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는 고조선이 아니라고 대부분의 대학역사 교수들이 주장합니다
■1) 동호가 고조선이 아니기에
ⓛ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의 「진개가 동호를 습격해서 1천리 영토를 빼앗아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연5군을 설치한 내용」과
② 『삼국지 위서동이전 한조의 위략』에 「연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변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는 내용을
두개의 별개 사건으로 보아
진개가 동호 땅 1천여리를 빼앗고, 조선 땅 2천여리를 빼앗은 것으로 대학역사 교수들은 봅니다
■2) 그러면서 대학역사 교수들은 진개가 빼앗은 조선 서쪽 영토 2천여리에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연5군을 설치 했다고 주장합니다
■■■■■ 이게 대학역사 교수들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인가요(초등학생도 알수 있는 거짓말을..) ■■■■■
진개가 동호 땅 1천여리에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연5군을 설치했고,
조선 땅 2천여리에도 상곡,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연5군 을 설치했다는 대학역사 교수들의 황당한 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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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역사적인 사실(펙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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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의 동호가 『삼국지 위서동이전 위략』의 조선이고,
②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의 1천여리가 『삼국지 위서동이전 위략』의 2천여리니,
■ ① 동호가 고조선이며
■ ② 사마천사기의 1천여리를 『삼국지 위서동이전』에서 1천여리 뻥티기해서 2천여리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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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국고대사서 고찰을 통한 수구리의 우리고대사 ]--> https://tnrnfle.tistory.com/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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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 의 해海의 틀린 해석이 반도사관(식민사관)의 출발점
■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의 삼한의 위치는 "(三)韓 東西以海爲限"
1)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 에 낙랑군, 대방군과 예, 삼한, 고구려, 동옥저 등
고조선 열국들의 상대위치와, 영토 크기 및 지형적인 특성이 있다.
2) 고대 중국인은 큰 강이나 큰호수를 해(海)로 표현했다(바다도 해海라고 했지만..)
특히 하북성 중남부의 북쪽으로 흐르는 춘추시대 고대 황하를 사마천 사기에서 해(海)라고 했다
「鳥夷皮服, 夾右碣石, 入于海. 【集解】徐廣曰 : 「海, 一作『河.』
조이의 특산품은 짐승가죽 옷인데, 갈석산을 오른쪽(서쪽)으로 끼고 황하(해海)를 통해 운송되었다.
【集解】 사기집해에서 서광은 해海는 하河(황하)다」
3)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을
삼한의 동쪽과 서쪽이 바다로 막혀있다고 해석하면 삼한은 한반도 남부가 되고,
위만조선/낙랑군은 대동강 평양이 되지만, 중국 고대사서 내용에 맞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1) 예=동예=예맥의 임금(예군濊君) 남여가 항복해서 BC128년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했는데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라고 했다
하지만 낙랑군 동쪽에 있는 예=동예=예맥의 위치가 강원도 강릉지역이라면 연제지간이 아니다
(2)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할때 한나라 수군이 사용한 배가 누선인데,
누선은 강이나 연안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배다
따라서 누선은 발해만을 건너서 서해바다를 건서서 대동강 평양까지 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4)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韓 東西以海爲限"에서
동쪽 바다를 서해(중국 동해)로 보고, 서쪽 바다를 춘추시대 고대황하로 보면,
삼한과 고조선 열국 위치는 중국 동부 지역되어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고,
중국 고대사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5)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조선 열국 위치의 선택지는 2개뿐이다
첫째는) 해海를 바다로 해석하여 삼한을 한반도 남부, 낙랑군을 대동강 평양,
예=동예=예맥을 강원도 강릉지역으로 비정하는 방법과(반도사관/식민사관),
둘째는) 해海를 하河로 해석하여 삼한을 중국대륙 동부, 낙랑군을 하북성 형수시 무강현,
예=동예=예맥을 하북성 중동부 창주시로 비정하는 방법이다(대륙사관)
■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고조선 열국 위치 비정시 고려사항
※주) AD 280년 경에 『삼국지 위서동이전』이 작성되었고,
『삼국지 위서동이전』 을 참고하여, AD 440년 경에 『후한서 동이열전』이 작성되었다
1)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고조선 열국은 위만조선 시대 상황이다
(1) 고조선 열국 위치가 위만조선 시대인 근거는 예조의 지금의 (위만) 조선(今朝鮮) 표현이고,
(2) 요동 동쪽 천리에 있다는 고구려는 동천왕 천도한 평양성 위치이고,
(3) 사방 2천리의 고구려와 부여 영토가 중복되며, 삼국시대에는 예, 동옥저 라는 나라가 없었다
(4)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는데, 현도군을 고구려현 서북쪽으로 옮겼고,
동옥저 지역인 단단대령 동쪽의 영동 7현을 낙랑군 동부도위가 다스렸다.
