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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음 경 M5 5. Anaṅgaṇasuttaṃ (5) Blemishes
http://www.metta.lk/tipitaka/2Sutta-Pitaka/2Majjhima-Nikaya/Majjhima1/005-anangana-sutta-e1.html
57.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āyasmā sāriputto bhikkhū āmantesi – ‘‘āvuso, bhikkhave’’ti.
‘‘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ṃ.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Cattārome, āvuso,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cattāro?
Idhāvuso, ekacco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Idha panāvuso, ekacco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hāvuso, ekacco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Idha panāvuso, ekacco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2. "도반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반들이여,
①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②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③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④ 여기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yaṃ 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sāṅgaṇānaṃyeva sataṃ hīnapuriso akkhāyati.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sāṅgaṇānaṃyeva sataṃ seṭṭhapuriso akkhāyati.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yaṃ 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anaṅgaṇānaṃyeva sataṃ hīnapuriso akkhāyati.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anaṅgaṇānaṃyeva sataṃ seṭṭhapuriso akkhāyatī’’ti.
여기서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수승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수승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58. Evaṃ vutte, āyasmā mahāmoggallāno āyasmantaṃ sāriputtaṃ etadavoca –
‘‘Ko nu kho, āvuso sāriputta, hetu ko paccayo yen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sāṅgaṇānaṃyeva sataṃ eko hīnapuriso akkhāyati, eko seṭṭhapuriso akkhāyati?
Ko panāvuso sāriputta, hetu ko paccayo yen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anaṅgaṇānaṃyeva sataṃ eko hīnapuriso akkhāyati, eko seṭṭhapuriso akkhāyatī’’ti?
3. 이렇게 설했을 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다시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으로 흠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까?"
5. [싸리뿟따]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애써 정진하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을 오염시킨 채 죽어갈 것입니다.
59.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na chandaṃ janessati na vāyamissati na vīriyaṃ ārabhissati tassaṅgaṇassa pahānāya;
so sarāgo sadoso samoho sāṅgaṇo 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4. "도반이여, 그중에서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정진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발우가 먼지나 때로 덮여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닦아내지 않고 먼지구덩이에 방치해 둔다면
벗이여, 그 청동 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더러워지고 때가 끼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rajena ca malena ca pariyonaddhā.
Tamenaṃ sāmikā na ceva paribhuñjeyyuṃ na ca pariyodapeyyuṃ [pariyodāpeyyuṃ (?)],
rajāpathe ca naṃ nikkhipeyyuṃ.
Evañhi sā, āvuso, kaṃsapāti aparena samayena saṃkiliṭṭhatarā assa malaggahitā’’ti? ‘‘Evamāvuso’’ti.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먼지에 뒤덥이고 녹이 슬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닦게 하지도 않고 먼지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 더러워지고 더 녹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6.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있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애써 정진하지 않습니다.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이 오염된 채 죽을 것입니다.”
‘‘Evameva kho, 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na chandaṃ janessati na vāyamissati na vīriyaṃ ārabhissati tassaṅgaṇassa pahānāya;
so sarāgo sadoso samoho sāṅgaṇo 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있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정진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chandaṃ janessati vāyamissati vīriyaṃ ārabhissati tassaṅgaṇassa pahānāya;
so arāgo adoso amoho anaṅgaṇo a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5. "도반이여, 그중에서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rajena ca malena ca pariyonaddhā.
Tamenaṃ sāmikā paribhuñjeyyuñceva pariyodapeyyuñca, na ca naṃ rajāpathe nikkhipeyyuṃ.
Evañhi sā, āvuso, kaṃsapāti aparena samayena parisuddhatarā assa pariyodātā’’ti? ‘‘Evamāvuso’’ti.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먼지에 뒤덥이고 녹이 슬면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고 닦게 하고 먼지구덩이에 던져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 깨끗해지고 더 광이 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Evameva kho, āvuso, yvāyaṃ puggalo sāṅgaṇova samāno
‘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chandaṃ janessati vāyamissati vīriyaṃ ārabhissati tassaṅgaṇassa pahānāya;
so arāgo adoso amoho anaṅgaṇo a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있으면 '내 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10. [목갈라나] “벗이여, 그렇습니다. 벗이여,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을 쓰게 됩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활동을 기울임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이 오염된 채 죽을 것입니다.”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subhanimittaṃ manasi karissati,
tassa subhanimittassa manasikārā rāgo cittaṃ anuddhaṃsessati;
so sarāgo sadoso samoho sāṅgaṇo 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6. "도반이여, 그중에서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 하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parisuddhā pariyodātā.
Tamenaṃ sāmikā na ceva paribhuñjeyyuṃ na ca pariyodapeyyuṃ, rajāpathe ca naṃ nikkhipeyyuṃ.
Evañhi sā, āvuso, kaṃsapāti aparena samayena saṃkiliṭṭhatarā assa malaggahitā’’ti? ‘‘Evamāvuso’’ti.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이 나는데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도 않고 닦게 하지도 않고 먼지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 그릇은 나중에 더러워지고 녹슬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Evameva kho, 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subhanimittaṃ manasi karissati, tassa subhanimittassa manasikārā rāgo cittaṃ anuddhaṃsessati;
so sarāgo sadoso samoho sāṅgaṇo saṃkiliṭṭhacittokālaṃkarissati.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없으면서도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 하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을 가지고 성냄을 가지고 어리석음을 가지고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입니다."
