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천사대교
"천사대교"는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교량으로 2019년 4월 4일에개통되었다.'천사대교'라는 명칭은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의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지어진 이름으로,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連島橋)로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巖泰島)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교량 중 인천대교(21.38km),부산광안대교(7.42km) 서해대교(7.31km) 천사대교(7.22km)로 4번째로 긴 해상교량이다.
함평군 고막천 석교
함평 고막천 석교는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사이를 흐르는 고막천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돌다리로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원종 14년(1273)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 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체 길이 20m, 너비 3m, 높이 2.1m로, 현재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려 시대의 다리이다.함평 고막천 석교(石橋)는 목조 가구의 결구 수법인 주두의 가구법을 석조 형태로 바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로 만든 다리로 마치 나무를 베어내듯 자유롭게 돌을 자르고 짜 맞춘 솜씨가 돋보이는 다리다. 이 다리는 물이 잘 넘치는 고막천의 물살을 7백 년 동안이나 버틸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수중 지하 바닥은 지반 보강을 위해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이를 지지대로 하였으며, 그 주위에 잡석을 일정 두께로 깔아 바닥이 급류에 휩쓸려 나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 공법을 택했다.
함평 용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600년(무왕 1)에 행은존자(幸恩尊者)가 창건하였다.
용천사라는 이름은 현재 대웅전 층계 밑에 있는 사방 1.2m 가량의 샘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황해로 통하는 이 샘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으며, 용천 옆에 지은 절이라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문화유산으로는 198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석등(石燈)과 해시계가 있다. 쑥돌로 만든 높이 2.37m의 석등은 1685년(숙종 11) 6월에 만들었는데, 그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시대 석등으로서는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옥개석 네 귀에 조각한 거북은 간략한 수법이나 모양에 세련미가 있다.
또, 해시계는 석등과 동시대에 만든 것으로, 두께가 14㎝, 가로 세로 39㎝의 정사각형 중 반쪽만 남아 있다. 6·25전쟁 때 유실되었다가 1980년 경내의 흙더미 속에서 발견되어 보관중이며, 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부터 유시까지가 표시되어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함평 용천사 꽃무릇은 9월에 그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대한민국 자연보호 100경 중 48번째로 선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장고산 고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은 전면이 방형(方形, 네모꼴)이고 후면이 원형인 형태의 무덤으로, 고대 일본고분 양식의 하나이다.
전방후원(前方後圓)이란 '앞은 네모나고(方) 뒤는 동그랗다(圓)'는 뜻이다. 명칭이 '전원후방'이 아니라 '전방후원'인 이유는 원형의 중심부에 사람을 묻었으므로 원 부분이 '안쪽(奥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사학·세계사학 및 고고학계에서는 대개 일본어 명칭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젠포코엔훈)을 그대로 사용하며, '전방후원형 고분(前方後圓形古墳)' 등으로 풀어 쓰기도 한다. 이는 일본의 고분 형태 가운데 후면이 원형이 아니라 각진 형태인 '전방후방분(前方後方墳, 젠포코호훈)' 등과 구별하기 위한 목적이다. 일본에서도 본래 이러한 부덤은 '호리병 무덤' 등으로 불리다가 에도 시대(1603~1867) 후기에 체계적인 고고학 연구가 시작되면서 '전방후원분'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주로 국내 전라도 일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에 대해 '장고분(杖鼓墳)' 또는 '장고형 무덤', '장구형 무덤'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국악기의 하나인 장고(杖鼓)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데에서 온 이름이다. 크기가 좀 더 큰 해남 방산리 고분 등의 경우 과거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낮은 산이나 언덕으로 여겨졌으므로 '장고산 고분' 등으로도 불린다.
사진:이석염,이재실,박성환
편집:박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