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師品(법사품) 第十
오늘은 법화경 28품 중에서 열번째 품인 법사품을 공부 할 차례입니다.
법사품은 말씀 그대로 불교에서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
법을 설하는 사람, 법을 전하는 사람, 부처님 법을 출판하는 사람,
또 부처님 법 책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또 쓰는 사람, 읽는 사람,
한 구절이라도 외우고 다니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불교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전부 법사입니다.
상당히 법사의 의미가 광범위합니다.
오종 법사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법사는
꼭 어떤 형식을 갖추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어떤 교리를
강의 하거나 설하는 그런 분을 법사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 법화경에서 밝히고 있는 법사는 오종 법사라고 해서
경전을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법사입니다.
수지(受持)이지요.
그 다음에 ‘독(讀)’, 읽기만 해도 법사입니다.
그 다음에 읽다 보면 외우게 되지요.
한 구절도 상관없습니다.
다 외울 수는 없는 거지요.
또 제목만 외워도 역시 법사입니다.
그래서 수지 독송 위인 해설!
해설하는 거지요. 경전을 풀이합니다.
경전을 그대로 읽어 주거나, 뜻을 각자 소화한데로 읽어주거나 설명해주는 것,
이것이 역시 법사에 해당되지요.
그 다음에 사경, 서사인데 요즈음으로 치면 뜻이 광범위하지요.
집에서 혼자 기도 삼아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도 해당됩니다.
또 이것을 컴퓨터로 사경하는 것도 역시 법사에 해당되고,
그것이 경 전체든지 아니면 요약한 것이든지 중요한 말만 모으던지
이런 것들도 역시 법사에 해당됩니다.
그것이 전부 사경에 해당 되거든요.
이런 다섯 가지의 관계가 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법사입니다.
이것이 법사의 바른 뜻입니다.
우리가 법사 품에서 그런 것들도 바르게 이해해 주시고,
어디에 해당 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법사다’라고 자칭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다섯 가지에만 해당되면 법사니까요.
여기 법사품의 개요를 보면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법화경을 수지하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 가지고
칠보 탑에 모시고, 공양·공경·찬탄하는 그런 불사를 하는 법사의 희유한 찬탄과,
또 법화경 한 게송 한 구절이라도 듣고 기뻐하는 이에게 까지도
모두 부처의 삶을 살게 된다는 수기를 하신다는 그런 이야기인데
현재도 마찬가지요.
미래 불자들도 역시 똑같이 해당 된다고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또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서사 위인해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장엄으로서 자신을 장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훌륭한 장엄거리를 가지고 몸을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모습으로서 내 자신을 꾸밀 수는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법화경의 말씀대로라면
부처님의 장엄으로서 우리들의 장엄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떤 값비싼 금 은 보석을 몸에 두르고,
무슨 수술을 수십 번 해가면서 얼굴을 뜯어 고치고,
또 온갖 그런 귀금속을 달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부처님의 장엄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요.
정말 부처님의 장엄으로서 장엄할 수 있는,
인격적으로 부처님처럼 된다고 하는 거지요.
부처님 같은 인격이 됐다면
거기에 무슨 어떤 외적 장엄이나 시각적인 장엄이 필요하겠습니까?
저절로 거기서 품격이 우러나오는 것이고,
말씀과 행동과 하는 일들이 전부 보기만 해도 사람들을 감동 줄 수 있는
그것이 부처님으로서 장엄한 것이다 이런 표현입니다.
여래께서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다.
부처님이 양 어깨에다 그 사람을 짊어지고 다닌다 이 말입니다.
모시고 다닌다 이 뜻이지요.
또 여래의 사자다, 부처의 심부름꾼이다 이렇게 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을 수지·독송·서사·해설하는 사람은
여래의 일을 하게한 사람이라고,
부처님이 해야 할 일을 이 사람이 하고 있다. 이렇게 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화경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법사품을 보면
이런 입장에 있어서는 상당히 자랑스럽기도 하고 자긍심도 생길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법사품이기도 합니다.
또 법사로서는 자세가 필요한데
뒤에 경문에도 나오겠지만 먼저 조금만 소개해 드리면
대자대비의 집속에서 ‘자실인의(慈室忍衣)’라,
불교 글을 쓸 때 법화경에 있는 말을 잘 써요.
‘자실인의’, 자비의 집과 인욕의 옷을 입고 그랬습니다.