2) 삼국지 위서동이전 내용에서
(1) 동천왕이 동옥저 서부지역인 평양성으로 AD 247년에 천도했고,
(2) BC 128년에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 해서 예는 사라졌고,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창해군은 BC 124년에 폐지되었고,
(3) 태조대왕이 AD 56에 동옥저를 정벌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3)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요동 동쪽천리에 있다는 고구려가 동천왕이 AD 247년에 천도한 평양성인 근거는
"평양성의 위치는 동옥저 서부지역이라는 당고종 아들 장회태자의 후한서에 주석이다
(東沃沮在高句驪 蓋馬大山之東,其山在今平壤城西.)"
※주) 당고종 아들 장회태자는 고구려 평양성인 장안성의 위치를 알고 있던 인물이다.
■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 후한서 동이열전 』 의 해海 해석에 따른
반도사관(식민사관)과 대륙사관의 고조선 열국 위치
첫댓글 님이 오늘도 여기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네요. 한둘이 아니라서 일러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단 하나만 얘기하죠. 전에도 말했던 것입니다.
<창해군>의 위치가 <연제지간(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이라는 님의 주장은 원문의 오독입니다.
님의 주장 전체가 다 틀렸습니다. 역사지리 비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기 바랍니다.
아직도 어양이 대택향이라고 생각하나요? 또 대택향이 대륙택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게 다 요택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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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모량님의 댓글에 대해 토론이나 설명/답변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말투자제가 오독이니, 궤변이니 틀렸다는 말은 기본이니
토론 자체가 없는 꼬투리 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 목적으로 모량님이 댓글을 달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모량님은 댓글에서 말도 않되는 초등수준의 어거지를 부려서 대부분의 유튜버에서 강퇴당한
일수님이고, 최근까지의 압록님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몇일 전에도
당국(唐國, 요임금의 당나라 도성)과
요도(堯都, 요임금의 도성)이 다르다고 주장했지요
(모를 수 있지만 설명해 주었으면 찾아보면 되는데, 틀린 자기 주장을 끝까지 우겨서야 되겠는지요)
중국 고대역사를 모르고 한자 해석(한자가 다르면 다른 것으로 주장, 지명이 같으면 같은 곳이라 주장)하니
저런 말도 않되는 주장을 모량님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량님과 대화나 설명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시간 낭비로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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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리 앞글에 늦게 답글을 달았더군요.
“요동, 요서의 거리가 1천리 증가된 근거는 사마천사기 흉노열전에 秦開가 1천여리를 빼앗았는데, 후한서에는 2천여리라 했으니 후한서 기준으로 군국지를 작성하다 보니, 요서와 요동의 거리를 1천리 증가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님의 말입니다.
1천 리를 ‘엿장수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일 수 없습니다. 사기 흉노열전의 1천여 리는 진개가 동호를 물리치고 빼앗은 것입니다. ‘후한서에는 2천여리’라 했다는데, 착각이겠지요. 후한서가 아니고 <삼국지 한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입니다. 위략에서는 진개가 조선의 서방 2천여 리를 빼앗았다고 하였습니다. 진개가 공격한 사기 흉노열전에서는 ‘흉노’이고, 위략에서는 ‘조선’으로 그 대상이 다릅니다. 동호와 조선이 서로 다른 세력입니다. 이처럼 공격대상이 다른데 같은 대상으로 보고 ‘2천 리 빼기 1천 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근거를 대면서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를 ‘엿장수 마음대로’ 1천 리를 뺄 수 없습니다.
@수구리 당국(唐國)과 요도(堯都)가 다르다는 것은 사서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한서 지리지>를 보면 ‘당국’은 태원군 진양현에 해당하고, ‘요도’는 하동군 평양현에 해당합니다. 태원군 진양현과 하동군 평양현은 당연히 다른 곳입니다.
<한서 지리지> 하동군 평양에 대한 주석 應劭曰 堯都也 在平河之陽
<한서 지리지> 태원군 진양에 대한 주석 故詩唐國 周成王滅唐 封弟叔虞
이건 주장이랄 것도 못됩니다. 그냥 사서의 기록을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어쨌든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인가요? 당국은 태원군 진양현에, 요도는 하동군 진양현에 있다는 사서의 기록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인가요? 그 두 곳은 각기 다른 곳입니다.
<후한서 군국지>에도 태원군 진양은 당국으로, 하동군 평양은 요도로 각각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진양현의 당국에 대해서는 <모시보>를 인용하여 주석을 달았습니다.
