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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우아 떠는 사람들일수록...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옥수수밭과 드넓은 녹색 목초지 위로 잠깐 햇살이 반짝이자, 풍경은 한층 더 전원적인 정취를 띠었다. 인야는 문득,
'프랑스가 선진국인 건 이런 농촌마저 잘 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숲속으로 구비진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근데 내가 지금 왜 이런 길을 가고 있다지?'
특별한 의미나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지나가는 길이었고, 마침 그곳이 프랑스 피레네산맥 너머의 농촌일 뿐이었다.
숲길에는 밤과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다람쥐들은 먹이 걱정도 없겠다.'고 생각하며 걷다 보니, 실제 밤을 줍는 현지인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인야 같은 떠돌이 나그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라꼬망드(Lacommande)'를 지나며 잠시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되돌아 나와 산길을 자세히 살피니... 다행히 가야 할 표식이 보였다. 프랑스의 이정표는 비교적 잘 되어 있어 다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목적지인 '레스까르(Lescar)'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뽀(Pau)'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던 현지 농부를 만났으나,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무작정 먼 길을 함께 걸어 도심으로 들어왔다.
토요일인 데다 모레(11월 1일)가 휴무라 먹을거리를 비축해야 했다.
관광안내소에 들르니 다행히 10유로짜리 알베르게를 안내해 주었다. 한참을 애먹은 끝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들어간 알베르게에는 인야 혼자뿐이었다.
우선 베두(Bedous)에서 남아서, 가지고 다니던 쌀로 밥을 지었다.
다음 날 아침과 점심으로 먹을 달걀과 감자도 삶고, 토마토 샐러드까지 만들어 배불리 저녁을 먹었다.
숭늉과 요구르트로 후식까지 챙겨 먹고 나니, 시계는 어느덧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샤워를 마치고, 피로가 몰려와 바로 침대로 들어갔다.
'아, 내 팔자야. 프랑스의 알 지도 못하는 시골 구석에서도 이렇게 잘만 돌아다니고 있구나.'
자다가 깨어보니 전기 히터가 따뜻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일어나, 속옷을 빠니 금세 보송보송하게 말랐다.
다음 날도 지루한 숲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길을 그냥 때려치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날따라 동행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절실했다.
이야기라도 나누며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같이 요리해 먹을래? 내가 쏠게!" 하고 말도 건네고, 그러면서 더 친해질 수도 있을 텐데... 가뭄에 콩 나듯 사람을 만나도, 그저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다 보니... 어느새 그 외로움마저 불만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그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알베르게 문을 열려다 말고 인야는 놀라 멈춰 섰다.
"에이, 무슨 비가 오고 난리야?" 얼른 문을 닫고 배낭에 방수 커버를 씌운 뒤 다시 길을 나섰다.
어쩔 수 없이 빗속을 걸어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나가는 한 여자에게 길을 물었으나, 그녀는 모른다는 듯 고개만 흔들고 황급히 사라졌다. 전날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펴봐도 도무지 표시를 찾을 수 없었고, 날은 서서히 밝아오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아침 산책을 나온 주민들에게 겨우 물어물어 길을 잡았다.
그러나 '뽀(Pau)' 시내 외곽을 걷다가 또다시 길을 잃고 말았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 차 한 대를 세웠다.
운전석의 여자는 그냥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라고 했다.
길이 위험해서 그러니 까미노 본래 길을 알려달라고 하자, 지금 코스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다.
빗길을 따라 '모흘라스(Morlaas)'로 향하는 길은 아득히 멀기만 했다.
겨우 제 길로 찾아 들어가 한 마을에 접어드니 사과나무가 보였다. 지팡이로 두 개를 따서 맛을 보니 제법 달콤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엔 포도나무가 나타났다. 늦게까지 익어 겨우 두 송이만 남아있었는데, 따서 입에 넣으니 엄청나게 달았다.
마을을 돌아 나가자 다시 깊은 숲길로 연결되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숲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아 큰길로 나왔다.
