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미리내 운동 >
- 文霞 鄭永仁 -
‘미리내’는 ‘은하(銀河)’ 또는 ‘은하수(銀河水)’의 방언이다. 또 안성에 있는 천주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은하수(銀河水)를 벵골어로 ‘아카시 강가’라고 한단다. 아카시는 ‘하늘’이라는 뜻이고, 강가는 ‘어머니의 강’ 갠지스라고 한다. 그러니깐 은하수는 ‘하늘을 흐르는 어머니의 강’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은하수(銀河水)도 ‘하늘을 흐르는 은빛 강물’이라는 뜻이 된다. 은하수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미리내‘ 또한 강을 뜻하는 ’내‘가 들어 있다. 영어로는 ‘Milky Way'니 어머니의 젖빛이 흐른다는 의미도 된다. 또 세계적인 한국 스마트 폰인 ’Galaxy'도 은하수다.
그러니 은하수는 하늘, 어머니, 강과 연관이 있다. 하늘· 어머니· 강은 넓고 크고 위대하고 늘 흐르는 것을 내포한다.
어렸을 적, 한여름 밤에 마당에 멍석 깔고 엄마 무릎 대고 누우면 하늘의 은하수는 내게 가득 다가 왔다. 그때 엄마는 “애야, 운하수가 네 입 바로 위에 오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단다.” 라고 하셨다. 은하수는 내 입 바로 위로 빨리 다가오지 않았다. 양식거리가 달랑거리면 아직도 덜 여문 누릇누릇한 풋벼를 미리 베다가 풋바심하여 쪄서 먹었다. 그게 요즘 이야기하는 ‘찐쌀’이다. 혹가다 찐쌀을 한 움큼 호주머니에 넣고 야금야금 씹어 먹으면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당신 먼저 미리 가셨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리내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미리내’는 미리 낸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미리 음식 값이나 음료값을 미리 내는 일종의 기부운동이다.
이 운동의 디딤돌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맡겨두는 커피(Suspended Coffee)'에서 시작되어 ’맡겨두는 식사(Suspended meal)'도 등장하기도 했다.
이제 미리내 운동은 한 잔의 커피나 한 그릇의 식사 비롯하여 칼국수 · 족발 · 떡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 운동은 일종의 기부 여축(餘蓄)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운동의 단초(端初)는 100여년의 전통을 지닌 ‘맡겨두는 커피’ 지만, 나눔의 운동이다.
어찌 보면 예수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도 본질적인 것은 나눔의 기적이 아닌가 한다. 실은 맡겨두는 커피나 미리내 운동은 있는 자들의 기부나 나눔 운동이 아니다. 서민들의 두레정신이기도 하다. 미리내는 은하수다. 수많은 별들의 바다다. 마치 별똥별처럼 나의 것을 떼어내어 미리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숟가락 하나 더 놓는다고 했다. 은하수처럼 우리들의 따뜻한 나눔이 모여 종내는 바다를 이룰 것이다.
미리내는 나눔의 선불제도이다. 우리는 보통 후불 제도를 좋아한다. 종교는 선불제도와 같다. 천국을 향한 믿음의 열망은 가 보지 못한 천국을 생각하며 선불적인 믿음의 삶을 갖기 때문이다. 가끔 전철에서 “예수 믿고 천국 가시오” 라고소리 친다. 불확실성에 대한 선불적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하기야 천국이 좋은 곳이긴 한가 보다. 간 사람들이 한 명도 돌아오지 않을 걸 보니…….
터키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 야마늘라(Yamanaar) 고등학교의 전총 중에 하나가 ‘1+1’ 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빵이나 음료수, 학용품을 사면서 주머니 사정 여유가 있는 학생은 두 개의 값을 내고 한 개만 가져간다. 다른 한 개는 누군가를 위해 남겨 놓는다. 이런 한 따뜻한 배려는 사랑과 배려, 나눔과 감사의 정신을 배우는 인성교육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학교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 A와 수학을 잘 못하는 학생 B를 한조가 되게 하여 틈틈이 A가 B를 지도한다. 그 결과 B의 성적이 오르면 A는 부가점(附加點을) 받는다고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 이렇게 해서 입시교육과 인성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터키에서 명문고등학교로 발돋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후불제를 좋아하면서도 유난히 교육에 대해서는 미리 하는 선수학습을 되게 좋아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서울대 의대반이 모집한다니……. 여북했으면 선수학습을 금지하는 법을 정했을까. 사실 이것도 눈 가리고 아옹이다.
어찌 보면 보통 사람보다 앞서 간 영재적 사람들은 선습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세계적인 한국발전 철학인 ‘빨리빨리’도 결국 앞서 가는 것, 남보다 미리 하는 것,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아닌지. 결국 미리내다.
우리 교육도 다 같이 똑같이 가야한다는 평준화(平準化)를 벗어나 출발선은 똑같지만 미리 갈 사람은 가게 하는 것이 평등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서로 상생(相生)하고 공생(共生)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한다. 편리공생(片利共生)이 아닌 상리공생(相利共生)으로. 자전거 페달을 아래로 밟아야 내가 나갈 수 있는 교육이 아닌 터키의 야마늘라 고등학생처럼 ‘A+B'처럼 말이다. 요즘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많이 하는 ’1+1‘처럼 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먼저 미리 하느냐에 딸린 것이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젠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신한 것은 미리내냐에 딸린 것이다. 하기야 생일도 지나서 해먹는 것보다는 미리 해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에는 술값을 저마다 미리 내려고 실랑이를 벌렸지만, 지금은 똑같이 나누어서 내는 것이 보통이니 평준화 때문인가?
그래도 나는 내가 미리 낼 때가 좋다.
또 그런 처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