‘‘Tatr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subhanimittaṃ na manasi karissati,
tassa subhanimittassa amanasikārā rāgo cittaṃ nānuddhaṃsessati;
so arāgo adoso amoho anaṅgaṇo a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7. "도반이여, 그중에서 어떤 사람은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그는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을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릭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parisuddhā pariyodātā.
Tamenaṃ sāmikā paribhuñjeyyuñceva pariyodapeyyuñca, na ca naṃ rajāpathe nikkhipeyyuṃ.
Evañhi sā, āvuso, kaṃsapāti aparena samayena parisuddhatarā assa pariyodātā’’ti? ‘‘Evamāvuso’’ti.
‘‘Evameva kho, āvuso, yvāyaṃ puggalo anaṅgaṇova samāno
‘natthi me ajjhattaṃ aṅga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subhanimittaṃ na manasi karissati, tassa subhanimittassa amanasikārā rāgo cittaṃ nānuddhaṃsessati;
so arāgo adoso amoho anaṅgaṇo asaṃkiliṭṭhacitto kālaṃ karissati.
도반이여,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이 나면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고 닦게 하고 먼지구덩이에 던져버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그 청동그긋은 나중에 더 깨끗해지고 광이 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그와 같이 흠이 없으면 '내 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을 것이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이 예상됩니다.
그는 탐욕 없이 성냄 없이 어리석음 없이 흠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입니다."
‘‘Ayaṃ kho, āvuso moggallāna, hetu ayaṃ paccayo yen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sāṅgaṇānaṃyeva sataṃ eko hīnapuriso akkhāyati, eko seṭṭhapuriso akkhāyati.
Ayaṃ panāvuso moggallāna, hetu ayaṃ paccayo yenimesaṃ
dvinnaṃ puggalānaṃ anaṅgaṇānaṃyeva sataṃ eko hīnapuriso akkhāyati, eko seṭṭhapuriso akkhāyatī’’ti.
8. "도반 목갈라나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으로 흠이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다시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으로 흠이 없는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불리고, 다른 사람은 수승한 사람이라 불립니다."
60. ‘‘Aṅgaṇaṃ aṅgaṇanti, āvuso, vuccati. Kissa nu kho etaṃ, āvuso, adhivacanaṃ yadidaṃ aṅgaṇa’’nti?
‘‘Pāpakānaṃ kho etaṃ, āvuso, akusalānaṃ icchāvacarānaṃ adhivacanaṃ, yadidaṃ aṅgaṇa’’nti.
9. "도반이여, '흠', '흠'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도반이여, 흠이란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15. [싸리뿟따] “벗이여, 더러움이라고 하는 말은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욕망의 영역을 이르는 것입니다.
벗이여, 어떤 수행승이 이와 같이 ‘나는 참으로 죄를 지었지만
수행승들은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르기를 바란다.’라고 욕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승들은 그 수행승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수행승들이 참으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안다.’라고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그가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가 더러움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āpattiñca vata āpanno assaṃ, na ca maṃ bhikkhū jāneyyuṃ āpattiṃ āpanno’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taṃ bhikkhuṃ bhikkhū jāneyyuṃ –
‘āpattiṃ āpanno’ti.
‘Jānanti maṃ bhikkhū āpattiṃ āpanno’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0.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비구들이 '그 비구가 계율을 범했다.'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내가 계를 범했다.'라고 아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āpattiñca vata āpanno assaṃ, anuraho maṃ bhikkhū codeyyuṃ, no saṅghamajjhe’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taṃ bhikkhuṃ bhikkhū saṅghamajjhe codeyyuṃ, no anuraho.
‘Saṅghamajjhe maṃ bhikkhū codenti, no anuraho’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1.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가 계를 범하더라도 '비구들이 남을 눈을 피하여 나를 질책하고,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비구들이 그 비구를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고,
남의 눈을 피하여 질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나를 승가 가운데서 질책하고, 남의 눈을 피하여 질책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āpattiñca vata āpanno assaṃ, sappaṭipuggalo maṃ codeyya, no appaṭipuggalo’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taṃ bhikkhuṃ appaṭipuggalo codeyya, no sappaṭipuggalo.
‘Appaṭipuggalo maṃ codeti, no sappaṭipuggalo’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2.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내게 계를 범하면 나와 동등한 사람이 나를 질책하고,
나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질책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그 비구를 질책하고, 동등한 사람이 질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나와 동등하지 않은 사람이 나를 질책하고, 나와 동등한 사람이 질책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mameva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
na aññaṃ bhikkhuṃ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ā’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aṃ bhikkhuṃ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
na taṃ bhikkhuṃ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
‘Aññaṃ bhikkhuṃ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na maṃ satthā paṭipucchitvā paṭipucchitvā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3.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스승께서는 오직 내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스승께서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법을 설하지 않으시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스승께서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그 비구에게 거듭 질문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스승께서는 다른 비구에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법을 설하시지,
내게 거듭 질문을 하시어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mameva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eyyuṃ,
na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eyyu’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eyyuṃ,
na taṃ bhikkhuṃ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eyyuṃ.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anti,
na maṃ bhikkhū purakkhatvā purakkhatvā gāmaṃ bhattāya pavisant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4.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비구들은 오직 나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고,
다른 비구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비구들은 다른 비구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고
그 비구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다른 비구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고, 나를 앞세워 마을로 탁발을 가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labheyyaṃ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ṃ,
na añño bhikkhu labheyya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labheyya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ṃ,
na so bhikkhu labheyya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ṃ.
