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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臺] 지구에 있는 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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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하이웨이[威海衛]라고도 한다. 산둥 반도의 북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명대(明代) 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이곳에 위소(衛所)를 설치했기 때문에 웨이하이웨이라고 하였으며, 청대(淸代)에 위소를 폐지한 후에도 이 명칭이 계속 쓰였다. 랴오둥[遼東] 반도의 뤼순[旅順]과 마주보는 보하이[渤海]만 입구의 요지에 위치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전면(前面)에 류궁섬[劉公島]이 천연의 방파제를 이루며, 수심 12m의 부동항이다. 일찍이 청나라 베이양함대[北洋艦隊]의 근거지였으나 1895년 청 ·일전쟁 때 일본군이 점령하였다. 전후 3국 간섭의 보상으로 독일이 자오저우만[膠州灣]을, 러시아가 뤼순 ·다롄[大連]을 조차(租借)한 데 자극받아, 영국은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웨이하이웨이의 조차를 강청했다. 그 결과 1898년 영국은 류궁섬을 포함한 전 항만을 25년간의 기한으로 조차하여 영국 동양함대의 기지로 삼았고 그 일부를 자유항으로서 개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또다시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 현재 항구의 남서쪽에는 중국 해군기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배후지가 협소한데다가 부근의 옌타이와 칭다오[靑島]에 밀려 무역은 부진하며 지방적 항만으로 머물러 있다. 시가에는 유지(油脂)공업을 비롯하여 방적 ·주조 ·기계공업 및 선박수리공장 등이 입지한다. 또한 옌타이 ·다롄으로 통하는 항로의 발착점, 옌타이와 칭다오를 잇는 육상교통의 요지를 이룬다. |
이곳은 영성시 용안항이있는 평택과 위도가 비슷하고 우리나라와 가장 기까운곳으로 중국의 희망봉이란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이곳에 사람들을 보내고 친히 이곳에 왔다는곳
13세에 즉위하여 39에 천하를 통일하고 49세에 죽었다나...불로초도 결국은 효험이 없었나?
진시황 임시궁궐 앞에있는 마차에서
진 시황이 타고 온 마차인가?
황제가 머므른 시 황전 내부
시 황전 입구
시 황전 옆의 불상
들어가는 문
해변이 무척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 곳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곳-호운각
진 시황 동상인가?
조금 내려와서 정영전이라는 건물에는 유명한 인물들을 동상으로 해놓은 곳이있다
편작-동 서양의 유명인사들의 동상을 만들어 전시하는곳-반기문 총장 동상도있다
노자
글자를 만들었다는 창힐
화타
왕희지
도원명
두보
내부 전경
건물 입구의 안내판
건물 앞의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