어가는 민족을 살리고 싶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나한테 주어진 길 ㅡ ‘길’은 시적 자아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시적 자아에게 명령한 소명 의식(召命意識)을 말한다. 그 ‘길’이란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자기 희생의 순교자적 의지를 말한다.
걸어가야겠다 ㅡ 확신과 결의를 표명하여 시적 자아의 미래 지향적 실천 의지를 분명히 나타낸다.
제2연 ㅡ 한 행으로 된 제2연을 독립시킨 것은 제1연의 주관적 관점이 제2연에 와서 객관적 관점으로 바뀌는 것을 구분하여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ㅡ ‘오늘 밤’과 ‘바람’은 암흑의 시대 현실을, ‘별’은 이상과 동경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객관적 관점에서 고도의 상징으로 시화(詩化)한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구절을 윤동주의 시 구절 중 절조(絶調)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