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일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 있었다. 내용을 예상하기 쉬운 캐릭터 디자인과 어린이 완구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정말 겉만 봐서는 “안 봐도 뻔한 내용”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작품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인조곤충 버그파이터(원제: 인조곤충 카부토보그 VxV』. 바로 얼마 전 충격적인 마지막 회를 우리에게 선사한 그 작품이다.
『인조곤충 버그파이터(이하, 버그파이터)』는 원우, 형진, 첸, 이 세 명의 소년이 곤충 모양의 완구 ‘버그’를 가지고 강한 상대들과 경기를 치른다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기본 골격. 『버그파이터』는 이 기본적인 내용만 들어있다면 뭐든 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내용이 만들어졌다. 우선, 첫 회부터 아무런 설명 없이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악의 조직의 보스와 대결을 벌이게 되고, 그 보스가 사실은 주인공 원우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뒤로도 각 에피소드들이 인과관계 없이 뒤죽박죽으로 섞이면서 오로지 1회 완결이라는 구조를 내세우는 것은 마치 매회 주인공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던 피터 정 감독의 『이온플럭스』가 연상될 정도이다. 그만큼 이 작품도 주인공의 죽음만큼 충격적인(때로는 실제로 죽어버리기도 한다) 내용을 보여주었다.
어딘가 조금 상식을 벗어난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은 지금까지 많았다. 엽기 만화의 대명사인 『멋지다! 마사루』라던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같은 개그 만화를 중심으로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잠깐 잠깐 나오는 개그컷이나 스토리 전체를 아무런 의미 없이 개그로 이어나가는 전개가 대부분이었지만, 『버그파이터』의 경우는 이런 개그 만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태생이 완구업체 타카라토미의 『카부토보그 시리즈』이기 때문에 설정이나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확실한 틀이 존재하다는 것이 다른 만화와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개그의 사용 방법이나 내용 전개를 신선하게 해주는 요인이 된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를 예로 들면, 주인공인 원우의 어릴 적 친구가 복수에 불타며 등장했던 38화. 많은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이 에피소드는, 초등학생이 형무소에 수감된다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악질적인 간수들과 버그대결을 펼치고, 결국 탈옥까지 않다는 초등학생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정을 갖고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아니, 애들이 무슨 감옥이야” 라면서 딴지를 걸 수 있겠지만, 작품 내에서는 아주 진지하게 제 3자가 개입하면서 초등학생의 역경을 설명하기 바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마무리는 버그 대결로 짓기 때문에 완구 회사가 원하는 전개로 끌고 가는 전개 방식으로서 말도 안 되는 시츄에이션과 개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어린이 만화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내용전개 방식 때문에, KBS 시청자 게시판에 작품에 대한 학부모들의 진지한 비판이나 의견이 다른 만화에 비해 많았었다.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주인공(에피소드 중에 주인공에게 악당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고 악의 조직으로 끌어들이려는 내용도 있을 정도)의 모습을 보고 어린이들에게 사회의 냉혹함을 일찍 깨우치게 해준다는 엇나간 교육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어린이 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내용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엇나간 면이 어린이만이 아닌 성인 시청자들의 마음도 사로 잡아서 예상치도 못한 구매층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완구를 제외하면 다른 관련 상품이 전무하기 때문에 구매층에 대해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방송이 반년 정도 진행된 후 인기에 힘입어 DVD 발매가 결정될 정도로 작품의 지지층이 확실했었다.
내용만으로 보면 『버그파이터』는 한국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예전부터 있었던 동화나 원화의 하청 작업 정도로 합작 애니메이션이라고 타이틀을 붙여, “이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입니다.” 라고 주장했던 작품도 많았고, 『버그파이터』도 얼핏 보면 그런 작품에 속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각본 파트가 모두 일본에서만 행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 디자인, 프로듀서 등 주요 스탭의 절반이 G&G엔터테인먼트의 제작자들이기 때문에 각본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합작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방영판에는 각본에 대한 스탭들의 표기를 뺀 것과 동시에, 합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최대한 일본인 스탭을 소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스탭롤이 표시되어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버그파이터』를 제작한 G&G 엔터테인먼트는 『라라의 스타일기(원제: 키라링 레볼루션)』이나 『숲속의 전설 무시킹(원제: 곤충왕자 무시킹)』, 『카레이도 스타』 등의 일본 작품 제작에 참여했으며, 『라그나로크 THE ANIMATION』, 『마스크맨』, 『올림포스 가디언』 등의 국산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실력 있는 제작사이기 때문에 “합작”으로서가 아닌 완전 오리지널 작품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점점 합작이나 하청의 경계가 사라지고 각 파트의 분업화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이니 일본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경계는 “기획”과 “각본”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현재의 추세라고 보기 때문에, G&G가 기획까지는 영향을 미쳤으나, 각본에 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한 스폰서가 존재하여 제작자가 뭐든 해도 좋다, 라는 상황은 평생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굴지의 완구 업체인 타카라토미의 완구를 소재로 일정 룰만 벗어나지 않으면 뭐든 괜찮았던 『버그파이터』는 제작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내에서도 조금 엇나간 작품이었지만, 확실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산에 관해서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들 중에서 또 이런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버그파이터』와 같은 스폰서인 타카라토미의 인형 “리카(바비 인형)”를 이용한 인형극 『귀여운 제니』이 같은 각본진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 애니메이터란 모름지기 자유를 추구하고 즐거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조곤충 버그파이터』 공식 사이트
http://www.kbs.co.kr/2tv/enter/bugfighter/about/
http://www.jntv.co.kr/program/pro_view.asp?IdxNo=316&Kind=pgGen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