‘Añño bhikkhu labhati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ṃ,
nāhaṃ labhāmi bhattagge aggāsanaṃ aggodakaṃ aggapiṇḍa’n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5.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내가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고,
다른 비구가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다른 비구가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고,
그 비구가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가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고,
나는 식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 가장 좋은 물, 가장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bhattagge bhuttāvī anumodeyyaṃ, na añño bhikkhu bhattagge bhuttāvī anumodeyyā’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bhattagge bhuttāvī anumodeyya,
na so bhikkhu bhattagge bhuttāvī anumodeyya.
‘Añño bhikkhu bhattagge bhuttāvī anumodati,
nāhaṃ bhattagge bhuttāvī anumodām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6.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식당에서 공양을 한 뒤 내가 축원 법문을 하고, 다른 비구가 축원 법문을 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식당에서 공양을 한 뒤 다른 비구가 축원 법문을 하고,
그 비구가 축원 법문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식당에서 공양을 한 뒤 다른 비구가 축원 법문을 하고, 내가 축원 법문을 하지 멋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ṃ,
na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ā’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
na so bhikkhu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yya.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ti,
nāhaṃ ārāmagatānaṃ bhikkhūnaṃ dhammaṃ desem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7.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내가 승원에 모인 비구에게 법을 설하고,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기를.'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고,
그 비구가 승원에 모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고,
내가 승원에 모인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ārāmagatānaṃ bhikkhunīnaṃ dhammaṃ deseyyaṃ…pe…
upāsakānaṃ dhammaṃ deseyyaṃ…pe…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yyaṃ,
na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yyā’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yya,
na so bhikkhu ārāmagatānaṃ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yya.
‘Añño bhikkhu ārāmagatānaṃ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ti,
nāhaṃ ārāmagatānaṃ upāsikānaṃ dhammaṃ desem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18. ~ 20.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내가 승원에 모인 비구니들에게 … 청신사들에게 …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고,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고,
그 비구가 승원에 모인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가 승원에 모인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고,
내가 승원에 모인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mameva bhikkhū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garukareyyuṃ (sī. syā. pī.)] māneyyuṃ pūjeyyuṃ,
na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na taṃ bhikkhuṃ bhikkhū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Aññaṃ bhikkhuṃ bhikkhū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na maṃ bhikkhū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mameva bhikkhuniyo…pe… upāsakā…pe…
upāsi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na aññaṃ bhikkhuṃ upāsi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aṃ bhikkhuṃ upāsi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na taṃ bhikkhuṃ upāsikā sakkareyyuṃ garuṃ kareyyuṃ māneyyuṃ pūjeyyuṃ.
‘Aññaṃ bhikkhuṃ upāsi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na maṃ upāsikā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ī’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21. ~ 24. "도반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비구들이 … 비구니들이 … 청신사들이 … 청신녀들이 나만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고,
다른 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비구들이 … 비구니들이 … 청신사들이 … 청신녀들이
다른 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고,
그 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비구들이 … 비구니들이 … 청신사들이 … 청신녀들이
다른 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고,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lābhī assaṃ paṇītānaṃ cīvarānaṃ, na aññ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cīvarāna’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cīvarānaṃ,
na s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cīvarānaṃ.
‘Añño bhikkhu lābhī [lābhī assa (ka.)] paṇītānaṃ cīvarānaṃ,
nāhaṃ lābhī [lābhī assaṃ (ka.)] paṇītānaṃ cīvarāna’n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idhekaccassa bhikkhuno evaṃ icchā uppajjeyya –
‘aho vata ahameva lābhī assaṃ paṇītānaṃ piṇḍapātānaṃ…pe… paṇītānaṃ senāsanānaṃ…pe…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ṃ,
na aññ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nti.
Ṭhānaṃ kho panetaṃ, āvuso, vijjati
yaṃ aññ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ṃ,
na so bhikkhu lābhī assa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ṃ.
‘Añño bhikkhu lābhī [lābhī assa (ka.)]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ṃ,
nāhaṃ lābhī [lābhī assaṃ (ka.)] paṇītānaṃ gilānappaccayabhesajjaparikkhārāna’nti –
iti so kupito hoti appatīto.
Yo ceva kho, āvuso, kopo yo ca appaccayo – ubhayametaṃ aṅgaṇaṃ.
25. ~ 28. "도반이여, 여기 어떤 비구에게
'참으로 내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고,
다른 비구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지 않기를.'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다른 비구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고,
그 비구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고,
내가 수승한 의복을 … 수승한 음식을 … 수승한 거처를 … 병구완을 위한 수승한 약품을 얻지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도반이여, 화냄과 기분 나빠함 둘 다가 흠입니다.
