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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항쟁 3개도서 민간교류 및 해원문화제|일반 게시판
● 일시 : 2018. 11. 3(토) ~ 11. 4일(일) ● 장소 : 제주도 라마다 호텔 및 항목유적지 일대 ● 참여 : 강화. 진도. 제주 항몽 관련 문화관광해설사등 30명 ● 주최 :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 주관 : 항파두리 해원문화재 추진위원회 . 재제주시애월읍향우회 ● 후원 : 문화재청 목포에서 제주도에 가는도중/가사도 양덕도 ( 발가락 섬) 목포 ↔제주간 여객선 퀸메리호 (1만3,665톤) ◐소요시간 : 4시간20분 ▶ 퀸메리호 객실안내 일반 실 : 이코노미 로 변경 1인침대실 : 스탠다드 로 변경, 한방에 2층 침대로 8인이 사용하며 여성,남성 따로 이용 분리됩니다. (산타루치노호는 1인침대실에 소아.성인 동반이 가능하나 퀸메리호는 불가합니다) 퀸메리호 (1만3,665톤) 객실내부 조감도 제주도 용바위 (뒷면) 제주도 용바위 (뒷면) 숙박 : 라마다 호텔 [첫째날] [둘째날] 삼별초군들이 제주도까지 건너간 사연은........ !!!! ????? 문화유적거관리과장 오태수 문화유적거관리과장 오태수 문화유적거관리과장 오태수 문화유적거관리과장 오태수 문화유적거관리과장 문화유적거관리과장 강화도 이야기. 삼별초의 대몽항쟁 강화도 이야기. 삼별초의 대몽항쟁 삼별초는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명사처럼 쓰이고있다. 고려의 몽골항쟁은 39여년간의기간에 걸치지만 삼별초의 본격적인 항전은 마지막 4년동안 이루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별초가 대몽항쟁의 상징처럼 쓰여지는 것은 무엇보다 삼별초의 봉기와 활동 그리고 그 최후가 극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원종11년(1270년) 6월1일 몽골항쟁정부가 자리했던 강화에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장군 배중손과 야별초 지유 노영희가 삼별초군을 움직이여 고려 정부에 정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삼별초의 반몽 봉기는 원종의 고려정부가 몽골에 복속하고, 개경으로 환도를 강행한데서부터 비롯 되었다. 강화도의 성곽이 헐렸기 때문에 이들은 1270년 6월1일 새정부 조직을 갖춘 삼별초는 강화를 포기하고 진도로 이동하기로하고 개경에 원종을 영접하기 위해 나가있는 고관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진도로 떠났다. 서해안을 따라 1,000여척의 대선단을 이루어 강화를 출발 진도 용장성에 자리잡았다. 삼별초군이 강화를 출발 남천하는 해로 삼별초군이 강화를 출발 진도와 제주도 내려오는 해로 강화의 삼별초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 강화의 삼별초. 삼별초의 기원 삼별초의 한이 서려있는 진도
"삼별초의 한이 서려있는 진도"란 제목으로 발표하는 박 정 택 해설사 한양으로부터 450km 수로는 1,100리길에 해당하는 변방의 珍島땅 珍島는 예로부터 국방상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왕건과 결현의 싸움,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의 입도와 항쟁,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정유 재란을 겪어왔다. 삼별초의 본거지이며 왕온을 옹립하여 자주고려를 세우려 했던 삼별초에 대하여 그흔적을 설명하는 박정택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께서 진지하게 강의중이다. 이곳 진도에서 끝내 참살된 왕[온]은 영영공 준의 친형으로 삼별초에 강제 납치되어 본의아니게 위왕이 되엇으니 이를 너무나 잘알고 있는 영영공준은 형의 신상을 염려한 나머지 아들 [희]와 [옹]을 장수로 출정시켜 만약의 경우에 형인 왕온을 구출할것을 당부하엿으나 이미 몽장의 칼에 쓰러져 버렷으니 백부와 종형제의 무참한 죽음을 눈앞에서본 두 장군의 슬픔과 여기에서 많은 대몽항전의 삼별초군과 진도군이 죽었고 김통정 장군은 잔여병사를 데리고 금갑진에서 제주도로 퇴각하였다. 뒤따르던 여기와 낭군을 따르던 부녀자들은 목전앞에서 전개되는 낭군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도망갈 여력을 잃고 원한 서린 몽고군에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우황천 깊은 물속에 치마로 올굴을 가리고 투신자살 하였다. 또하나의 고려, 진도용장산성 "또하나의 고려, 진도용장성"이란 제목으로 발표하는 이 평 기 해설사 삼별초가 남긴 역사적 의의는 고려의 정치적 내부 갈등에 관계없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 했던 그용기와 국난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의 민족 자주 본연의 자존심이라 할 수도 있다고 강조 ●용장성 터 삼별초군 입도 9개월만인 1271년 5월 중순에 여몽 연합군의 진도 합락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연합군은 좌, 우, 중 삼군으로 편성하여 김방경과 흔도가 중군으로, 영녕공과 두 아들 및 홍다구가 좌군으로 노루목을 김석만 과 고지마가 우군에서 군직기미를 각각 분담하여 공격해 왔다. 