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여러 사람을 보았다. 청춘의 산맥을 오를 때 그들의 꿈과 다른 세상으로 옮겨갈 때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을 했다는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의 췌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수술을 받았다. 몸을 위해서였다.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미국 이민 생활에서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었죠?”
“별거 없어요. 기본적으로 먹는 것은 같고 골프 치면서 노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부자는 포르쉐같은 좋은 차와 명품골프장의 회원이고 또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큰 집을 가지는 거죠. 나도 산타모니카 해변가에 저택을 샀죠.
살아보니까 별로예요. 교통도 불편하구요. 수술을 받으면서 내 인생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봤어요. 저택이나 고급 차가 아니라 그냥 내가 평생 진료한 이만 오천장의 챠트가 나였더라구요.”
그가 얼마 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다른 경험이 있다. 호주의 골드코스트 해변에 저택을 가진 분의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집안에 요트 선착장이 있고 통유리창으로 드넓은 태평양이 시원하게 보이는 집이었다. 그 집 주인은 이민을 와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서 안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저택에 살지 않았다. 자기 가게의 구석방이 편하다고 했다. 거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간이침대에서 자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가게 구석방에서 일어나 진열한 물품들을 먼지 한 점 없이 닦았어요.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가겠어요? 물건들을 닦아주다 보면 내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후 그 노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노인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던 가게였을까. 자랑하던 저택이었을까.
부두 노동자로 출발해서 부자가 된 노인이 있었다. 시장바닥에 떨어진 배춧잎을 줏어다가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던 사람이다. 부자가 되어서도 생활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통장에 수백억이 있어도 좋아하는 소주 한 병 사 마시지 않았다. 식당을 가면 남들이 떠난 식탁에 놓여 있는 소주병을 슬며시 가져다가 남아있는 술을 마셨다. 그가 폐섬유증이라는 죽음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의 돈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부자였을까 가난한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에서 돈을 빼면 남은 게 무엇이었을까. 그의 묘지에는 지나가는 바람만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담도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난 고교 선배가 있었다. 금수저 출신인 그는 야망도 컸다.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정계로 진출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그가 성공을 거머쥐기 직전 암이라는 내용이 담긴 죽음의 소환장이 송달됐다. 죽음을 앞두고 그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헛짓이었어. 그냥 가족과 함께 맛있는 고기나 구워 먹는 건데 말이야.”
폐암을 앓고 있던 시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 매일 죽음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병상에서도 환자로서 또 시인으로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살고 있었다. 그가 누운 매트리스 밑에는 항상 공책과 연필이 놓여 있었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시를 썼다. 그가 죽기 며칠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뭔가 쓰고 싶을 때는 바로바로 쓰세요. 미루지 마세요. 나중은 없어요. 하늘이 내려준 일을 하면서 소중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세요.”
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죽는다는 걸 배웠다. 나도 병이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이 어제 죽은 그들이 그렇게 희망하던 내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더 벌지 못해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서 한이 서린 사람은 없었다. 공통된 후회들은 삶의 좌표를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의 집적이 아닐까. 그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느껴야 하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