‘‘Imesaṃ kho etaṃ, āvuso, pāpakānaṃ akusalānaṃ icchāvacarānaṃ adhivacanaṃ, yadidaṃ aṅgaṇa’’nti.
도반이여, 흠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61. ‘‘Yassa kassaci, āvuso, bhikkhuno ime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ap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kiñcāpi so hoti āraññiko pantasenāsano piṇḍapātiko sapadānacārī paṃsukūliko lūkhacīvaradharo,
atha kho naṃ sabrahmacārī na ceva sakkaronti na garuṃ karonti na mānenti na pūjenti.
Taṃ kissa hetu? Te hi tassa āyasmato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ap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29. "도반이여, 누구든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비구를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듣게 되면,
비록 그 비구가 숲 속에 머물거나, 외딴 거주처에 머물거나, 탁발음식만을 수용하거나,
집을 차례대로 탁발하거나, 분소의만 입거나, 조악한 옷만을 입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은 그를 존경하지도 존중하지도 공경하지도 숭배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 존자는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parisuddhā pariyodātā.
Tamenaṃ sāmikā ahikuṇapaṃ vā kukkurakuṇapaṃ vā manussakuṇapaṃ vā racayitvā
aññissā kaṃsapātiyā paṭikujjitvā antarāpaṇaṃ paṭipajjeyyuṃ.
Tamenaṃ jano disvā evaṃ vadeyya – ‘ambho, kimevidaṃ harīyati jaññajaññaṃ viyā’ti?
Tamenaṃ uṭṭhahitvā apāpuritvā [avāpuritvā (sī.)] olokeyya.
Tassa sahadassanena amanāpatā ca saṇṭhaheyya,
pāṭikulyatā [paṭikūlatā (ka.), pāṭikūlyatā (syā.)] ca saṇṭhaheyya,
jegucchatā ca [jegucchitā ca (pī. ka.)] saṇṭhaheyya;
jighacchitānampi na bhottukamyatā assa, pageva suhitānaṃ.
예를 들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광이 나는 청동 그릇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주인이 그 안에다 뱀의 사체나 개의 사체나 인간의 사체를 담아서
다른 청동 그릇으로 덮어 다시 시장 안으로 내오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여보시오, 그대가 가져온 귀중하게 보이는 그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들고 열어서 보게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보자마자 즉시 불쾌해지고 혐오하게 되고 넌더리가 나서
배고픈 사람들조차도 식욕이 달아날 것인데 이미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vameva kho, āvuso, yassa kassaci bhikkhuno
ime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ap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kiñcāpi so hoti āraññiko pantasenāsano piṇḍapātiko sapadānacārī paṃsukūliko lūkhacīvaradharo,
atha kho naṃ sabrahmacārī na ceva sakkaronti na garuṃ karonti na mānenti na pūjenti.
Taṃ kissa hetu? Te hi tassa āyasmato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ap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도반이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비구를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듣게 되면,
비록 그 비구가 숲 속에 머물거나, 외딴 거주처에 머물거나, 탁발음식만을 수용하거나,
집을 차례대로 탁발하거나, 분소의만 입거나, 조악한 옷만을 입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은 그를 존경하지도 존중하지도 공경하지도 숭배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 존자는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62. ‘‘Yassa kassaci, āvuso, bhikkhuno ime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kiñcāpi so hoti gāmantavihārī nemantaniko gahapaticīvaradharo,
atha kho naṃ sabrahmacārī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aṃ kissa hetu? Te hi tassa āyasmato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30. "도반이여, 누구든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려버린 비구를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듣게 되면,
비록 그 비구가 마을 안에 살거나, 공양청에 응하거나, 장자들이 준 [값비싼] 가사를 입더라도,
동료수행자들은 반드시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 존자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려버린 것을 보거나 듣기 때문입니다.
Seyyathāpi, āvuso, kaṃsapāti ābhatā āpaṇā vā kammārakulā vā parisuddhā pariyodātā.
Tamenaṃ sāmikā sālīnaṃ odanaṃ vicitakāḷakaṃ [vicinitakāḷakaṃ (ka.)]
anekasūpaṃ anekabyañjanaṃ racayitvā aññissā kaṃsapātiyā paṭikujjitvā antarāpaṇaṃ paṭipajjeyyuṃ.
Tamenaṃ jano disvā evaṃ vadeyya – ‘ambho, kimevidaṃ harīyati jaññajaññaṃ viyā’ti?
Tamenaṃ uṭṭhahitvā apāpuritvā olokeyya.
Tassa saha dassanena manāpatā ca saṇṭhaheyya, appāṭikulyatā ca saṇṭhaheyya,
ajegucchatā ca saṇṭhaheyya; suhitānampi bhottukamyatā assa, pageva jighacchitānaṃ.
예를 들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깨끗하고 광이 나는 청동 그릇이 있다고 합시다.