毛詩譜曰 堯始都於此 後遷河東平陽
<모시보>는 한나라 학자 정현(127~200)의 저술입니다. “요가 처음에 이곳[태원군 진양현]을 도읍으로 삼았다가 뒤에 하동군 평양현으로 옮겼다”
두 곳이 같은 곳이라는 ‘틀린 주장을 끝까지 우기는’ 것은 님이 하고 있습니다.
@수구리 님이 그린 지도대로 하면
마한을 이은 백제, 진한을 이은 신라, 변한을 이은 가야는 중국 동부 지역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백제 고이왕이 사냥을 해서 사슴을 잡았다는 西海 大島는 어디가 되는가요?
님의 지리비정은 완전 허구입니다.
@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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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호 1천여리와 조선 2천여리가
동호와 조선이 글자가 다르니 빼앗은 것이 다르다
중국 고대역사를 모르면 주장할 수 있고, 주장하는 분은 스스로 맞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2) 대한민국의 서울과 조선의 한양이
서울과 한양이 글자가 다르니 위치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주장할 수 있고, 주장하는 분은 스스로 맞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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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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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서의 단편적인 문구로 지리 위치를 비정/주장하거나
(2) 지리지 만으로 역사지리 위치를 비정/주장하는 것은
혼자만의 독백이고,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읽기장의 독백이거나 낙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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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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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는 역사서 내용을 이해하고 역사 내용으로 지리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모량 .■.■.■.■.■.■
秦開가 1천여리를 빼앗았는데, 후한서(오기임. 삼국지)에는 2천여리라 했으니
후한서(오기임. 삼국지) 기준으로 군국지를 작성하다 보니,
요서와 요동의 거리를 1천리 증가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의 내용이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힌트를 줘도 모르면 .. 본인생각 주장하지 말고, 모르면 모르는 것을 질문해야 합니다
■ 동호땅 1천여리를 빼앗아 상곡, 어양, 우북평,요서 요동을 설치했는데
조선땅 2천여리를 빼앗은 곳에 무엇을 설치했나요(상곡, 어양, 우북평,요서 요동을 설치했습니다)
따라서 동호땅 1천여리와 조선땅 2천여리는 같은 사건으로
동호를 조선, 1천여리를 2천여리로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마천이 흉노열전의 동호를 조선열전에서는 진번조선으로 표현했음.
■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군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설치 했다고 보면
군국지 기준 상곡에서 어양까지 1천 2백리, 어양에서 요동까지 1천 6백리이니
상곡에서 요동까지 2천 8백리로 조선땅 2천여리가 됨
이것이 낙양에서 요서나 요동의 거리를 군국지가 1천여리 증가시킨 근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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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장하시는
"마한을 이은 백제, 진한을 이은 신라, 변한을 이은 가야는"에서
역사서에 변한을 가야가 이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인 한백겸이 동국지리지에서 변한이 가야가 되었다고
근거없이 개인적인 주장을 했을 뿐입니다- 한백겸의 뻥입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박혁거세 시기에 변한은 신라에 항복해서 신라 영토가 되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박혁거세 19년(B.C. 39) 봄 정월에 변한(卞韓)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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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댓글들은 본인만의 독백으로
2)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거론할 가치도 없고,
3) 논문에 대해 초딩수준의 꼬투리잡기/흠집잡기/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여서
매림역사 Tv가 답변할 이유가 없기에, 매림역사 Tv의 댓글 차단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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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마지막 댓글 .■.■.■
@수구리
사기에 秦開가 흉노에게 1천여 리를 빼앗았다 하였고, 삼국지에 진개가 조선에게 2천여리를 빼앗았다고 하였습니다.
사기, 위략 외에 <염철론 벌공편>에도 연나라가 동호를 천 리 내쳤다고 나옵니다. 그 기사에는 동호와 조선은 별개의 세력으로 나옵니다.
燕襲走東胡 辟地千里 度遼東而攻朝鮮
동호가 조선이라는 님의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동호땅 1천여리”와 “조선땅 2천여리”가 같은 것이라는 님의 다음 주장도 근거가 없습니다. 위 염철론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요동은 동호의 천 리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연나라는 동호를 북쪽으로 밀어내고 조선을 동쪽으로 밀어내었습니다.
요동군 지역이 조선 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학계에서는 좀더 폭넓게 보아 요서군, 요동군 지역이 조선에서 빼앗긴 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지 기준으로 군국지를 작성하다 보니, 요서와 요동의 거리를 1천 리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님의 말입니다. 요령부득의 말입니다.
@수구리
이제 대택향이 대륙택이란 주장은 접었나 봅니다.