고려는 몽골에전갈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 : 이 상 현 해설사 - 고려는 몽골에 전갈 - 몽골의 부마국이 된 고려는 지금 역사책에 앙상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폭력에 대항해 끝까지 '무릎 끓지 않은 고려인, 삼별초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줍니다. 몽골에 끝까지 저항하는 고려인이 있었다는 것은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고려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가를 보여 주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고, 삼별초는 죽는날까지 국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외세에 무릎을 꿇지 않고 싸우다 죽었으니 대몽항쟁의 꽃이었습니다. 항몽유적지 삼별초 관련 유적과 전설 삼별초 관련 유적과 전설 ● 유적 1) 환해장성 : 환해장성은 1918년 김석익의 [탐라기년]에 처음 등장, 만리장성, 고장성, 장성, 해안성담 등으로 불림. 2) 동 제원 : 고려시대 지방에 출장을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을 말합니다. 3) 송담천 : 삼별초군은 동제원 서쪽 바로옆에 있던 송담천에서 곧바로 공격을 개시하였고 관군과 삼별초군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4) 애월목성 : 삼별초가 애월포에 나무로 쌓은 성입니다.이 목성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9진중 하나인 애월 진성 임 5) 포구유적 :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 올 당시 활용했던 포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군항포 ② 명월포 ③ 애월포 ④ 조공포 ⑤ 조천포 ⑥ 함덕포 6) 용천수 : ① 구시물 ② 옹성물 ③ 장수물 7) 장털왓 : 항파두리성안에서 가장 지대가 낮았던 곳으로 동남쪽 성내의 물은 모두 장털로 모여들었다 합니다. 그렇게 하여 자연적인 연못이 만들어졌으며 성이 축조된 후에는 군사들의 생활용수,성안의 방화용수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8) 극락봉과살맞은 돌 : 이곳 활터에서 북쪽을향하여 활을쏘면 바위 과녁에 닳았는데 그유적이 바로'살맞은 돌'입니다. 9) 파군봉 : 항파두리성에서 북쪽에 있으며 해발 85m의 야트막한 오름입니다. 10) 안오름 : 하나의 능선으로 성이 관통하여 반은 성안이고 반은 성밖에 있습니다. 안오름위에 오르면 파군봉, 도두봉, 한림앞바다의 비양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삼별초의 망루 역할을 한 곳으로 보입니다. ● 전설 고려때의 일로 한 과부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갈수록 허리가 굵어갔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은 남편도 없는 여자가 기이하다며 수근거렸습니다. 하여 과부는 동네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일 저녁 문을 꼭꼭 잠그고 자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한남자가 들어와 함께 잠을 잡니다" 하며 고백했더니 동네사람 들은그 남자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지혜를 모으게 됩니다. 남자가 잠자리에 들어올 때 허리에 실을 묶어두면 알 도리가 있을것이라 알려줍니다. 과부는 미리실을 준비해 두었다가 남자 몰래 허리에 묶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실은 창문 구멍을 통하여 섬돌 밑으로 이어졌습니다. 과부가 섬돌을 들어 올리니 큰 지렁이 한마리가 있었고 허리에 실이 묵여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과부는 지렁이와 함께 잤다는 사실이 끔찍하여 그만 지렁이를 죽여버렷습니다. 그런일이 있고난 뒤 과부의 허리는 점점 굵어지고 결국은 출산하기에 이릅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역시 온몸이 비늘로 덮여있고 겨드랑이에는 작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습니다. 과부는 이런아이의 신체 특징을 비밀로 하고 정성껏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아이가 지렁이와정을 통하여 난 아이란 뜻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렁이 진자를 붙여 진통정(질통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진과 김이 비슷하여 김통정이라 불럿다 합니다.