주인이 그 안에다 윤기 흐르는 흰쌀밥과 여러 가지 국과 여러 가지 반찬을 담아서
다른 청동 그릇으로 덮어 다시 시장 안으로 내오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여보시오, 그대가 가져온 귀중하게 보이는 그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들고 열어서 보게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보자마자 즉시 유쾌해지고 좋아하게 되고 흠미를 느껴
배불리 먹은 사람들조차도 구미가 동할 것인데 하물며 배고픈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vameva kho, āvuso, yassa kassaci bhikkhuno
ime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a,
kiñcāpi so hoti gāmantavihārī nemantaniko gahapaticīvaradharo,
atha kho naṃ sabrahmacārī sakkaronti garuṃ karonti mānenti pūjenti.
Taṃ kissa hetu? Te hi tassa āyasmato pāpakā akusalā icchāvacarā pahīnā dissanti ceva sūyanti cā’’ti.
도반이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려버린 비구를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듣게 되면,
비록 그 비구가 마을 안에 살거나, 공양청에 응하거나, 장자들이 준 [값비싼] 가사를 입더라도,
동료수행자들은 반드시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그 존자가 이런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려버린 것을 보거나 듣기 때문입니다."
63. Evaṃ vutte, āyasmā mahāmoggallāno āyasmantaṃ sāriputtaṃ etadavoca –
‘‘upamā maṃ, āvuso sāriputta, paṭibhātī’’ti. ‘‘Paṭibhātu taṃ, āvuso moggallānā’’ti.
31. 이와 같이 말했을 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내게도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그것을 말해 보십시오."
‘‘Ekamidāhaṃ, āvuso, samayaṃ rājagahe viharāmi giribbaje.
Atha khvāhaṃ, āvuso,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rājagahaṃ piṇḍāya pāvisiṃ.
Tena kho pana samayena samīti yānakāraputto rathassa nemiṃ tacchati.
Tamenaṃ paṇḍuputto ājīvako purāṇayānakāraputto paccupaṭṭhito hoti.
Atha kho, āvuso, paṇḍuputtassa ājīvakassa purāṇayānakāraputtassa evaṃ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aho vatāyaṃ samīti yānakāraputto imissā nemiyā imañca vaṅkaṃ imañca jimhaṃ imañca dosaṃ taccheyya,
evāyaṃ nemi apagatavaṅkā apagatajimhā apagatadosā suddhā assa [suddhāssa (sī. pī.), suddhā (ka.)]
sāre patiṭṭhitā’ti.
"한때 나는 라자가하에서 기립바자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나는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라자가하로 탁발을 갔습니다.
그때 수레공의 아들 사미띠가 수레밧퀴의 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전에 수레공이었던 빤두뿟따라는 아지와까 수행자가 그 앞에 다가와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전에 수레공이었던 빤두뿟따 아지와까 수행자는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수레공의 아들 사미띠는 이 테의 한쪽으로 굽은 이 부분, 이 뒤틀린 부분, 이 결함 부분을 바로잡아서
한쪽으로 굽은 부분도 없고, 뒤틀린 부분도 없고, 결함도 없이 그 차축에 깔끔하게 정착시킬 것이다.'
벗이여, 그래서 이전에 수레공의 아들로서 사명외도인 빤두뿟따는 만족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건대 이심전심으로 교정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Yathā yathā kho, āvuso, paṇḍuputtassa ājīvakassa purāṇayānakāraputtassa cetaso parivitakko hoti,
tathā tathā samīti yānakāraputto tassā nemiyā tañca vaṅkaṃ tañca jimhaṃ tañca dosaṃ tacchati.
Atha kho, āvuso, paṇḍuputto ājīvako purāṇayānakāraputto attamano attamanavācaṃ nicchāresi –
‘hadayā hadayaṃ maññe aññāya tacchatī’ti.
도반이여, 전에 수레공이었던 빤두뿟따 아지와까 수행자가 생각하던 그대로
수레공의 아들 사미띠는 테의 한쪽으로 굽는 그 부분, 그 뒤틀린 부분, 그 결함 부분을 바로잡았습니다.
그러자 전에 수레공이엇던 빤두뿟따 아지와까 수행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그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훤히 아는 듯이 그것을 바로잡았다.'라고."
[* tacchati: 수선하다. - 참으로/생각건데, 하다야에 의하여 하다야를 정확하게 알고서 수리한다.]
38. 벗이여,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믿음 없이 생계를 위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교활하고 기만하고 사기치고 변명하고, 교만하고 가볍고 수다스럽고 상스럽고, 감관을 수호하지 않고,
식사에 절제를 모르고, 깨어있지 못하고, 수행자의 정신이 없고, 배움에 전념하지 않고, 사치스럽고 태만하고,
퇴락에 앞장서서 멀리 여읨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나태하여 애써 정진하지 않고,
새김을 확립하지 못해 올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해 흩어진 마음을 지니고,
지혜가 없어 아둔한 사람이 있는데,
‘‘Evameva kho, āvuso, ye te puggalā assaddhā, jīvikatthā n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saṭhā māyāvino ketabino [keṭubhino (bahūsu)] uddhatā unnaḷā capalā mukharā vikiṇṇavācā,
indriyesu aguttadvārā, bhojane amattaññuno, jāgariyaṃ ananuyuttā, sāmaññe anapekkhavanto,
sikkhāya na tibbagāravā, bāhulikā sāthalikā, okkamane pubbaṅgamā, paviveke nikkhittadhurā,
kusītā hīnavīriyā muṭṭhassatī asampajānā asamāhitā vibbhantacittā duppaññā eḷamūgā,
32. "도반이여,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으면서도 생계 때문에 집을 나와 출가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속이고 사기치고 들뜨고 오만하고 촐랑대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합니다.
