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죽비소리·철부지소리(178)
GNP에 영향 미치는 굴뚝새 한 마리
요즘 환경단체나 일부 지각 있는 생태학자들이 지적하기를 우리나라 하천이나 저수지와 땜 등, 내수면의 생태가 외래어종이나 외국동식물들로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의 고유어종이나 동식물이 말살되어간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정보매체를 통해 보도하는 것을 자주 본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이유는 내가 최근까지도 환경관련 사회운동단체와 야생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양식용 황소개구리, 떡붕어, 배스, 블루길, 붉은 귀 거북이 같은 외래종을 경쟁적으로 많이 들여왔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놓자 전국의 호수와 저수지는 자정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생태계의 순환에 동참하며 호수의 자정력을 도모하던 수서곤충은 물론, 토착 어류와 개구리, 심지어 뱀까지 이들 외래종이 먹어치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 외래종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이 아니고 이 교란행위로 말미암아 자정능력이 무너져 심지어 호수나 하천이 썩어가자 이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곳엔 소독약의 양을 대폭 늘려야만 했고, 소독약이 늘자 수돗물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수돗물을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먹는 물은 생수공장서 배달하는 물로 해결한다. 생수공장이 골짜기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계곡이 마르자 동물들이 숲에서 사라지고, 동물이 배설물을 통해 산야에 씨앗을 공급하지 못하자 숲은 황폐해지고 만다. 연쇈 반응을 일으켜 자연이 황폐해진다고 카오스 이론은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과학출판상을 받은 『제3의 침팬지』에서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굴뚝새와 GNP의 관계’란 글로 말머리를 흥미롭게 던졌는데, 인간의 단편적이고 천박한 판단으로 인해 특정 동식물이 제거된 후(아니 굴뚝새 한 마리라도 그렇다),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는 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고 했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굴뚝새 그 하찮은 새 한 마리의 존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굴뚝새 한 마리가 일국의 GNP에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산기슭 어느 구석에 숨어사는 작디작은 굴뚝새는 인간에게 있어 그놈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존재일 따름이다. ‘한 마리는커녕 이 세상의 모든 굴뚝새가 모조리 멸종된들 지금 막대한 개발과 축적된 경제체제하에서의 GNP는 굳건할 것인데’ 라고 누구나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시아의 어느 대륙의 귀퉁이에서 몇 야생동물인 고리라가 사라져버려 미국에 폭풍이 몰아친다면 역시 터무니없다 할 것이 아닌가? 새 시대의 새 과학이라 일컫는 카오스 이론은 거짓일까? 야생동물과 폭풍은 설명을 위한 화두라 치더라도, 자연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GNP와 굴뚝새의 관계로 ‘재래드 다이아몬드’가 말머리를 흥미롭게 던졌는데, 인간의 천박한 판단으로 특정 동식물이 제거된 후,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음 알 수 있다.
지금의 세기는 GNP의 높낮이가 그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고, G20개국이니 뭐다하면서 그 나라들은 우월적 지위로 우쭐해하면서 개발일변도의 경제제일주의에 빠져 버렸고, 선진국은 후진국과 변방국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후진 국가들도 개발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보니 도시 근교나 인가에서 쉽게 발견되던 굴뚝새는 종적을 감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그 과정을 겪은 지 오래다. 굴뚝새가 둥지를 트는데 필요한 이끼가 대기와 수질오염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먹이가 되는 거미나 곤충도 드물어졌지만, 그나마 농약과 환경호르몬에 절어버렸다. 마치 굴뚝의 먼지와 검은 재를 뒤집어 쓴 듯, 머리부터 꽁지까지 짙은 적갈색에 갈색을 띈 가는 무늬로 몸을 치장한 굴뚝새는 자신의 자태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은밀한 곳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개발에 밀리고 오염으로 우리나라에선 먹이를 찾지 못해 거의 사멸되고 멸종위기에 내 몰렸고 멸종단계 일보 직전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산야가 황폐해지면서 굴뚝새와 소원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이 혼돈에 빠지면서 환경과 카오스의 이론으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논리의 비약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농사를 지울 때 살충제를 뿌리자 벌레가 비실거리기 시작했고, 비실거리는 벌레를 먹은 닭이 비실거리다 상품가치를 잃은 닭을 잡아먹은 주인 즉, 맨 처음 살충제를 뿌린 농부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예전에 호주는 사탕수수가 수익이 많으니 호주정부에서 권장하기를 농사의 높은 수율을 위해 끝 간 데 없는 농장에 오직 사탕수수를 심게 권장했다. 