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지난 주에 제6호 태풍 ‘카눈’이 많은 비를 뿌리고 지나갔습니다. 교회 창문틀 사이로 꽤나 많은 빗물이 새어 들어와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교회당 바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엊그제 이틀 동안 서둘러서 방수 공사를 했습니다.
공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이것저것 뒷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었습니다. 이번 주에 지키는 평화통일주일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통일은 그렇다 치고 남북간에 불신과 대결의 벽이 더 높아져가고, 남북 교회조차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왔던 부활절, 광복절 공동 기도문도 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고 통일은 잠꼬대 같은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공사도 마치고 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건지산 편백숲을 찾았습니다. 걷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편해지지 않을까 했습니다. 맨발로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신발을 신지 않고 걷고 있습니다. 퍽이나 여유로워 보이고 좋았습니다. 저도 혼자 걷다가 나무를 흔들어보기도 하고, 올려다보기도 하고 기대 보기도 했습니다. 지상으로까지 뻗어 나와았는 뿌리들을 보면서 땅속에 있는 것들은 얼마나 서로가 얽히고설켜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그렇게 하면서 서있기 때문에 태풍에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굳세게 서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와 가지가 서로 깍지를 끼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도 이겨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나무처럼 서로 깍지를 끼고 뿌리를 더 깊게 내리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만 한 선생도 드문 것 같습니다.
첫댓글 문익환 선생님 전기 읽고 있습니다..부끄럽고 죄송하고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9.03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