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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 보는 재미는? -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2010/07/19 10:44 | 추천 14 스크랩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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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는 재미는?
난 일요일 밤, 별다른 일이 없으면, EBS에서 해주는 한국영화를 챙겨본다. 어제는 이성구 감독의 1966년작 멜로드라마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를 봤는데, 이 영화도 참 재미있게 봤다. 보다가 버릇대로 사진도 몇 장 찍었지만, 흑백영화 필름의 화질도 나쁘고, 티브이를 찍은 거라 영 그렇기는 하다.
아침에 일어나 한참을 이 영화에 대해 검색을 해봤지만, 보도 자료로 올라 있는 사진은 한장 뿐이다. 영화가 개봉된 1966년 당시로는 대단한 화제작이었나 본데...
이성구 감독은 1928년 함경북도 함흥 출신이시란다. 나의 외조부모님과 어머니의 고향인 함흥이란 이름이 반갑다. 미국에 계신 걸로 알고,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하기도 하다. 영화계의 원로이신데.. <장군의 수염>(1968)이나 최초의 70mm 영화인 1971년작 <춘향전> 등을 연출한 이성구 감독은 영어에 능통하고 영화이론에 해박한 지적인 감독이었다고 한다. 당시로는 한국 영화계의 누벨바그 운동을 시작한 인물이었다고 하지만, 이 영화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는 자극적인 제목에다 그 내용 역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이다.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의 배경인 1970년대의 이스탄불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일제강점기에 근대화되기 시작해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급속히 서구화(미국화)되어버렸다. 60년대란 이런 외적인 면과 전통적인 사고가 충돌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이 시대의 옛날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대의 가치관, 사고를 객관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1966년작, 흑백 35mm, 117분)
감독 이성구 출연 김지미, 신성일, 김진규, 윤인자, 전계현, 최남현, 김희갑, 김순철
김지미 씨가 역시 한국 최고 미인이란 걸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고, 이런 앵글 같은 걸 보면 이성구 감독이 왜 한국의 누벨바그 기수라 불리는 지도 짐작이 된다. 부부의 갈등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찍어본 건데, 먼저 남편을 이런 식으로 전면에 보여주다가 다음엔 죄책감에 사로 잡힌 김지미 씨의 그늘진 얼굴.
내가 옛날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이런 것이다. 바람난 부인과 건달(신성일)의 약혼녀가 찾아와 대면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대한극장 앞 육교 위에서 찍었기 때문에 화면 뒤로 대한극장이 보이는 것. 확대시켜 살펴보니 당시 상영하던 영화는 알랭 드롱, 장 가방 주연의 <지하실의 멜로디>이다. 저 영화 감독이 누구였었지? (앙리 베르뉘유?)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한참 저런 류의 르와르 영화를 잘 만들었던 감독인데..
역시 화면 배경을 보는 나. 대한극장 앞 육교 위에서 퇴계로 2가쪽을 잡은 장면인데... 화면의 오른쪽 하얀 빌딩이 아스토리아 호텔인데, 지금도 호텔인지는 모르겠다. 영화 <겨울여자>를 찍을 때 김호선 감독이 저 호텔서 기거했었단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고,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에 많은 감독들이 저 호텔을 작업실 겸 사무실로 애용했던 걸로 안다.
한국형 멜로드라마에선 꼭 비오는 장면이 있다(?). 무슨 공식처럼 비련의 혹은 부도덕한 여주인공이 집을 쫓겨나는 장면에선 비가 내린다. 화면이 울고, 주인공도 울고, 한복 차림의 김지미 씨가 대한극장 육교 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이다. 춤바람이 나서 건달들 한테 걸려 협박까지 받고 한 사실이 남편한테 탄로나 집에서 쫓겨나는 부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이렇게 비가 육교까지 따라온다. 장대비 속의 주인공따라 당시의 많은 여성 관객들도 울었겠지? 일제강점기에다 한국전쟁 어느 가정이고 슬픈 일이 없는 집이 없었을 것이고, 이런 멜로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도 해본다. 극장의 어둠 속 아니면 어디서 맘놓고 울 수 있었겠는가?
이 장면을 왜 찍었나하면, 배경의 스탠드랑 화병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데, 화병 하면 저런 모양의 화병 뿐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스탠드는 영화 속에서 보면 늘 저렇게 갓을 기울여 놓았다. 왜 그랬을까? 비스듬히 기운 스탠드 갓은 옛날 영화마다 어김없이 그렇다. 난 왜 이런 사소한 것이 신경이 쓰일까? 참.
옛날엔 제비족도 사무실이 있었다(?) 춤바람난 가정주부를 유혹하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제비인 신성일 씨와 김순철 씨 사무실과 전화 - (당시엔 흑백전화기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전화기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라 저렇게 전화기 전용 받침대까지!)
영화 속의 부부 침실. 침대 머리맡의 유리박스에 든 인형도 나의 관심품목이라 저 인형을 찍은 것.
* 박춘석 작곡의 주제가를 가수 위키리 씨가 불렀단다.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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