멀리서 차 한 대가 오기에 손을 들었으나 세워주기는커녕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허긴, 비에 젖어 꾀죄죄한 나그네가 반가울 리 없겠지......"
인야는 씁쓸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가 태워달래? 길만 물어보려고 했는데!' 하는 심사도 잃었지만, '그래, 물어볼 것 없다. 그냥 걷자!'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빗물을 쫄딱 뒤집어쓴 채 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트랙터를 탄 농부를 만나 '아노예(Anoye)'로 가는 길을 묻자, 그는 앞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가라고 했다.
안내해 준 대로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어디로 갈지 몰라 한참을 서 있는데, 마침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손을 들자 차 안에 있던 젊은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리더니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뒤이어 오는 다른 차에 다시 손을 흔들어보았지만 역시나 그냥 지나쳤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쪽으로 가야 길이 나올 것 같아 걸어가니, 사거리가 나타났다.
비는 조금씩 가늘어졌지만 방향을 잡지 못해 일단 사거리에서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근처의 한 집에서 차 한 대가 나와 손을 들어 세웠다. 노부부가 탄 차였다.
창문을 내리나 싶더니, 인야를 슬쩍 훑어보고는 그대로 핸들을 꺾어 가버리는 것이었다.
인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야 이 나쁜 놈들아! 길만 물어보려는데 도망을 쳐? 어느 모로 보나, 낯선 동양인 나그네가 빗길에서 헤매는데 쳐다만 보고 도망쳐? 남녀노소가 없네. 이 동네 인심 참 고약하네!'
울컥하는 마음 뒤로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래, 너희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 내가 왜 이 멀리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담? 당장 때려치울까?' 하지만 당장 이 시골 바닥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인야 스스로가 한심하고 쓸쓸했다.
그렇게 고생고생한 끝에 겨우 '아노예'에 도착해 알베르게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시계가 1시간 뒤로 돌아간 날이었다.
인야의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현지 시각은 이제 겨우 저녁 7시 반이었다.
알베르게 주인이 추울까 봐 켜준 전기 난로는 소음이 어찌나 큰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목이 너무 건조해 연신 물만 마셔야 했지만, 그래도 비에 젖은 옷을 싹 말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침대에 누운 인야의 머릿속엔 계속해서 갈등이 피어올랐다.
'이 고생을 하면서 이 길을 걸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당장 포기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차피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길은 아니었지만, 완주를 할지 중간에 그만둘지가 고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툴루즈'까지는 가고 싶었으나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기약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낸다 한들,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을까? 여기 프랑스에서는 그저 걸을 뿐인데. 걸으면서 세상을 구경할 뿐인데......'
생각해 보면 그랬다. 인야는 지금 프랑스 피레네 지방의 낯선 길 위에서, 그저 걸으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어떤 대단한 목표를 세워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그네가 날씨 탓을 해서 뭐 하겠어.' 그동안 수없이 길을 걸으며 터득한 그만의 철학이었다.
인야의 시계로 8시가 넘었으니 현지 시각으로는 이제 겨우 7시를 넘긴 이른 아침이었다. 방수 파카를 단단히 걸쳐 입고 알베르게 문을 나섰다.
터벅터벅, 안개가 낮게 깔린 음산한 아침 길이었다.
'아침에 좀 부지런히 걸어두면 오늘은 '마르시악(Marciac)'까지 갈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가야,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일 텐데......'
곧 우거진 숲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우중충한 날 아침에 이 깊은 산속을 홀로 걷고 있다니, 내 팔자도 참......'
혼자 팔자타령을 하며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웬 사람이 타잔처럼 숲속 나무 위에 지어놓은 원두막 같은 전망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참 별나네. 이런 산속 길에 저런 사람이 살다니.'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인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과 표정이 그리 달갑지 않아 보여... 아무 말 없이 그저 지나치기로 했다.