토론 제주도 해설사협회 회장 : 좌 동 렬 ◐ 여러가지 건의사항과 문제점들을 의논하였으나 기록사항이 미흡하여 생략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항파두리 해원 문화제 1) 일 시 : 2018. 11 . 4 (일) 09:30 ~ 16:00 2) 장 소 : 제주도항파두리 항몽유적지 3) 주 최 : 제주도 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4) 주 관 : 항파두리 해원문화제 추진위원회, 재 제주시 애월읍 향우회 5) 후 원 : 문화 재청 발굴조사 안내문 삼별초선단 남천 항몽유적 안내도 항파두리 해원 문화제 행사안내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강성균 께서 문화제 기를 받고있다. 깃발 퍼레이드 진혼무로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진혼무로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진혼무로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항파두리 주변 탐방중^^^ 첸빗 만드는 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네요^^^^^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깨어있는 시민의힘 전광판과 코스모스는 화합을 상징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무슨 행사를 하면서 세워둔 깃발이라고 했는데......???? [ 항몽 유적지로 가는길 ] 무슨 행사를 하면서 세워둔 깃발이라고 했는데......???? 황파두리 토성에서 제주시와 바다가 보여 적침입시 잘 보이는 곳이다. 황파두리 토성에 소나무 ???!!!! 좋다는 말만/ 유래는 모른다고 ~~~ 황파두리 토성에 소나무 ???!!!! 황파두리 토성에 소나무 ???!!!! 황파두리 토성에 소나무 ???!!!! 명월진성 (해녀촌) 건너편 비양도 (적들이 침투시 이섬을 이용하였다고 함 섬 뒤편으로 오면 잘보이지 않아서 침투하는 경로였다함) 명월진성 (해녀촌) 건너편 비양도 (적들이 침투시 이섬을 이용하였다고함) 해녀학교가 비양도에 있으며 교육기간은 3개월 새별오름 ★ 경사가아마 47도 정도추정 (고려말 최영 장군 격전지) 민둥산으로 전체가 억새풀 제주도 시내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새별오름정상 515.3 m 새별오름 (주차장) 새별오름 (억새풀) 새별오름 (억새풀) 제주들불축제의 유래비 제주들불축제의 유래 제주도 퀸메리호에 승선도중 크르즈호가 보여서~~~ 목포를 향한 선상에서 만난 일몰 (바람이 차갑게 부디쳤지만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간 장면을 놓치기 싫어서~~~) 목포를 향한 선상에서 만난 일몰 목포를 향한 선상에서 만난 일몰 목포를 향한 선상에서 만난 일몰 목포를 향한 선상에서 만난 일몰 - 마무리 - 2018년 11월 3일 ~ 11월 4일 (1박 2일간) 항파두리 해원문화제와 삼별초 항쟁 3개도서(섬) 민간교류 토론회에 참가하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후기를 남깁니다. 삼별초의 시발점인 강화도 해설사 중간깃점인 진도 해설사 마지막까지 항쟁했던 곳 제주도 해설사들과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한배를 타고 항해하는 하나되는 마음이였습니다,
각 지역별로 2분씩의 발표는 너무나 진지하였으며 모두들 열정적으로 발표한것을 보고 경청하는 태도도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날 해원문화제를 보면서 영령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선 진도의 싯김굿이 함께했으면 좋겠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제주도의 진혼무가 있었긴 했지만 그래도 진도의 싯김굿이 더해지면 하는 아쉬움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서 토론회를 갖도록 지원해주신 군수님과 관광과 과장님께 感謝드리면서 저희들을 인솔하 여주신 김승수 주무관님께도 수고하셨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진도를 대표해서 발표해 주신 박정택 회장님과 이평기 부회장님 멋진발표 진도를 빛내주셔서 感謝 드리며, 아무런 사고없이 함께 다녀오신 샘들께도 感謝드립니다. 한가지 건의사항으로, 내년 행사에는 진도싯김굿팀과 해설사 연수로 병행 했으면 좋겠다는 건의도 드려보니 관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도/ 조도 박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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