그들은 감각기능의 문을 지키지 않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있음에 전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문의 결실에는 관심이 없고 공부지음을 전혀 존중하지 않으며
사치하고 게으르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閑居)를 멀리 내팽개쳐버리고 태만하고 정진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고
통찰지가 없고 귀머거리와 벙어리 같습니다.
그들을 존자 싸리뿟따는 이 법문으로 이심전심으로 교정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tesaṃ āyasmā sāriputto iminā dhammapariyāyena hadayā hadayaṃ maññe aññāya tacchati.
사리뿟따 존자는 이들에게 맞을 이런 법문을 하여 마음으로 내 마음을 훤히 아는 듯이 바로잡았습니다.
<*사리자 존자는 이런 우둔한 수행자에게 해당되는 법문으로
하다야로서 하다야를 참으로(/생각컨데) 정확하게 알고서 수리합니다/곧게 합니다.>
39. 벗이여,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믿음을 갖추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교활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가볍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상스럽지 않고, 감관을 수호하고, 식사에 절제를 알고,
깨어있고, 수행자의 정신이 있고, 배움에 전념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멀리 여읨에 앞장서서 타락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고, 나태하지 않아 애써 정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집중해서 통일된 마음을 지니고,
지혜가 있어 아둔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Ye pana te kulaputtā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saṭhā amāyāvino aketabino anuddhatā anunnaḷā acapalā amukharā avikiṇṇavācā,
indriyesu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ṃ anuyuttā, sāmaññe apekkhavanto,
sikkhāya tibbagāravā, na bāhulikā na 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
āraddhavīriyā pahitattā upaṭṭhitassatī sampajānā samāhitā ekaggacittā paññavanto aneḷamūgā,
도반이여, 그러나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은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촐랑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각기능의 문을 잘 지키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에 전념합니다.
그들은 사문의 결실을 기대하고 공부지음을 극히 존중하며
사치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퇴보를 멀리 내팽개쳐버리며 한거에는 앞장서고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正知] 집중하며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통찰지가 있고 귀머거리와 벙어리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존자 싸리뿟따의 이 법문을 들으면서
마시듯이 말씀을 듣고, 소화시키듯이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동료 수행자를 악에서 일으켜 선에 세웁니다.
te āyasmato sāriputtassa imaṃ dhammapariyāyaṃ sutvā
pivanti maññe, ghasanti maññe vacasā ceva manasā ca –
‘sādhu vata, bho, sabrahmacārī akusalā vuṭṭhāpetvā kusale patiṭṭhāpetī’ti.
그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이런 법문을 듣고서
그것을 마시듯이 말로 [기쁨을 표현하고], 그것을 먹듯이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장하십니다.
그대는 참으로 동료 수행자들을 해로움[不善]에서 빠져나와 유익함[善]에 굳게 서게 합니다."
Seyyathāpi, āvuso,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sīsaṃnhāto uppalamālaṃ vā
vassikamālaṃ vā atimuttakamālaṃ [adhimuttakamālaṃ (syā.)] vā labhitvā
ubhohi hatthehi paṭiggahetvā uttamaṅge sirasmiṃ patiṭṭhapeyya,
evameva kho, āvuso, ye te kulaputtā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saṭhā amāyāvino aketabino anuddhatā anunnaḷā acapalā amukharā avikiṇṇavācā,
indriyesu guttadvārā, bhojane mattaññuno, jāgariyaṃ anuyuttā, sāmaññe apekkhavanto,
sikkhāya tibbagāravā, na bāhulikā na sāthalikā, okkamane nikkhittadhurā, paviveke pubbaṅgamā,
āraddhavīriyā pahitattā upaṭṭhitassatī sampajānā samāhitā ekaggacittā paññavanto aneḷamūgā,
te āyasmato sāriputtassa imaṃ dhammapariyāyaṃ sutvā pivanti maññe,
ghasanti maññe vacasā ceva manasā ca –
‘sādhu vata, bho, sabrahmacārī akusalā vuṭṭhāpetvā kusale patiṭṭhāpetī’ti.
33. "도반이여,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머리를 감은 뒤
연꽃 화환이나 장미꽃 화환을 얻으면 두 손으로 받아서 몸의 최상인 머리에 놓는 것과 같이,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사람들은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사기치지 않고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촐랑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각기능의 문을 잘 지키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에 전념합니다.
그들은 사문의 결실을 기대하고 공부지음을 극히 존중하며
사치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퇴보를 멀리 내팽개쳐버리며 한거에는 앞장서고 열심히 정진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正知] 집중하며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통찰지가 있고 귀머거리와 벙어리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리뿟따 존자의 이런 법문을 듣고서
그것을 마시듯이 말로 [기쁨을 표현하고], 그것을 먹듯이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장하십니다.