하루 종일 궂은 날씨에 비도 오락가락댔고, '무보흐게(Maubourguet)'란 곳을 지나, 거기서도 17km 더 가야 한다는 '마흐시악(Marciac)'에 수차례 길을 잃기도 했다.
신발에서 물이 찍찍 나오는 상태로, 또 얼만가를 걸어... 찾기도 너무 힘든 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알베르게는 큰길에서 꺾어져 좁은 길이 다 끝난 곳에, 더군다나 숨어있는 듯한 숲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찾기도 힘들었지만, 건물도 이상했다.
일반 집이 아닌(집은 일반 집이었는데) 알베르게 침실은, 뾰족하게 높은, 마치 성이거나 교회의 첨탑 같으면서 전망대 같은 꼭대기에(계단을 한참 빙빙 돌아 올라서야) 매트리스만 네 개 놓여있는 이상한 곳이었다.
가격은 10유로로, 저녁식사는 그 집 가족과 함께 먹는다기에... 망설임도 없이 들어갔다.
허긴, 망설일 처지도 아니었가에 그렇게라도 알베르게가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며 들어갔던 것인데...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인야는 이날도 길에서 미리 먹을 거리를 준비했기 때문에, 그들과 저녁을 함께 먹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에 호기심도 생겨, 10유로를 지불하면서까지 그들과 함께하기로 했던 것이다.
침실은 독립된 타워에 있었지만, 나머지는 본채에 있었기에... 샤워부터 하고 옷도 갈아입은 상태로 나오니, 따끈한 밀크커피가 놓여져 있었다.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서 감사합니다!"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까지 하면서, 인야는 무엇보다도 인터넷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반갑게 접속했던 인터넷이었지만, 한글은 깨져 나왔기에... 어쩌면 인야에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 집 아들이, 다른 방에서는 한글이 뜰 거라며 거기서 하라고 해서... 자신의 카페에 들어가 사진도 옮기고 점검하는 사이, 저녁식사가 준비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저녁엔, 다른 가족이 초대되었던지... 온 가족과 함께 떠들썩하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사실 인야는 비노를 조금 더 마시고 싶었지만, 그들이 따라주는 것만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약간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은 것 만으로도 만족이었다.
비록 그 자리에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대화는 할 수 있었고... 그날 하루 종일 젖은 몸으로 고생을 했던 것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운 좋은 알베르게가 걸린 거라고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조금 더 인터넷을 했고, 침실이 있는 타워로 돌아와... 그날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고 잤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날에 발생했다.
타워에서 홀로 자면서(엉성한 마룻바닥에 매트리스 네 개가 깔린 허술한 곳),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몸도 지친 상태고, 또 알베르게 주인 가족도 좋아서... 하루 더 묵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인야는 다음 날 아침 집주인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하루 더 자는 비용과 점심 저녁 두 끼 식사비 30유로를 선불로 지불했다.
물론 아침은 본인이 알아서 해결했기 때문에, 그 정도면 됐던 것인데.
다음 알베르게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그 도시 관광안내소에 가야 했기 때문에, 오전에 외출을 했다가... 사실 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는데,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인야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의아했다.
수프가 맹탕이었고, 생선도 어째 제대로 익지도 않아서... 인야는 조용히 익은 부분만을 발라먹어야 했다.
물론, 지난밤 같은 식사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때는 다른 가족이 초대되었던 것이고, 외지에 나갔다던 아들도 돌아와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렇지만 뭔가 달라진 분위기가 그를 당황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 익지 않은 생선 부분은 그냥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주인 노부부의 친절(겉 표정들)은 여전한 것 같아, 그러려니 하면서... 밥을 먹고는 다시 인터넷을 하느라 바빴다.
여태까지 프랑스 내에서 걷는 사진을 정리도 하고 올리기도 했는데, 그 날짜가 어제 저녁때 올린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직 24시간이 지난 게 아니어서, 거기에 적힌 날짜가 같은 날에 올린 것으로 돼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시차로 생긴 결과인 듯했다.
