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20100625 역사학과
이 솔
-서지사항
저자: E. H. 카
서명: 「역사란 무엇인가」
출판사: 까치글방(까치) 2001
-저자소개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년 6월 28일 ~ 1982년 11월 3일)는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16년부터 20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하였다. 1936년 웨일스 대학 교수로서 국제 정치학을 강의하다가 1947년에 물러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정보성 외교부장(1939∼1940), 《타임스》 논설위원(1941∼1945)을 역임하였다. 그 후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의 기초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주요 저서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1)에서 소비에트형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하는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사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주주의운동을 유럽인들도 이해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밖에도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1961),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1934), 《위기(危機)의 20년 Twenty Years’ Crisis》(1939), 《서구세계에서의 소비에트의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1947), 《볼셰비키 혁명 The Bolshevik Revolution》(1958) 등 많은 저작이 있다.
또, 에드워드 카는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본문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역사란 그저 ‘국사, 근현대사, 세계사로 나누어진 가장 좋아하는 과목’일 뿐 이었고, 정말 부끄럽게도, 전공으로 역사학을 선택 했을 때조차 나는 역사라는 학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나는 역사학입문 수업을 들으며 이제까지 공부해왔던 역사가 아닌 역사학의 또 다른 면에 흥미를 느꼈고, 더 깊게 탐구해보고자 E. H. 카가 저술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의 첫 시간에 역사가 ‘E. H. 카’와 그의 역사에 대한 정의 및 역사관에 대한 아주 간략한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입문 단계의 역사학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책과 달리 쉽게 친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E. H. 카가 생각하는 역사의 본질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를 가졌다.
E. H. 카에 따르면, ‘사실’ 그것만으로는 ‘역사’가 될 수 없다. ‘사실’은 역사가가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해독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시대의 영향을 받은 역사가들의 해석과 선택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했다.
또한 E. H. 카의 관점에서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했던 역사는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닌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이다.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들이 모여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의 기능은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E. H. 카는 극단적 역사 옹호자들이 역사를 과학으로부터 배제시키려고 하는 점을 지적하며, 역사학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사학을 더욱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은 모두 인간과 환경의 상호간 영향에 관해 연구하며, 연구의 목표도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동일하므로, 역사가는 다른 과학자들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도덕의 관계에 있어서, E. H. 카가 중요시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인물의 업적이다. 인물의 성격, 사생활에 대한 역사가의 도덕적 판단은 인물의 업적까지 폄하하거나 치켜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판단을 내릴 때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나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해 E. H. 카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원인과 결과의 질서 정연한 전후관계 속에 배열함으로써 성립 한다’는 것을 공인된 교리라 말했다. 또한 역사가는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시한 원인들을 다시 해석하여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원인을 합리적인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으로 구별하면서, 합리적인 원인은 다른 나라, 다른 시기, 다른 조건에서도 언젠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유익한 일반적인 원인이 되어 그것으로부터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우연적인 원인은 결코 일반화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말 그대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도 가르쳐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진보로서의 역사’에 관해서, E. H. 카는 진보를 ‘역사 서술의 기초가 되어야 할 과학적인 가설’이라 본 액턴의 견해에 동의한다. 즉, 역사가는 진보라는 가설을 적용하여 인간의 행위를 ‘진보’ 또는 ‘퇴보’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E. H. 카는 역사를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진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E. H. 카는 인간들이 점점 이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움에 따라 ‘이성의 확장’을 넘어 ‘이성의 악용’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들은 ‘역사의 진보적인 요인으로서의 변화에 대한 감각’과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지침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신념’, 이 두 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E. H. 카는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하고 있으며, 낙관적인 입장에 서서 ‘역사는 움직인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전반에서 ‘E. H. 카’ 라는 역사가가 정말 세심하고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고유한 목표이며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서술하는 것이 곧 역사라는 (지금의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감히 ‘비교적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어지는) 19세기 실증사학을 대표하는 랑케의 주장에 대해 그는 역사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시대적 위치를 반영 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역사적 사실은 수많은 사실들 중에 역사가의 해석을 거쳐 결정된 사실만을 의미한다는 점 등의 납득할 만한 이유들을 제시하며 반박했다.
또한 E. H. 카는 사회는 사회로써, 개인은 개인으로써 각각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서로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관점에 기초하여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 밖에 ‘진보’라는 추상적 개념을 하나의 가설로 보고 ‘진보로서의 역사’를 정의한 점, 역사가가 개인에 대한 도덕적 유죄 판단을 내리는 것은 때로는 그 개인이 속한 사회나 집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 등이 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발견한 E. H. 카의 기발하고 독특한 사고방식과 그것에 대한 적절한 설명에 감탄했는데, 이런 그의 근거 있는 주장들은 세심하고도 신중한 사유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제 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에서 “역사가가 사실과 해석, 이 둘을 분리시키거나 둘 중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삼고자 애쓴다면, 의미나 중요성이란 조금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게 되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면서 의미 없이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고 싶다. ‘가위와 풀의 역사’란 지나치게 사실만을 중시하는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을 뜻하고, 반대로 ‘선전문이나 역사 소설’이란 지나치게 사실의 해석과정을 중시한 나머지 역사를 역사가의 주관적 산물로 보는, 마찬가지로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여기에서도 E. H. 카는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떠한 극단적인 길로도 빠지지 않고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구절은 앞에서 말한 E. H. 카의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신중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는데, 독특하게도 역사와 과학의 유사함을 강조하며 두 학문의 관계가 더욱 그렇게 되길 바라는 E. H. 카의 견해가 담긴 제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역사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있어선 처음 보는 놀라운 견해였다. 후에 E. H. 카의 견해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비록 안타깝게도 나는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장담하지 못하지만,「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E. H. 카가 바라본 역사의 본질과 역사 서술의 문제점,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역사관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부분적으로 쓰여 있는 상당히 많은 다른 역사가들의 역사관까지 알 수 있어서 이번 경험은 앞으로 역사학을 공부하는 데에 더욱 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이번 기회는 역사의 기초적 바탕이 되는 입문 단계의 역사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여 앞으로 역사학도로서 신중한 사유 끝에 바람직하고 뚜렷한 나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겠다는 목표까지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무엇보다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저자 소개와 서지사항 보완 요. 동일저서에 가서 토론 요.
이 책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에서 읽지 않은것 같네요..ㅋㅋ 수고 하셨습니다.
제가 답변 드릴 수 있을 만큼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솔 후배님.. 제가 말한건 이 책이 1960년에 나왔다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다면 단순히 역사의 개념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냉전체제 속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위기 의식 속에을 반영한 도서라 생각했다면 더 좋았다고 생각해서.. 답글을 달았습니다. 글의 빈약함이 아니라 추가했으면 좋았다는 저 혼자의 의견일 뿐이에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길.. 죄송 ㅜ_ㅜ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글에서 우연적인 것은 결코 일반화 될 수 없다고 쓰셨는데 이 책에서 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연의 효과만을 강조해서는 안되지만 우연도 나름대로의 인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도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