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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23
이종(異種) 장기이식
▲ /그래픽=진봉기
최근 미국에서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해 화제가 되고 있어요. 질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장기를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장기로 대체하는 장기이식이 이뤄집니다. 사람의 몸에 다른 사람의 신장이 아닌 돼지의 신장을 이식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돼지 신장 이식받은 환자, 2주 만에 퇴원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의료진은 만성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60대 환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했어요. 그동안 뇌 기능이 멈춘 뇌사자나 원숭이 몸에 돼지 신장을 이식한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이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한 것과 더불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요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환자가 이식받은 돼지 신장이 '유전자 가위'로 변형된 장기였다는 것이에요.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말해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잘라내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가진 유전자를 잘라낸 위치에 끼워넣을 수도 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농작물을 개량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수술에 사용된 이식용 돼지 신장은 미국 바이오벤처 기업 'e제네시스'에서 제공했어요. e제네시스 연구진은 환자가 신장을 이식받은 뒤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했죠. 장기이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작용은 '거부반응'이에요.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원래 자신의 몸에 있던 것이 아닌 이식받은 장기를 외부 물질로 받아들여요. 그래서 바이러스를 물리치듯 이식된 장기를 공격하죠. 어렵게 구한 장기가 망가지게 되는 위험이 생기는 거예요. 이번에는 심지어 인간과 다른 종인 돼지에게서 장기를 이식받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면역체계의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더욱 필요했어요.
연구진은 우선 사람과 가장 비슷한 크기의 장기를 가진 '유카탄 미니돼지'를 길렀어요. 이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돼지의 신장에서 사람 몸에 들어왔을 때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3개를 잘라냈어요. 그리고 인간과 적합성을 높일 수 있는 유전자 7개를 새롭게 끼워 넣었죠. 돼지 신장이 인간 몸에 들어갔을 때 외부 물질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을 크게 줄인 거예요.
의료진은 4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신장을 환자 몸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어요. 이후 환자 상태를 관찰해보니 다행히도 이식받은 돼지 신장이 혈액 내 노폐물을 걸러내 소변을 만들어내는 등 제대로 작동했어요. 환자는 2주 만에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합니다.
돼지 장기, 유전자 조작 쉬워요
이로써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는 이종(異種) 장기이식의 길이 새롭게 펼쳐졌어요. 그동안 장기이식 환자들은 기증되는 장기가 턱없이 부족해 오랜 시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죠. 이종 장기이식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성공 사례가 늘어난다면 더 많은 장기이식 환자들이 건강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돼지 신장 이식 수술의 성공으로 이종 장기이식 1순위 동물로 돼지가 주목받고 있어요. 돼지가 장기이식에 쓰이는 대표적인 동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돼지의 장기는 인간 장기와 모양이 매우 비슷해요. 유전자 조작도 쉬워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우리 몸이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킬 확률도 낮출 수 있어요. 또 한 마리를 키울 때 들어가는 비용이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죠. 이전에는 침팬지나 원숭이 장기를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그런데 인간의 몸이 이 동물들의 장기에 면역 거부반응을 심하게 일으켰고, 동물 가격도 비쌌죠. 그래서 과학자 대부분이 돼지를 활용한 장기이식 연구에 집중하게 됐어요.
물론 장기이식에 활용되는 돼지는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보는 돼지들과는 다른 품종입니다. 이번에 매사추세츠 병원에서 있었던 장기이식 수술에 사용된 '유카탄 미니돼지'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여요. 유카탄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몸무게가 약 40~80㎏ 정도예요. 일반 돼지가 200~300㎏인 점에 비하면 훨씬 크기가 작아요. 그래서 유카탄 미니돼지는 장기 모양뿐만 아니라 크기도 사람 장기와 비슷해요. 또 유카탄 미니돼지는 주로 장기이식을 위해 길러지는 만큼, 균이 없는 깨끗한 실험실에서 관리를 받으며 자란답니다.
3D 프린터로 인공 귀·심실 제작
한편에선 장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장기를 만드는 걸 연구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3D 프린터로 의치나 의수족 등을 주로 만들었어요. 최근 들어서는 체세포와 유사한 물질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인공장기가 만들어지고 있죠.
재작년 미국의 한 생명공학 기업은 3D 프린터로 인공 귀를 만들어 환자 몸에 이식했어요. 이 기업은 환자 귀에서 연골세포를 채취해 수십억 배로 배양했어요. 이후 이것과 콜라겐을 섞어 만든 바이오 잉크를 3D 프린터에 넣고 환자에게 맞는 새 귀를 만들었지요. 환자는 이 귀를 이식받아 선천성 소이증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미니 심실을 만들었어요. 연구진은 심장 근육세포를 섞은 바이오 잉크를 사용해 심장 밖으로 피를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심실을 만들었죠. 연구진이 만든 심실은 실제 심실의 6분의 1 크기로 작았지만 3개월 넘게 박동했다고 해요. 이외에도 혈관, 피부 등을 3D 프린터로 만드는 연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구들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동물이 불가피하게 희생되는 동물 장기이식 대신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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