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철학자 라캉의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엄마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 엄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일을 하려 노력한다. 아기가 어떻게 한번 웃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면 계속 웃으려 한다는 거다. 어떻게 한번 아장아장 걸었는데 가족들이 박수를 쳐주면 더 걸으려 한다. 부모가 만족해하는 것을 자신이 실행하면 나도 행복할 것이라는 동일성의 환상이 있다는 말이다.
성장할수록 그 대상은 엄마에서 선생님, 친구들, 사회로 확장된다.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이 칭찬해주면 자꾸 더 공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대학교와 직장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사회에 인정받고 칭찬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감정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별되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엄마가 원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런 뒤죽박죽된 감정 상태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나에게 맞는 삶인가?’하는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번민하는 건지도 모른다.
일요일 법회가 끝나고 장병들과 차를 한잔 하곤 한다. 어느 병사를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군대를 쉬러 왔습니다. 지금 너무 홀가분하고 편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더 들어봤더니 다음과 같았다. 이 병사의 집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학교 끝나면 늘 학원과 과외로 돌았고, 주말이나 연휴에도 항상 공부, 공부였다고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들도 최상의 성적으로 보답했다.. 드디어 대입 수능! 이 병사는 단 한 과목을 빼고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맞았다. 그런데 재수를 한다. 왜냐? 백점을 받지 못한 단 한 과목이, 이 원수 같은 게 3등급이 나와 버린 것이다. 서울대, 연고대는 물 건너 간 것이다. 다시 1년 쓰고 맵게 준비해서 수능을 봤지만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도저히 버틸 힘이 없어 도피 겸 휴식을 취하려 군대에 왔다는 전언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엄마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한 병사의 자조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엄마의 욕망을 꿈꾼다’는 이 병사에게 ‘어른의 시작은 내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별할 때부터인 것 같다’는 말을 차마 못해줘서 내 마음이 안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쩌면 행복해지려 하기보다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희망보다는 두려움에 더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지도 않고,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며 깊이 묻어둔 채 두려움과 용기 없음에 스스로 타협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교신문2961호/2013년11월13일자]
첫댓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철학자 라캉의 말과 '어른의 시작은 내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별할 때부터인 것 같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좋은글 전해주신 여운거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