그대는 참으로 동료 수행자들을 해로움[不善]에서 빠져나와 유익함[善]에 굳게 서게 합니다."
Itiha te ubho mahānāgā aññamaññassa subhāsitaṃ samanumodiṃsū’’ti.
이렇게 두 큰 용들은 서로 간의 훌륭한 대화[金言]를 기뻐했다.
Anaṅgaṇasuttaṃ niṭṭhitaṃ pañcamaṃ.
흠 없음 경(M5)이 끝났다.
부기:
M15
예를 들어, 여인이나 남자가 어리고, 젊고, 장신구를 좋아하고,
맑고 밝은 거울이나 맑은 물의 대야에 자신의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거기에 더러운 것을 보거나 때가 묻은 것을 발견하면,
그녀는 더러운 것이나 때가 묻은 것을 지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거기에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하거나 때가 묻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녀는 ‘나에게 다행한 일이다. 나는 깨끗하다.’라고 만족해 합니다.
‘‘Seyyathāpi, āvuso,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asseva rajassa vā aṅgaṇassa vā pahānāya vāyamati;
no 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eneva attamano hoti – ‘lābhā vata me, parisuddhaṃ vata me’ti.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밝은 거울이나 물 대야의 맑은 물에 비친 자기 얼굴 모습을 살펴보면서
만일 거기서 기미나 여드름을 발견하면 그 기미나 여드름을 제거하기 위해 애를 쓰고,
거기서 기미나 여드름을 찾을 수 없으면
'이것은 내게 이득이야, 이렇게 깨끗하다니.'라고 기뻐합니다.
10. 이와 같이 벗들이여, 수행승이 성찰하면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자신 안에서 모두 버려지지 못한 것을 보면,
그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모두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수행승이 성찰하면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자신 안에서 모두 버려진 것을 보면,
그는 밤낮으로 착하고 건전한 상태에서 공부하며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Evameva kho, āvuso, sace bhikkhu paccavekkhamāno
sabbepime pāpake akusale dhamme appahīne attani samanupassati,
tenāvuso, bhikkhunā sabbesaṃyeva imes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vāyamitabbaṃ.
Sace panāvuso, bhikkhu paccavekkhamāno
sabbepime pāpake akusale dhamme pahīne attani samanupassati,
tenāvuso, bhikkhunā teneva pītipāmojjena vihātabbaṃ, ahorattānusikkhinā kusalesu dhammesū’’ti.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할 때
자신 안에서 그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모두 다 제거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그 비구는 그런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정진해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할 때
자신 안에서 그런 나쁘로 해로운 법들이 모두 다 제거된 것을 보게 되면
그 비구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들에 대해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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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心으로 心을.... 이라는 표현은 경전에 흔히 나오는데
하드야로 하드야를... 이라는 표현은 아마 본 경에서만 나오는 듯 합니다.
하드야는 다른 경문에서는 심장/염통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상좌부에서는 意의 토대가 이 하드야라고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듯 한데... 잘 모름.
하여튼 어떤 것을 지칭하는 듯한데...
4/12名&色과 관련되어 나온 경문이 아닌가? 서부른 추측 중입니다.
혹시 근거 있는 경문이 보이면 말씀드리겠습니다.
內라는 표현이 본 경문에도 나오는데요...
여기서는 '안으로'라는 의미는 아니고 '안에'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것도 '내 안에'.
內에 있는 4/12名&色에 대한 앎(반야), 內로 삼매들어
外의/로 法에 대한 見(觀/위빳사나)
........ 혼자 중얼중얼... 지금 가을 비가 와서... 중얼중얼. ㅋ
atthi me ajjhattam. <5蓋>
atthi me ajjhattam. <7각지>
atthi me ajjhattam. <흠>--- 본문.
@봄봄 內로 삼매에 들어 外의/로 法에 대한 見(觀/위빳사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봄'님께서 三昧에 대하여 얼마나 無知하신지를 드러내는 추측...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자땅>이라는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 순간적으로 <바히다(외부)와는 차단 된다고>합니다. ...
<아자땅>이라는 영역에서는 <바히다>를 염두에 두는 것 조차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그러한 점이 <초능력>과는 차별되는 점인것 같던데요.......... 三昧를 경험하신 분의 말씀으로는 .... 자신의 신체 내부의 장기를 보는 것 등등은 <三昧의 영역인 '아자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그러할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곳이랍니다
@아위자 일단....... <시간 개념>이 느껴질 정도라면 ......... 그 곳은 이유불문하고 <三昧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네요........... 공통적으로.....
@아위자 경전은......... 그런 영역에 <탐진치>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인데요..........그 제거가
<장난>이 아닌 것입니다. ............ 제거되는 순간 거기가 '열반'이라고 ... 경전은......
@아위자 이러하니......... 그 탐진치를 제거하는 <반야>라는 것이 또한 '농담'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미칩니다. 미쳐요.
@아위자 이유불문하고 <集과 滅>을 보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안지혜명광>이 확~~ 생겨나서 '그 영역'을 밝히도록.............. 쓰버럴~~~~~~~~~ 불가능하니...... 쩝~~
@아위자 오늘부터라도 <戒>를 좀 지켜볼까?..........하다가는 ........"어느 놈이야!"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위자
일단....... <시간 개념>이 느껴질 정도라면 .........
