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 칼럼]
한 여름밤 수박서리의 추억
남부대교수 김영식
요즘처럼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여름의 절정에 들어서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시원한 계곡이나 바닷가로 피서를 떠난다. 잠시 앉아 과거의 여름추억을 떠올리며 더위를 잊어 볼까 한다. 그래도 지금은 에어컨과 선풍기 등 전자제품이 다양하게 나와서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는 오로지 선풍기 하나에 몇 사람씩 들러붙어 앉아 바람을 쏘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채를 열심히 부쳐야 땀을 식힐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더위와 지금의 더위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때의 더위는 그나마 미루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선선한 바람이라도 불었다. 그런데 이제 도시생활을 하다 보니 시원한 그늘보다는 옆 건물에서 나오는 에어컨 실외기의 더운 바람이 더욱 더위를 힘들게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과 아스팔트위로 올라오는 복사열은 상상하기 힘든 여름을 불러 오고 있다.
얼마 전 복숭아밭 옆 길가에서 복숭아를 파는 아주머니를 보고 차를 세웠다. 아주 싱싱하게 보이는 복숭아를 한바구니 골라 담으면서 “옛날에 여름밤에 집에 있는 보리쌀 두어 되 퍼다가 복숭아 하고 바꿔 먹으로 갔던 때가 그립다”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추억이 베어 나오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우~~ 아저씨는 그 말 허는거 보니 아직은 젊은 것 같은디?” 하고 웃으신다. 뒤로 돌아 보시더니 벌레 먹은 복숭아 세 개를 덤으로 주시는데, 내가 아이고 보약 주시네 했더니 어찌아요? 벌레 묵은 것이 진짜지요. 하면서 서로 웃으며 손을 흔들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잠시 어린시절 ‘여름 서리’하던 생각이 나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모기를 쫓고 있던 저녁, 윗동네 한 패거리들이 우리 동네로 내려와 친구가 나를 불러냈다. 다른 동네 수박서리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심심하기도 해서 그냥 따라 나섰다. 우리는 두 개 조로 나눠서 한 조는 망을 보고 한 조는 서리를 하러 밭으로 기어들어 갔다. 한참 소리 없이 수박밭 뒤쪽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우리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 미는 것 이였다. 놀란 것은 그쪽이나 이쪽이나 마찬가지였고 소리도 못내고 뒤로 나자빠졌다. 도망을 가려는데 이상하게 쫓아오지 않고 그쪽도 반대로 도망을 가려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옆 동네 아이들 아닌가, 우리는 수박 밭을 나와 전열을 재정비하고 수박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박 몇 덩이를 따서 냇가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후레쉬도 없이 걷다보니 수박을 들고 오던 아이가 돌에 미끄러져 수박은 산산조각이 나고 옆에 있던 한 아이는 놀라서 덩달아 넘어졌다.
우리는 재빨리 수박 조각을 수습해서 보니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 익지도 않은 수박을 허우적거리면서 먹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한여름 밤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 냇가에서 야간 수영을 했다. 옛날에는 밤에 동네 냇가에서 밤에 수영을 하는 일이 큰 즐거움 이였다. 지금 같으면 수박서리를 하다가 걸리면 엄청나게 많은 벌을 받고 많은 돈을 물어내야 하지만 먹을 것이 없던 그 시절에는 참외서리, 수박서리, 닭서리 등 우리들의 본능을 자극 하는 것들이 많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개인적으로 놀 거리를 가지고 놀고, 여름에는 수영장이나 물놀이 기구 타는 여러 레저시설들을 찾다보니 그다지 자연과 함께 하는 추억들은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수박시즌이 끝나갈 무렵 수박 밭을 갈아엎기 전에 아이들을 불러 마음껏 따먹으라고 하시던 동네 아저씨가 생각난다. 이제는 그분들은 고인이 되셨지만 우리가 그 나이가 되어가는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잠시 그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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