그러자 사탕수수를 좋아하는 풍뎅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피해가 타작물에 까지 미쳤다. 이에 호주 당국은 부랴부랴 하와이에서 풍뎅이의 천적이요 이를 잡아먹는 축구공만한 수수두꺼비를 잔뜩 들여왔다. 그런데 그 두꺼비가 악몽일 줄이야. 두꺼비피부에 강력한 독을 가진 수수두꺼비는 천적이 없을뿐더러 먹성도 좋아 호주 북동부를 뒤덮으며 퍼져나가는데, 수입한지 근 7~80년 동안 평원에 적응하면서 다리가 길어져 번식과 이동속도가 엄청 빨라졌을 뿐만이 아니라 악어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두꺼비들을 먹던 거대한 둥치의 악어가 이 두꺼비의 독으로 악어마저 죽어 너부러지는 사태를 만난 호주 당국은 비상에 걸렸다. 왜 악어가 죽느냐하면 독이 각력한 두꺼비를 먹고 그 독에 악어가 희생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두꺼비를 없애기 위한 유전자 조작까지 연구하였다고 하니 이 또한 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환경재앙과 생태교란의 경험을 선진국에선 경함한지 오래이다. 환경재앙의 좋은 예이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더운 나라 보르네오 섬은 말라리아가 성행한다. 그래서 말라리아를 줄이려 DDT를 습지나 말라리아모기가 자라는 곳에 뿌리자 모기는 줄어들었지만 보르네오 섬은 뜻하지 않은 중대 사태를 만나게 되었다. DDT를 쏘이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바퀴류의 곤충이 도마뱀의 먹이가 되었는데 바퀴를 먹은 도마뱀은 갑자기 움직임이 느려지고 비실대기 시작하자 이를 고양이들이 포식해 고양이가 2차 감염돼 중독되고 죽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없어지자 쥐 떼가 들끓고 주민들은 말라리아보다 더 무서운 페스트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재앙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DDT의 면역력이 생긴 나방 유충을 먹던 도마뱀이 감염 돼 사라지고 도마뱀이 사라진 움막에서 나방 유충이 서까래를 갉아먹게 되었고 드디어는 움막의 지붕이 풀싹 주저앉았다는 일련의 사건의 역사는 이미 고전이 된지 오래전의 이야기다.
어디 이 보르네오 섬 뿐이랴. 우리나라도 해방이후 몸과 머리에 이가 성행해 옷이나 머리에 DDT를 뿌린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몸에 피부병이 생기고 머리에 덕지덕지 부스럼이 생겨 나 고생한 경험을 우리 이 시대의 사람들은 갖고 있다.
인류는 편견을 바탕으로 하는 경작으로 자연에 큰 상처를 준지 벌써 1만여년이 되었다.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사업혁명으로 자연을 도륙한지 겨우 500여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는 핵을 사용한지 5~60년 만에 일본이나 소련에서 경험한 재앙의 상처는 굴뚝새마저 볼 수 없는 환경 재앙에 직면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은 끝이 없고 이 이기적 목적으로 재단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고 있으면서도 태연한 자세들이다. 그리고 이런 재앙을 엉뚱하게 해결해 보려고 대든다. 생태계 질서를 앞에서 든 호주의 예와 같이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기 시작해 벌써 생태계를 교란에 빠뜨린 지 오래고, 심지어 핵으로 오염된 지구를 떠나잔다.
기억들 하시나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어느 한 강연에서 “지구온난화와 핵전쟁과 유전자 조작이 발생시킬 환경재앙으로부터 인류가 멸종되지 않으려면 달(月)이나 화성(火星)에 정착촌을 세우고, 생존을 위해 우주로 퍼져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63억 명이 넘는 이 지구의 인간군상을 이 계획으로 생존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외계에 식민지를 찾을 수 있는지 여부는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면 현재로선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몇 명이라도 사람이란 씨만 이 우주에 남겨 놓자는 주장일 테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생태환경을 살리고 유지하기 위해선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것, 우리의 본래의 생태환경을 되살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런 연유로 야생동물의 생태와 생태환경에 대해 흥미가 많고 시간이 주어질 때 마다 TV를 통해 ‘동물의 세계‘를 나는 자주 관람한다. 인가주병이나 깊은 산속 덤불속에 가리지 않고 쪼그만 이 새가 날아다니며 찌찌쪼로 쪼로로로 우는 이 굴뚝새는 요즘 초여름에는 산지에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고 숲속을 떠나지 않지만 겨울엔 먹이를 찾아 동리주변이나 인가를 기웃거리며 보금자리를 찾을 이 굴뚝새의 생존이 걱정이 된다. 이 굴뚝새 한 마리를 내세워 GNP를 운운하기엔 좀 미안하지만 카오스의 이론을 빌어 GNP에 미치는 생태계의 영향이 지대해 지면서 굴뚝새의 생존과 건강을 통해 본 사람의 생명을 이제 살피고 관심을 둬야 할 때라 믿는다.
첫댓글 이 수필은 어느 월간지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함께 읽고 공감한다면 그 이상 더한 바램이
없겠습니다.
월간지에 기고하시고
여기 후배들에 읽히도록 배려하심은
잘하신 일이고, 우리나라의 환경도 걱정이 됩니다.
하찬은 새 한마리도 자연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군요.
내용을 읽고 우리나라 환경의 심각성을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