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3일 천안에 있는 리각미술관을 정영인 학우와 방문하였다.
방명록을 작성하라기에 내 이름 석자를 기입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았다. 밑으로는 인상깊었던 작품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였다.
입구에 파격적인 작품이 있었다. 속옷으로 보이는데 수납방법이 일반적이지 않아보인다. 이런 속옷을 입으면 수납된 물건의 안위에 큰 걱정을 느낄것 같다. 가령 남성이 소변을 배출해내기 위해선 수납함으로부터 빼는 과정이 앞서 필요한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고, 상황이 긴박할 경우 이런 속옷을 입은 자신을 원망하기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선 나름 따뜻한 털장갑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납함을 pessiere라고 하는데, 페니스와 브래지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작품 의도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그 어딘가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양지로 올라오려고 하는 요즘 영향력이라 의미같은걸 가지기 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입장을 주장하지 않고 경계를 오가며 젠더와 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질문한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한 질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다. 성별만큼 경계가 확실한 속성이 없는데 성을 매개체로 무경계를 이야기하는 시도부터 마음에 들지 않고, 나는 답이 없이 질문만 하는 행동을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성별은 남성과 여성으로 2개만 있다.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없는 분야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여지가 있는 분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질문의 교묘함에 현혹되지 않는 어른이 착한 어른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그림이다. 자궁으로 인해 삶이 탄생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궁 밑으로는 아기들이 있고 자궁 주변으로는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들이 있다. 그 외에 여러 식물들이 보인다. 작가노트에는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이 외모평가라서 무례하지만 와중에 불쾌하지만은 않은 이중적 감정을 느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림 속 꽃은 암술, 수술을 제거하고 존재 자체로 발언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여성으로서 겪는 충돌과 감응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이런 작품은 괜찮은 의미가 있다. 원래 사람은 긍정과 부정의 감정을 오가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어머니가 임신한 순간 여러 데이터가 저절로 뒤따라온다. 태어난 순간 성별, 선천적 장애유무 등의 데이터가 자동으로 결정되고 태어난 후 마주한 선택들이 추가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성별, 이름, 키, 몸무게, 직장, 직급, 직무, 애인 등 인간 하나가 포함하는 데이터는 굉장히 많다. 삶이란건 그리 단조로운 것이 아니다. 복잡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성별이라는 데이터만으로 필터를 끼워서 개체가 경험하는 긍부정의 감정을 나타내는 시도는 굉장히 건방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괜찮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정말로 딱 여성이 되어야만 경험하는 장면들만 그렸기 때문이다. 다른 데이터로 인해 생겼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장면이 딱히 보이진 않는다. 건방지지만 괜찮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자꾸 작품의 의도를 직접 읽어보고 나의 견해를 쓰려니 피로함이 몰려와서 이 밑으로는 순수하게 그림만 보고 작품해석에 들어가겠다.
함께 한 정영인 학우와 찍은 작품이다. 작품명은 '형용사로서의 색체-아름다움'이다. 아래와 같이 한국어의 형용사가 색체 속에 은밀하게 숨어있다.
색과 감정은 분명 연결되어있다. 시원한 색은 파랑, 뜨거운 색은 빨강이 대표적인 예다. 시원한 바닷물이 파란색이고, 뜨거운 불은 빨간색임을 경험으로 알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고독하거나 두려운 부정적인 색은 검정일까? 그 해답은 진화에 있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유약한 동물이었다. 그러므로 집단을 이루어 살아야만 했는데, 혼자 남아 고독함을 느끼는 상황은 생존에 불리하다. 피해야하는 감정이다. 생존에 유리한 다른 조건에는 두려움이 있다. 사람은 주행성 동물이라서 야간에 돌아다니다가는 다른 짐승들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 야간의 어둠을 두려워하는 원시인들만이 생존에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니 이는 꼭 필요한 감정이다. 그러므로 검정색은 부정적인 색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나는 색과 감정을 연결짓는 능력이 있으므로 생존에 유리한 남자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신체를 갈아서 만드는 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인간은 번식함에 있어 긴 기간과 큰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사랑과 소유욕을 혼동할 수 있다. 소유욕이 크게 자리잡고, 상대방이 이에 지쳐 떠나며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은 사랑에 성공한걸까 실패한걸까? 사랑하면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생물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과정을 통해 신체를 구성한다. 케이크를 완성한 후 케이크를 구경만 한다면 하나가 되지 못하여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케이크를 먹는다면 비로소 진정한 하나가 되어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은 비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레시피를 보아하니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소유욕에 지쳐 떠나지도 않은 상황이다. 먹음으로써 진정한 사랑이 완성된다.
자궁 그림과는 상반되게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어두운 색을 메인으로 어두운 느낌을 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곁눈질로 보아도 느낄 수 있다. '형용사로서의 색체-아름다움'작품이 생각난다. 시체, 해골, 시든 꽃, 가지만 남은 못생긴 나무로 제대로 표현했다.
작품을 만들 때 사용했던 작업공간을 실제로 가져다놓았다. 사람이 편한 환경에 있으면 그 편안함에 넘어가 능률이 잘 나오지 않을 수가 있다. 푹신하고 편안한 침대는 공부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약간의 불편함과 긴장이 있어야 공부도 잘되고 작업도 잘된다. 그러므로 나는 저런 딱딱한 작업환경이 좋다.
작업공간 뒤로는 콜라주작품이 보인다. 악동뮤지션의 이수현 양은 자신을 얼굴이 이렇게 미술관에서 상업적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하다.
대나무가 촘촘히 올라와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빨간색이 특이함을 더해준다. 저런 대나무가 가득한 밭에 사람이 떨어지면 관통상을 심하게 당하여 피를 많이 흘리면서 죽는다. 그렇게 피로 물든 대나무로 보인다. 사람이 대나무에 꽂힌다면 그 다음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체가 벌레나 미생물에 의해 천천히 분해되어 결국 땅으로 조각조각 떨어질것이다. 벌레와 미생물을 품은 신체가 비료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대나무에 부정적인 결과를 미칠것이다. 피묻은 대나무는 스스로를 죽이는 대나무다. 이 작품은 자살하는 대나무로 보는것이 옳다.
전시회를 다 보고 돌아오는 나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이번 전시회는 힘들었다. 미술관이 크지 않아서 작품간의 간격이 짧다. 작품이 각자 자극적이었고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몇몇 작품끼리는 의미를 공유하지만 작품 배치가 난잡하여서 감정의 이입을 자주 변환시켜주어야했고,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감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 전시회 과제가 또 있다면 좀 크고 좋은 전시회로 가서 더 많은 작품을 보고싶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