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0.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마 5:3
*제목; 행복선언(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1. 성공이 행복이 아니다.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토마스 머튼, 영성학자)이 운영하는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에 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이리 이러한 수도원 프로그램에 몰리는 것일까요?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프로그램에서라도 뭔가를 찾아보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참여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아예 수도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행복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그러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행복하기로 유명한 노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노인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침이 눈을 뜨면 두 가지 길이 보입니다. 하나는 불행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의 길입니다. 저는 항상 행복한 길만 택합니다.”
너무나 단순하지만 진리입니다.
행복해야 성공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2. 행복의 비결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행복은 어디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행복(happiness)의 어원은 발생(happen)입니다. 행복을 찾으려면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행복은 내가 매일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행복한 일을 만들어서 앞뒤 사람들과 나누어볼까요?
둘째,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고 결코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습니다.
“30평 아파트”가 있습니다. 한 가족은 12평의 임대아파트에 살다, 열심히 저축하여 드디어 30평 아파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을 것입니다.
다른 한 가족은 100평 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다, 사업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30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 아파트는 실패의 상징입니다.
똑같은 30평 아파트인데 한 가족은 행복의 상징으로, 또 다른 가족은 불행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내가 허락해야만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어려움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도록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입니다.
3. 행복선언: 팔복
우리의 위대한 행복의 스승, 예수님은 “산상수훈”(마 5~6장)에서 “팔복”을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은 모두가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행복을 선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개정개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공동번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새번역)
여기에 보면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힌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까?” 본문을 한 단어씩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영”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원문에 헬라어로 “프뉴마티”(pneumati)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뉴마”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영을 말합니다.
둘째, “가난”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신약성서에는 “프토코스”(ptochos)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상대적 가난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을 말합니다. 이를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에비욘”(ebiyon)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궁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신 24:19~21’을 보겠습니다.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 24:19~21)
왜 그렇습니까? 약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결단코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의 의미는 “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은 행복하다”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도 100%의 행복은 순도 100%의 의지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5. 가난이 행복을, 행복이 성공을 낳습니다.
가난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즉, 하나님의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의지하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영으로 가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의 율례도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난 정신”이라고 하는데 ‘행복을 위한 가난 정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가난정신은 소유하려 하지 말고, “누리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미는 한 장소에서 자신의 향기를 다 뿜어내는데 총12시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장미의 향을 다 만끽하려면 최소한 12시간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미향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소유하는데 급급하여,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리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누리는 것은 바로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 정신입니다.
두 번째, 가난정신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바보성자, 나스루딘’은 매일 삶은 콩과 빵만 먹고 살았습니다. 가난해서 그것밖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를 아끼는 친구가 와서 “당신 같은 실력이면, 왕에게 가서 조금만 왕의 비위를 맞추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사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그는 “매일 삶은 콩과 빵으로 만족하고 살면, 그 따위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라고 대답합니다.
만족이 가난 정신의 핵심이고, 행복의 기초입니다.
세 번째, 가난 정신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고 합니다. 감사하면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6. 정 리
행복해야 성공합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불행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불행도 내가 원인이듯이, 행복은 내가 원인입니다.
행복의 스승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즉, 영으로 하나님의 의지하는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위한 가난 정신은 첫째, 소유하려 하지 않고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지금 여기”를 만족하는 것입니다. 셋째, “지금 여기”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즉 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하나님이 도우시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소유보다는 누림으로, 언제나 만족하는 자세로,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감사를 찾아내는 우리가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