<낙양 동남 1,200리 거리에 있는 패군>의 대택향이 <낙양 북 1,100리 거리에 있는 거록군> 대륙택과 같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이해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또 <태원군 진양현>에 있는 당국과 <하동군 평양현>에 있는 요도가 다른 장소임도 이해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백제, 신라, 가야가 중국 동부지역에 있다고 여전히 고집하겠다는 말인가요? 다른 문헌 기록과 충돌하는데고 그걸 우기겠다는 건지요
@수구리
요동군 무려현에 의무려산이 있습니다. 의무려산 위치는 아실 겁니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 리에 있습니다. 의무려산에서 동쪽입니다. 그런데 님의 지도에는 고구려가 어디에 있나요?
그런 논리는 단박에 무너집니다.
@모량 .■.■.■.■.■.■
혼자 마음대로 착각하시고, 착각한 내용을 댓글로 작성하셔도 됩니다
다른사람들도 오해하는 내용(강단 대학교수들의 주장)이기에
댓글로 설명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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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와 고조선은 다르다고 대학역사 교수들이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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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런데 본인 댓글의 답글로 착각하다니...착각은 자유이니 마음껏 착각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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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량님의 반박같지도 않은 초딩수준의 댓글에 관심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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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량 .■.■.■.■.■.■
혹시라도 제 답변을 원하시면..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믿고 있는 대학역사 교수들의 일반적인 주장을 댓글로 질문하거나 글을 쓴다면
(변한이 가야가 되었다는 엉터리 내용과 같은 질문)
제가 판단해 보고 일반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내용이면
답변할 수도 있겠지요
@모량 두 분의 논쟁은 자유이지만 주제와 어긋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이덕일 소장님에 대한 비난은 이 카페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서 올려주시고, 비난 댓글은 삭제 부탁드립니다(삭제 안할시 강제 삭제). 이 곳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이덕일 소장님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커뮤니티입니다.
@모량 .
■ 요동군 무려현에 의무려산이 있다는 내용은
한서지리지에 없는 모량님 개인적인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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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지리지의 요동군 무려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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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한말 학자 응소가 무려(無慮)의 려(慮)자의 발음이 려(閭)라고 주석했는데
2) 당나라 초기 학자인 안사고가 응소의 주석을 보고, 무려(無慮)현을 의무려(醫巫閭)현으로 주석했을 뿐입니다
(응소의 주석을 보고 요동속국 무려현에 의무려산이 있다는 틀린 내용을
AD 440년경에 범엽이 후한서 군국지에서 기록했을 뿐이고요
군국지의 醫無慮山을 한자가 틀린 지금의 의무려산醫巫閭山으로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
☞ 한서지리지 요동군(遼東郡)
無慮, 西部都尉治.
應劭曰慮音閭
師古曰即所謂醫巫閭.
무려현(無慮縣),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려(慮)의 발음은 려(閭)라고 했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즉 이른바 의무려(醫巫閭) [현] 이 라고 했다.
@종민이야 추가하여 설명하는 내용은
■ 삼국사기 지리지 '『주례(周禮)』에서 보이는 북진(北鎭)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고"를 근거로
졸본(홀승골승)을 지금의 북진시 의무려산 부근으로 주장하지만...
■ 『주례(周禮)』에서 유주(하북성)의 진산이 의무려산(醫巫閭山)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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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례(周禮)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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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부근의 태행산맥의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석가장시와 보정시 중간의 해발 2600M~해발 3000M인 오대산(五台山)입니다
2) 의무려산(醫巫閭山, 오대산) 부근인 보정시 지역의 폭하(瀑河, 용솟음치는 강)가
비류수(沸流水, 용솟음치며 흐르는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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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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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최초의 도읍지인 비류수 부근의 졸본성(홀승골승)은
『주례(周禮)』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인 오대산 부근인 보정시 지역에서 찾아야 합니다
☞ 『주례(周禮)』 유주(幽州) 내용
동북을 유주라 하였다
그곳의 산은 의무려산이고, 수는 혜양택이고, 하천은 하수와 제수고, 침은 치수와 시수다
[원문] 東北曰幽州. 其山曰醫無閭, 藪曰豯養, 川曰河泲,浸曰菑時
@수구리
<주례>에서 말하는 북진 의무려산은 현 북진시 의무려산입니다. 이 의무려산이 있는 곳은 ‘요동군 무려현’이었습니다.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역사지리 비정을 새로 하기 바랍니다.
의무려산은 절대로 하북성 오대산이 아닙니다. 님의 주장은 절대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모량 주레 내용을 읽기나 한 것가요 한자를 번역해도 헤갈리는 모양입니다
일본어로 설명해 주어야 이해할 수 있는가 봅니다
(상식적인 설명도 이해할 생각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고
논리적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을 궤변이라 합니다)
@수구리
의무려산이 어디인지는 상식입니다.
더 이상 궤변하지 말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