아무튼 여유롭게 인터넷을 하고, 다음 날 가게 되는 곳 알베르게도 예약을 해 놓았다.
날씨가 오락가락이었다. 다시 구름이 끼는 걸로 봐 다음 날도 비가 올지 모를 일이었다.
오전 중엔 개는 것 같아서, 내일은 맑으려나 했었는데.
그리고 거기서 하루를 정체하다 보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내가 마치, 제대를 앞둔 병사처럼...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네.' 하기도 했다.
'아이, 여기 날씨가 주로 이런가 본데... 내 마음이 구름 껴 있는 지금의 하늘 같네.'
우울하기도 했고, 걱정도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하라기에 식탁에 앉아 보니,
"?.."
스파게티가 전부였다. 그것도 불어터진.
물론 그 전날 같은 거창한 식사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들의 친절과 호의에 마음이 움직여, 하루 더 머물기로 했던 손님한데......
그런데 샐러드도 덜렁 상추뿐이더니, 후식도 자기 둘이 사과 하나를 나눠먹으면서 하는 말이,
"당신은 후식을 안 먹나요?"(먹고 싶으면, 본인이 알아서 뭔가 찾아 먹으라는 뜻 같았다.) 하고 묻는 것도 모자라, 식후에는 차나 커피도 내오지 않았다. 물론 인야는 그런 걸 마시지도 않지만, 그 전날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차이가 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런다지?'
얼굴엔 시종일관 상냥한 미소를 띄고 있는데, 실제로는 전날하고는 완전 딴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건, 정말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한... 천연덕스럽던 그들의 언행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인야가 인터넷을 너무 오래 사용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기세가 걱정이었을 수도 있었다.(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 말고는 도무지 인야의 상식으로는, 그들의 우아함 속에 숨겨있는 내막(가증스러움?)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가 인터넷을 많이 사용했다고 해도, 그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어떻게 사람을 면전에 두고, 그렇게 살랑살랑 웃어가면서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지(골탕먹이는지).'
그 순간 인야에게는, 몇 년 전 까미노 봄 길 프랑스 '생장'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보낸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이었다.
당시, 아주 친절했던 그 알베르게 주인 역시... 시종일관 미소띈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 것은 좋았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새벽 6시, 이른 아침부터 웬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더니(사람들 빨리 깨워서 내보내려고)... 정장에 나비넥타이까지 한 모습으로 3층 건물을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침을 제공하니, 챙겨 먹고 떠나시기 바랍니다." 하고 선전을 해대기에... 인야가 짐을 챙긴 뒤 식당에 가 보니, 딱딱하고 마른 빵에 썩은 토마토가 있어서... 손도 안 대고 도로 나와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했었는데(그래서 오래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런 게 프랑스 사람들의 특징인가?' 하면서도, 너무나 유치하고 천박해서......
인야는 심한 배신감까지 느꼈음에도 조용히 일어서는데,
주인 여자는 거기서 한술 더 뜨는 것이었다.
"선생님, 당신이 화가라는데(지난 저녁 시간에 그런 말을 살짝 하긴 했다), 여기에 머물면서 인터넷도 하고 그림도 그릴 생각은 없으세요?"
인야는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고,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속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타워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야, 그들의 그런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언행에...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는 또,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떡하니 선불로 돈을 지불했던 게 잘못이지!' 했지만(사실, 그 집을 떠나오면서 돈을 지불해도 되었는데), 인야에게는 그 순간 또, 자신의 '멕시코 시절'의 한 장면도 떠오르는 것이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을 잘해 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선불로 돈을 지불했다가... 전시회 1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받아봤던 팜플렛을 받아봤던......
'그런 게 문화선진국이야? 웃기고 있네!'
그다음 날, 인야는 새벽 6시... 아직 깜깜한 새벽에 그 집을 나왔다.
이미 돈을 다 지불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설사 길을 잃더라도, 한 시라도, 단 1분이라도... 그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