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유적지가 된 마포종점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군중이 오후 8시경 이곳에 운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던 곳
1919년 3월 1일 오후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장소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 이후 서울 시내 각처에서 벌어진 만세시위는 해질 무렵부터 일제의 감시와 견제를 피해 교외로 번져나갔다. 오후 8시 경에 이르러서 약 1천 명의 군중이 마포전차종점 부근에 모여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밤 11경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 학생 약 2백 명이, 밤 12시 20분 경 약 4백 명의 군중이 종로 네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등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얽힌 이야기
3.1운동의 전개과정과 결과
1919년 3월 1일의 만세시위행진은 해질 무렵부터는 시가지에서 교외로 번져나가 오후 8시경에는 마포전차종점 부근에서 다수의 군중이 시위하였다.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는 학생들이 오후 11시 경까지 해산하지 않고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처럼 이날 서울에서의 독립만세시위는 해가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독립선언의 공약삼장(公約三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질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군중이 활동하였는데도 단 1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가장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의지를 표시하려는 3·1운동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제는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본성을 드러내어 무력진압을 위해 경찰과 헌병 이외에도 용산에 있는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를 동원해서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빈손일 지 언정 결사적으로 돌진하는 시위 행렬은 막지 못하였다. 일제는 진고개에서의 시위행렬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주동자로 보이는 학생 군중을 체포하였고, 태화관에서도 민족대표 29명을 포함하여 약 130여명을 체포하였다. 이날의 시위운동은 서울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평남의 평양 진남포 안주와 평북의 의주 선천, 함남의 원산 등지에서는 3월 1일 서울과 비슷한 시각에 독립선언식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서울과 이북 6개 도시의 독립선언과 만세시위운동은 거국적인 3·1운동의 전체로 볼 때 그 첫 봉화에 불과하였다.
참고문헌
1. 장규식,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독립기념관, 2008
출처:(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마포종점(은방울 자매의 노래
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을 기념해 1968년 발매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히트곡 <마포종점>을 수록했다. 담담하게 노래한 복고풍 트로트 <마포종점>은 성장일로의 밝은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던 도심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한 노래였다. 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 기념 음반
마포종점 앨범 뒷면
1968년 발매된 이 음반은 은방울자매의 독집은 아니다. 지구레코드에 전속된 당대의 인기 가수 9팀이 부른 12곡을 수록한 신보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커버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에 찍은 은방울자매 사진을 싣고, 이들의 대표곡 <마포종점>을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을 기념한 음반이기에 A면에 실린 은방울자매의 노래가 4곡으로 가장 많았다. B면은 이미자의 노래 2곡과 권혜경, 박재란, 이미자, 남진, 문주란, 엄영섭의 노래를 담았다. 형식적으로 특이한 점은 음반 A, B면 마지막에 건전가요를 수록했다는 것인데 당시는 1970년대와 달리 건전가요 수록이 의무적인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A면 마지막 곡은 은방울자매·쟈니브라더스가 노래한 TBC 「가요전람회」 선정곡 <캠핑의 노래>를, B면 마지막 곡은 쟈니브라더스·봉봉사중창단이 부른 공보부 제정 <향토방위의 노래>를 싣고 있다. 이는 향후 시작될 ‘건전가요 강제 수록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서울의 지명을 다룬 대표적인 노래 <마포종점>
<마포종점> 가사에는 전차의 마포 종점, 영등포,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까지 구체적으로 네 곳의 서울 지명이 등장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영등포로 가지만 당시에는 배로 건너다녔고, 서울 도심을 누비던 전차의 종착역은 마포였다. <마포종점>이 발표된 1968년은 서울의 전차가 운행을 중단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포종점>은 서울 도심에서 사라진 추억의 교통수단, 전차에 대한 향수를 담은 애틋한 노래인 셈이다. 전차만이 아니다. 2절에 등장한 당시의 여의도는 비행기가 뜨고 지는 비행장이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여의도 비행장은 1963년 김포공항이 개장하면서 한동안 군사 비행장으로만 사용되다가 1971년 폐장된 국내 최초의 비행장이었다. 한편 지금도 가동 중인 당인리 발전소는 그 시절 마포의 정겹고 애틋한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1930년 문을 열어 열병합 발전소로 서울을 밝히고 데웠던 당인리 발전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개인적인 사연이 사회적인 공감을 얻은 <마포종점>
1960년대는 시골 처녀 총각의 이농 향도 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가난을 탈출하고자 대거 상경한 이들로 인해 서울의 인구는 급팽창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방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은 서울의 변두리, 공장이 밀집했던 영등포 지역이었다. 그런 도심의 특성에 따라 1960년대 마포는 서울 전차의 종점으로 유명했다. 밤이 늦어 오가는 사람이 없어 적막할 때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작사가 정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포종점>의 작사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마포 종점에 있는 설렁탕집은 예술인 사이에 꽤 유명했다. 어느 날 설렁탕집 주인에게서 마포 종점에 살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유학을 가 있던 남편이 과로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만 생을 마감하자,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인은 늦은 밤이면 신혼 초 사글셋방 시절처럼 마포 종점으로 나갔다. 그곳을 미친 듯 배회하며 기다렸지만 세상을 떠난 남편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결국 여인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언제인가부터 마포 종점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1966년 여름, 나는 궂은비를 맞으면서 마포 전차 종점에 나가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던 애절한 두 연인의 슬픈 사랑을 담은 <마포종점>의 노래시를 썼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한강 건너 영등포의 불빛은 아련한데 첫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슬픈 정서를 노래한 <마포종점>은 당시 서울 변두리에 거주하던 서민들의 애틋한 정서를 농밀하게 담아낸 명곡으로 남았다. 담담하고 정갈하게 노래한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은 역동적인 산업화 시대의 분위기에 반하는 복고풍의 트로트 노래였다. 성장일로의 밝은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던 도심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을 위로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만삭에 녹음한 노래는 히트한다는 가요계 속설을 이어간 <마포종점> 여성 듀엣 은방울자매 중 ‘큰 방울’ 박애경은 박춘석이 작곡하고 정두수가 작사한 <마포종점>을 녹음할 때 만삭이었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가 그랬듯 <마포종점>도 크게 유행하면서 “만삭에 녹음한 노래는 히트한다”는 60년대 당시의 가요계 속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서울의 지명을 다룬 명곡인 덕에 <마포종점>은 마포대교 인근에 있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어린이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가 발표된 지 30년 후인 1997년 12월 건립됐는데,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노래비에 이은 서울의 두 번째 노래비이다. 은방울자매의 멤버들은 큰 방울과 작은 방울이란 애칭으로 불렸는데 오리지널 멤버는 박애경과 김향미였다. 작은 방울은 1989년 오숙남으로 교체됐고, 큰 방울 박애경은 2005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은방울자매 / 권혜경 / 박재란 / 이미자 / 남진 / 문주란 / 엄영섭 / 쟈니 브라더스 / 봉봉사중창단
(가요앨범 리뷰, 최규성)
2023-05-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