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를 즐겨 마시는 분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 한다.
서양 차인 커피가 우리 입맛을 길들이며 대중화 되는 바람에 커피 수입에 엄청난 외화를 쓰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커피의 우리 차문화 잠식을 걱정하며, 전통차, 녹차 마시기 장려를 꾸준히 해 온 결과 요즘은 녹차 마시는 것이 유행이고 따라서 소비량도 많이 늘었을 밖에.....
우리 녹차 하면 쌍계사 근처와 보성이 유명하다.
3년전 하동 쌍계사 근처 녹차원에서 일박하며(생활개선회행사),
산에 야생하는 녹차잎을 따 와,큰 가마솥에 덖은 후 손으로 비벼 말리는 과정을 직접 해보며 배운 적이 있다.
전 과정을 거치면서 왜 질좋은 녹차가 고가로 팔려야 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산 중턱을 헤집으며 녹차 나무의 새순을 한시간 따 봤자 겨우 한줌 될까말까 했다.
전 과정이 하나하나 손을 거치는 정성이 들어가야만 됐고,
야생 녹차가 훨씬 맛과 향이 뛰어나나, 생산량이 소량이며
그나마 몇년 후는 야생 녹차나무가 다 없어질꺼란 걱정을 차원 주인이 했다.
차는 인도와 중국에서 마시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신라 흥덕왕3년(828년)때 인데,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 와 지리산 화개골에 심은 이후 퍼졌다 한다. 처음 나오는 차나무의 새순이 마치 참새의 혀처럼 생겼다 해 "작설"이라 불렀고 "춘설" 또는 "설록" 이라고도 했다.
한 해 3번(5.7.8월) 새순이 나는 데, 색. 맛. 향은 5월 6일 전후 닷새 사이에 딴 것이 최고.
제조 과정에서 발효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우롱차" 로 불린다.
녹차 대중화에 기여한 분은
조선후기인 19세기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던 초의선사로,
초의선사는 해남 대둔사(현대흥사)근처에 일지암을 세우고
그 곳에 차 밭을 가꾸면서
"다신전" "동다송" 이라는 차에 관한 책을 써
차의 이론과 실제를 정리하고 다도를 정립시켰다 한다.
당대의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다도를 배웠고
차 맛에 반해 차가 떨어지면 초의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차 보내 줄것을 졸랐고,
답례로 글씨.책.염주.향등을 선물했다 한다.
녹차는 분청 다기로 마실 때 맛과 운치가 더 한것 같다.
남의 집에 방문 했을 때 소박하고 정겨운 분청 찻종에 녹차와,
한과를 몇 개 깔끔하게 담아 곁들인 찻상은 한폭의 그림이고 안주인의 격을 느끼게 한다.
요즘 다도를 배우는 사람이 많고 동호회도 많지만,
형식을 너무 내세워, 차 마시는 모임이 마치 제사를 지내는 양 엄숙한 분위기를 내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거부감이 든다.
정신을 맑게 해주고 진통.숙취.정혈등 건강에 최고인 차지만 값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더구나 몸이 찬 사람은 맞지 않다고 해 나로선 그 점이 꺼려진다.
녹차 한잔을 제대로 다 마시려면 세번을 우려야 되는 데,
첫잔은 향으로
둘째잔은 맛으로
셋째잔은 약으로 마신다고 한다.
아침, 가족들이 출근. 등교하는 소동이 지나고,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숨을 돌리는 주부 혼자만의 시간.
정답고 편안한 사람과 마주하며 차를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
그런 시간들이야 말로 "차한잔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찌꺼기는 말려 모아 놨다가 밥 지을 때 위에 얹어 녹차 밥을 만들어 양념간장에 비벼 먹으니 일미였습니다.
첫댓글일찍 다녀가셨네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 코 끝으로 스치는 은은한 향과 신비로운 첫 맛, 뒤끝을 아리는듯한 쌉싸름한 맛 등 나름대로 음미하면서 마시는 녹차 한 잔이 아마 빗소리를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분위기가 되살아납니다. 차 한 잔의 행복 그건 생활의 여유입니다.
첫댓글 일찍 다녀가셨네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 코 끝으로 스치는 은은한 향과 신비로운 첫 맛, 뒤끝을 아리는듯한 쌉싸름한 맛 등 나름대로 음미하면서 마시는 녹차 한 잔이 아마 빗소리를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분위기가 되살아납니다. 차 한 잔의 행복 그건 생활의 여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