인욕의 옷을 입고 자비의 집에 앉은 그런 입장에서,
만법이 개공한 것을 법을 설하는 자리로 삼아서 법화경을 설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자비와 인욕과 모든 존재를,
제법(諸法)을 개공(皆空)으로 볼 줄 아는 것,
제법공상으로 볼 줄 아는 그것이 일단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만
그것이 불교에 발심한 사람이고,
그 발심이 기본이 된 상태에서 법화경을 설해야 그것이 먹혀든다고 합니다.
어떤 물욕적인 그런데 푹 빠져있으면서 입으로는 법화경을 이야기한다면
참 잘 안 맞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우리의 수행의 수준이 그쯤이라면 또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법화경에서는 “자비의 집속에서 인욕의 옷을 입고,
만법이 다 공한 그런 법좌에 올라서 법화경을 설하라.”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모습이겠지요.
그 다음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일체보살의 무상정등각이 이 경 속에 속해있기 때문에 ‘비요지장’이다.
아주 비밀하고 요긴한 그런 창고다.
그래서 함부로 설해주지 말라는 이런 분부도 법사품에 있습니다.
또 법화경을 모시는 방법으로서는
법화경을 수지독송하고 해설하거나,
경이 있는 곳에는 칠보탑을 세우고 그 안에 경을 모시고
부처님 같이 공경하라는 그런 표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데는 법화경이 있는 곳에는 더 이상 칠보 탑을 세울 필요가 없다.
법화경 그것은 곧 부처님의 진신(眞身)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이 부처님이 진신이다, 참 모습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을 아주 극찬을 한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이런 것을 나중에 간단한 비유로서 법화 칠유(法華七喩)에 들지 않지만,
또 한 가지 법화경을 수지 독송 서사 하는 사람은 정각에 가장 가깝다,
마치 우물물을 팔 때 처음에는 마른 흙이지요.
그리고 차츰차츰 파면은 축축한 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축축한 흙을 더 파 들어가서 물기가 많이 섞여있는 흙을 만나면
물이 솟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와 같이
우리가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서사 해설하고, 지니고 다니고
늘 가까이 함으로써 머지않아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런 내용으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법사품 제목을 보면 전체를 일관해서 알 수가 있는데,
수행인이 경전을 듣는 공덕, 또 범인(凡人)이 경전을 수지하는 공덕,
죄를 얻은 사람과 복을 얻은 사람, 그리고 경전을 찬탄하구요.
경전을 설하는 규칙 이런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제 법화경의 그 수기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드리면서
앞부분을 소개를 해 드렸는데,
오늘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 법화 칠유(法華七喩)란?
불교의 교리를 비유를 통하여 설명한 것으로,
첫째 화택유(火宅喩)는 불타는 집에 비유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집에 불이 나자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식들이 좋아하는 물건 이름을 부르며 빨리 나와 가져가라고 했다.
이 사람은 세 가지의 수레에 물건을 가져왔는데,
이들 수레는 삼승(三乘), 즉 성문·독성·보살을 뜻한다.
둘째 비유 궁자유(窮子喩)는
어떤 사람의 아들이 어려서 가출하였는데,
아들을 찾아다녔으나 아들은 아버지가 두려워서 늘 도망다녔다.
아버지는 꾀를 내어 아들이 친아들임을 사람들에게 밝히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상속하자 아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아들은 이승의 사람이며, 재산은 대승임을 비유하고 있다.
셋째 비유 약초유(藥草喩)는
같은 수분을 취하면서도 약초가 크고 작은 것이 있으며,
나무도 작은 것 큰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각자가 성장하는 정도는 노력에 달려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넷째 비유 화성유(化城喩)는 성(城)을 만든 이야기이다.
어떤 지도자가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가다 힘든 길을 지나가게 되자
환상의 성을 만들어 고달픔을 잊게 한 뒤 진짜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다섯째 비유는 의주유(衣珠喩)로,
친한 친구가 취했을 때 옷 속에 귀한 보물을 넣었으나
친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난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여섯째 비유는 계주유(髻珠喩)로,
전륜성왕의 상투 속에 있는 보석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곧 세상 사람이 다 믿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일곱째 비유 의자유(醫子喩)는
독이 든 음식을 먹고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약을 마시게 하는 방편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고 알리게 하여
아이가 마음을 바로잡아 약을 마시고 되살아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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