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여라.”(콜로 3,15.16)
예수님의 이 세상 오심을 성대히 기념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이어 우리는 2023년 마지막 날인 오늘,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진 요셉과 마리아의 성가정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감당하기 힘든 소명을 순종으로 받아들이신 성모 마리아. 결혼을 약속한 처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를 배려하여 조용히 파혼을 결심하였지만 꿈에 나타난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느님의 뜻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요셉.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 스스로 친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이 세 분의 믿음과 순명의 삶이 이루어지는 한 가정의 모습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가 모두 본받고 따라야할 성가정의 전형이며 모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한 후, 돌아오는 주일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가정 축일에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성가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성가정을 이루는 데에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순명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요셉은 태어난 사내아이는 정결례를 통해 모두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모세의 율법 규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듣고 성전을 지키던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오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자마자 아이를 자신의 두 팔에 받아 안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메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30-32)
시메온의 이 말에 요셉과 마리아가 놀라워하고 있을 때, 시메온은 다음의 말로 아기 어머니 마리아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들어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어여쁜 아이를 낳은 어머니로서 축복의 말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시메온은 마리아의 산통을 깨놓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반대 받는 표징이 되어 어머니인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이를 갓 낳은 산모에게 할 말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나라는 예언자도 그들에게 다가와 아기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찬미의 노래를 바치자 요셉과 마리아의 당혹감은 극에 달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낳은 아기가 무엇이기에 이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하는 것일까? 갑작스레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시메온의 말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 아이를 둘러싸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생각들로 요셉과 마리아는 당황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부모는 오늘 복음이 분명이 일러주듯이 주님의 법에 따라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갈릴래아 자신들의 고향 마을 나자렛으로 돌아가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의 성장의 모습을 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아기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일들로 인해 당혹감을 넘어 두려움의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그 모든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믿음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순명의 자세를 통해 자신들의 아기를 사랑으로 키워나감으로서 아기는 튼튼하고 지혜가 충만하고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아이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 같은 오늘 복음의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순명의 모습을 오늘 독서의 말씀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집회서의 말씀은 하느님이 허락해주시는 성가정을 이루어 살아가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합니다. 그 자세란 다름 아닌 어버이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며, 자녀는 어버이를 존경의 자세로 공경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그것은 바로 성가정의 삶을 이루는 가장 근본이자 기본 원칙인 사랑임을 이야기합니다.
이상의 말씀을 살펴보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 질문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 하느님 뜻에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자녀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으며, 모두가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제의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실천하기 어려운 그 모든 것을 과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이제 문제의 본질은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실천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실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오늘 제 2 독서의 콜로새서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갖추어야 하는 믿음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그 믿음의 자세란 마치 새로 산 옷을 입듯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온유와 인내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옷을 입고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이 되어 내 마음 속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으로 이끌어 주리라 바오로 사도는 약속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비롯되는 평화가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함을 강조하며 그 비결을 제시해줍니다. 그 비결이란 바로 다음의 말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 3,16)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한 그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안에서 생명력을 지니고 생동감 넘치게 활동하게 될 때, 그 말씀은 우리 마음 안에서 온유와 인내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모습으로 나타나 불완전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끈으로 완전하게 연결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끈으로 묶인 가정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바오로 사도가 약속한 그 선물, 곧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성가정을 이루도록 허락해주신 하느님은 또한 우리에게 당신이 이루신 성가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 역시 허락해주십니다. 우리 가정이 환난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 분은 어려움에 처한 우리 가정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 가정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지켜주시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하느님 그 분이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하느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말을 전하시며, 말씀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일러주십니다. 여러분이 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머무르며 그 말씀을 들으려 노력할 때, 하느님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평화가 우리 안에 자리 잡아 그 분 안에서 모든 힘과 용기를 얻게 해주시며, 이를 통해 우리가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 모두에게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하느님의 사랑의 끈으로 하느님 그 분이 이루신 여러분 각자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이루어 사랑의 옷을 입고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여라.”(콜로 3,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