그 곳은 이유불문하고 <三昧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네요........... 공통적으로.....
국산 스님들^^중에, 한국에서 출가하여 후천적^^으로 이 경지에 이르신 스님들이 많이 있으신가요?
...질문이 뭐 합니다만 몹시 궁금은 하네요. 간화선으로 도달하는 경지인지 아님 사선정의 노정인지……
@nobody 제가 아는 분만 3분 스님. 다른 분들은 모르겠고, 이야기만 들었음 ........... 이야기만 들었고 작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으니..... ..........제가 아는 분들은 모두 <화두 참구>하시는 분들.............
@아위자 저도 혜정님처럼^^... 고맙습니다. _()_
@아위자 아위자님께서 위 댓글에서 언급하신 ... 삼매에 드신다는 분들의 말씀으로는....위빠사나가 불가능하니까...........
결국..... 맛지마 차례차례 경에 의거하면... 바른 삼매가 아닌 것이 됩니다.........
아위자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니까야 예. 실전에서(=三昧에서) <아비담마나 아누빠사나, 위빠사나>가 가능하다고 하시는 분은
아직 저는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그 분들에게도 ..... 경전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드렸구요.
그 분드의 三昧가 <바른 三昧>인지 아닌지를 .......... 저는 알 수 없구요.........
일단, 안 된다고 하시니까.........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되실 경우에는........
(1)처음부터 되셨던 것인지? ........가 우선 엄청 궁금합니다.
(2)처음부터 되신건 아니시라면 .......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제 경우에는 ..... 순수 <이론적 측면>을 살펴보려는 것이구요......... 三昧가 되시는 분들에게
@아위자 는 .........."다른 분은 이렇게 해서 되셨다고 하더라!"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위자 正定에 들기위한 ...... 제 <이론적> 견해는 ....... 대부분의 三昧에서[=드신 분들의 이야기로는] "거기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러면서 <시공간 개념>조차도 "모르겠다."라고............. 공통적으로는 "엄청난 <희열>을 경험하시는 것."은 맞는 모양인데...... 스님들의 경우에는 그 점을 엄청 경계하시더라구요............. "마장이다."라고요......
@아위자 그럴경우에.......... 제 <이론>은 ........ 정신 좀 차리시면 안 되시느냐?........에서 <그럴 정신이 있으면 좋게>라는 <답> 앞에서는 그저 묵묵부답........... 제가 경험한 것이 아니므로..........
@아위자 그래서 그 영역은 <이론의 영역은 아닌가?>하고 있는 중...........
그런데....... 경전에는 엄청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거든요...........ㅋ.
바로 위 <본글>이 경증입니다.
@아위자 토의의 결과는 ............. 아무래도 <평정(우뻭카)>이라는 것이 수상하다(?)는 정도........
ㅋ. 오버했나요.
한 가지만 질문드리께요.
삼매에 들어서는 위빳사나 하지 못하나요? 최소한 봄(見)은?
실참수행하신 분의 경험 말고 경전에 의한... _()_
합송경 D33 4가지 삼매수행
?
네 가지 삼매 수행(sam?dhi-bh?van?)
①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됩니다.
②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지(知)와 견(見)을 획득하게 됩니다.
③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sati-sampaja??a 하게 됩니다.
④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번뇌를 소멸하게 됩니다.
@니까야 ④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떤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번뇌를 소멸하게 될까요?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이것이 물질[색(色)]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수(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想)이다. 이것이 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형성작용들[행(行)]들이다. 이것이 형성작용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형성작용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식(識)이다. 이것이 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식의 사라짐이다.’라고. 도반들이여, 이런 삼매 수행을 닦고 많이 지으면 번뇌를 소멸하게 됩니
차례대로 경 Mn111... 본 카페에 올려져 있습니다.
초선~무소유처까지는 출정한다.라는 표현이 없고,
다만 비상비비상처와 상수멸에서 출정한다. 그리고 위빳사나<수정: 合隨觀>한다..... 그러므로
초선~무소유처까지는 禪(바른 三昧와 무색3가지 삼매) 상태에서 위빳사나 한다.라고 이해한 것인데
........ 잘못 해석했나요?
@니까야 번뇌의 소멸이면 ... 해탈인데요........ 위빠사나가 빠지겠습니까?
시공개념이 없는 사마타에서는 위빠사나하지 못하지만...... 사념처에서 도달한 자나에서 하겠지요......... 둘다 사마디라 부르고요.
사마타만을 삼매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시지만........ 문제가 큽니다..... 8정도의 바른 삼매는... 4가지 자나입니다...........
그동안 여러번 말씀드려도... 경전에 의거해도......... .......수행을 한다는 분들의 말씀만을 믿고... 경문은 제외시켜버리는 이유가 궁금할 지경입니다.ㅠㅠ
@봄봄 그렇다면.... 더욱 경증이 되는 것이네요........ 감사합니다.
@봄봄 봄봄님 댓글--------위빳사나<수정: 合隨觀>
수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원문에 위빠사나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