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만점 철원에서 영월까지
-경향신문, 대한언론인회 봄철문화탐방기
0-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주상절리길
4월 마지막 주는 유난히 즐거웠다. 앤돌핀 생산 공장이 따로 없다. 연 이틀 나들이를 한 기분은 10년은 젊어진 기분, 늘그막에 강행군이었지만 강원도 철원에서 영월까지 한반도 북단 천혜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4월 27일 경향신문사우회가 주관한 춘계 문화탐방코스는 철원소재 한탄강지질공원(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을 거쳐 고석정 한탄강은하수교 백마고지를 돌아오는 나들이, 오랜만에 체력을 시험해 본 코스치곤 다리 힘만은 아직 쓸만하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만끽한 기분이다.
한탄강은 화산 폭발로 형성된 강. 이 일대는 원래 기반암이 화강암인데 화산이 폭발하면서 현무암질 용암이 뒤덮었고, 한탄강의 침식작용으로 ‘U 자형’ 협곡이 형성됐다고 한다. 수직 절벽과 주상절리의 비경이 펼쳐지는 협곡에 철원한탄강주상절리길이 문을 열면서 수많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가벼운 산책길만 걷던 노인층에겐 좀 무리가 아닐지 모르나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라면 두시간정도 걷는 것은 식은죽 먹기(?)일 것 같다.
가물가물 현기증을 느끼며 철제 출렁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문자 그대로 스릴만점이다. 중간 중간 쉼터가 있어 안성맞춤이다. 총 길이 3.6km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잔도(선반처럼 달아맨 길)를 거닐며 화산활동이 만든 한탄강 일대의 독특한 지형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누가 말했던가 해외 명소 부럽지 않은 비경과 짜릿함을 갖춘 관광지를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삼천리금수강산에 태어난 행운이 분명하다.
자세히 볼 겨를은 없었지만 중간 중간에 놓인 13개 교량도 보는 즐거움에 걷는 기분을 배가시킨다. 대부분 출렁다리 형태라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제법 흔들려 짜릿한 재미를 보게 한다. 주마간산 격이라 다리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 창에서 보니 단층교, 선돌교, 돌개구멍교, 화강암교, 현무암교 등 주변의 지질 특성을 담아 붙여진 12개 교량 이름이 다채롭다.
메기 매운탕으로 점심을 들고 오후에 찾은 곳은 순담매표소에서 지척에 자리한 고석정.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오느라 숨이 좀 찼지만 정자 앞에 우뚝 솟은 바위, 그 웅장함이 외로움을 더해준다. 오르 내리는 계단 가엔 일대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기록들이 눈길을 끈다.
이어서 찾은 철원한탄강은하수교도 빼놓을 수 없는 철원의 명물.
철원9경에 속하는 송대소 주상절리 협곡에 건설한 총 길이 180m, 폭 3m 현수교, 주변 지형과 어우러지도록 설계한 은하수교는 철원군 상징물 중 하나인 두루미를 형상화했다. 은하수교 개통으로 양쪽 유역을 편하게 오가며 한탄강의 빼어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창 수리중인 노동당사는 아직도 골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치열했던 6.25 격전지 백마고지 위령탐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리고 서울로 매진하는 귀로엔 피로가 꿈나라를 안내하니 이날 하루 기분은 시쳇말로 ,짱, 이었다. 상경길 내내 명상에 잠기니 이형균 이원창 전회장의 정감어린 부부애가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0-기자정신 살아 숨 쉬는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4월 28일 찾은 곳은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대한언론인회 문화탐방 일정으로 찾은 이곳에선 때마침 제56회 단종문화제 ,영월학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이 미디어사진기자 박물관은 고명진 전 한국일보 사진부장이 영월 한반도면의 폐교를 리모델링해 세운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기자 박물관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아! 나의 조국’ 사진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AP가 선정한 ‘20세기 세계 100대 사진’에 들면서 유명해졌고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수록된 사진이다. 어떻게 이런 전시관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한국일보 사진기자 시절 그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듯 보람찬 박물관을 기획했음을 생각하니 존경심이 절로 난다. 50년 가까이 글을 쓰면서 나는 무엇을 남겼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을 의심케 한 사진 한 장, 바로 내 얼굴이 아닌가. 비록 주름살이 늘긴 했어도 10여년 전 고명진 관장이 부탁해 몇자 적어 보낸 글귀가 눈에뜨인다. ‘기자는 역사의 기록자다. 기자는 진실만을 말하고 기록 한다’ 내 인물사진과 함께 선명한 문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옛 교실 벽 한쪽을 채운 기자 완장, ‘보도’ ‘촬영’ ‘PRESS’라고 적힌 다양한 완장은 고 관장이 직접 사용하거나 선후배 기자들이 기증한 것이다. 그중에 역사의 뒷이야기를 담은 물건도 있다. 파란 바탕에 노란 글씨로 ‘기자’라고 쓴 완장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기자 완장이 전시된 곳 앞쪽에 작은 프레스룸이 있다. ‘한성순보’와 ‘독립신문’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미디어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 벽면에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은 옛날 신문이 이어진다. 그 아래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들이 사용한 라디오, 미닫이문이 달린 옛날 TV 등이 보인다. 전시실 중앙에는 예전 기사를 쓸 때 사용한 타자기와 전동타자기, 워드프로세서도 장관이다.
이어서 찾은 곳은 영월 청령포(명승 50호), 삼면이 강으로 막히고 뒤로는 육육봉이 솟아오른 청령포는 조선 시대 단종의 유배지, 역사에서 귀가 앞으도록 듣고 읽은 단종애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이곳에 유배돼 겪어야 했던 한 많은 일생이 생생하게 머리에 떠오른다. 영월부 관아(사적 534호)에 자리 잡은 관풍헌은 단종이 홍수에 잠긴 청령포를 떠나 머문 곳, 오래전 홍원기 대한언론인회 회장시 문화탐방지로 이곳을 찾았을 때 나룻배로 건너간 기억이 새롭다. 단종의 흔적이 묻어나는 관풍헌은 멀리서 조망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이날 문화탐방을 마치며 한가지 서글펐다고나 할까 모두들 얼굴속에 노색이 완연한 회원들을 보며 쏜살같은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백발이 저먼저 일고 머리를 뒤덮는걸 누가 막겠는가.
<글 정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