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권력은 주권자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누군가 대통령이 되면 그를 최고 권력자로 떠받든다. 정치인은 물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조차 그 앞에 줄 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도 대통령을 최고 권력자로 우상화한다. 글 한 줄 말 한 마디에도 권력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린다. 지금 정권처럼 제왕적 대통령일수록 권력의 위세는 하늘을 찌른다.
대통령 권력의 성역은 높고 넓다. 언론이 대통령의 말을 들은 대로 보도해도 찍히는 판이다. 여러 언론사들이 함께 보도했지만, MBC만 찍어 누른 것은 성역 정도가 아니라 독재 권력의 행태이다. 대통령 부부를 건드리면 대통령실은 즉각 고발조치에 들어간다. 감히 대통령의 치부를 폭로하는 자들을 그냥 둘 수 없다는 태도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력 실세들
대선 당시 공개된 김건희 박사(?)의 녹취록에서 “권력을 잡으면 경찰이 알아서 입건한다”든가 “청와대 가면 (비판언론은) 전부 다 감옥에 넣어버리겠다”고 했는데,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김 박사의 역린을 건드린 <더탐사>와 <서울의소리>에 대한 수차례 압수수색은 물론 이들 매체에 대한 제보자들과 <오마이뉴스> <한겨레> 기자들도 경찰에 불려다니기 바쁘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대통령 부인을 권력 실세라고 한다.
대통령 부인만 권력 실세가 아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그 측근들은 다 권력 실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법무장관 한동훈이다. 일개 장관이지만 권력 실세로 군림하는 것은 대통령이 싸고도는 탓이다. 한 장관 자택 취재를 시도한 <더탐사> 기자를 두고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마치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받은 것처럼 검찰은 즉각 구속수사를 시도했다. 두 차례 구속영장은 번번이 기각됐지만, 고통을 주겠다는 목표는 관철된 셈이다.
이태원 참사로 진작 해임되어야 할 행안부장관 이상민이 아직 버티는 것도 대통령이 감싸고 있는 탓이다. 법적 권한이 없는 윤핵관들이 당정을 좌우하는 것도 모두 대통령을 등에 업고 하는 일탈 행위이다. 정치검찰이 어느 때보다 편파수사를 일삼는 것 또한 검찰 출신 대통령에서 비롯된 검찰권력의 실상이다.
위헌상황으로 치닫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입법부로서 3권분립의 한 주체인 국회도 대통령 앞에서 납작 엎드렸다.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2023굿바이전’이 국회에서 개막 당일 새벽에 기습 철거당했다. 성역화된 권력에 의해 예술활동의 자유도 무참하게 함께 짓밟혔다. 학생작품 ‘윤석열차’가 수난을 당한 것처럼, 대통령 풍자가 불가능한 사회는 한 마디로 ‘풍자’가 죽은 독재사회이다.
이처럼 모든 권력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헌법 위반 상황이다. 헌법 제1조 2항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면 위헌이며 탄핵 대상이다. 그럼에도 헌법은 대통령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언론이 대통령을 권력자로 우상화하고 일탈적 권력을 묵인하는 것을 넘어서 권력에 충성 경쟁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이 ‘법치’를 내세우는 것이다. <더탐사> 기자에게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때도 ‘법치’를 내세웠다. 법치는 누구에게 고통을 주는 권력의 무기가 아니다. 법을 권력의 무기로 쓰는 법치는 ‘인치’보다 더 큰 해악을 초래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법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그 권한을 법으로 정해 두었다. 법적 권한의 범주 안에서 통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법치이므로 대통령은 법치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법치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요구하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권력체제에서는 오히려 국민들이 나서서 대통령에게 법치를 하라고 삿대질해야 마땅하다.
거꾸로 역주행하는 법치의 검찰독재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법치를 주장하는 것은 법치의 역주행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법을 무기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으름장이다. 노조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노조원들을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그 보기이다. 노사분쟁을 정치적으로 중재해야 할 대통령이 사용자의 편에서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는 법치가 아니라 권력남용이다. 노조는 파업을 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까닭이다.
법에 대한 더 심각한 착각은 법을 통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법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집권자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며, 둘은 약자들을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권력의 부당한 횡포를 법으로 통제함으로써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다. 더 쉽게 말하면 권력과 금력의 갑질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법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법치를 하려면 을의 처지에 있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법치는 오히려 거꾸로 역주행하고 있어 위험천만이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법치를 표방하며 검찰독재로 가고 있는 탓이다. 행정 요직을 장악한 검찰 조직과 편파수사를 일삼는 검사들의 검찰독재는 불공정 판결을 하는 판사들의 법관독재와 결탁하여 한국 사회를 새로운 독재체제로 재구성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에 정치군인들이 위력을 과시하는 군사재판처럼, 검찰독재 상황에는 정치검찰들이 좌지우지하는 검찰재판이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주범이다.
검찰과 법관이 짜고 흔드는 사법독재의 실상
법적 상식과 공정한 재판을 무시한 대표적 판례가 곽상도 아들 50억 퇴직금의 무죄 판결이다. 하루 5억 환형유치 판결을 한, 이른바 황제노역 재판 이후 전무후무한 황제재판이다. 50억을 주고받은 사실이 분명한데도 대가성이 없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억지이다. 조국 딸은 장학금 600만 원에도 유죄인 반면, 200만 원대 봉급자가 재벌 회장 뺨치는 퇴직금을 받고도 무죄라는 것은 검찰과 법관이 짜고 치는 사법독재가 분명하다.
김학의의 성상납 범죄는 동영상 증거까지 있는데 무죄이고, 거꾸로 그의 심야 출국을 막은 검사들은 절차 위반으로 법의 심판대에 섰었다. 이것은 검찰조직이 얼마나 썩었는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법의 잣대를 거꾸로 들이대는 검찰이나, 뻔한 증거를 두고 법리를 농락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무죄 판결을 하는 법관이나 모두 사법독재의 주범들이다.
문제적 사실은 법적 권한을 무시하는 자일수록 권력이 커진다는 점이다. 법적 권한은 상식과 공정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할수록 제왕적 대통령이나 황제 판사로 부각된다. 상식적으로 아무도 믿지 않은 김학의와 곽상도의 무죄를 재판부 홀로 믿어줌으로써 해당 판사의 권력이 얼마나 위력적인가 실감하게 만들었다. 더 문제적 사실은 두 사람 모두 검찰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법관들의 법치 또한 국민들 눈높이로 볼 때 한갓 법조인들의 법기술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군부독재는 검판사들의 비굴한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검찰이 군부의 앞잡이가 되고 법관들이 판결로 맞장구를 쳐서 독재에 맞선 민주인사들을 구속하고 처형했다. 지금의 검찰 행태를 보면, 군사정권 시절에 알아서 기었던 상황을 훨씬 능가한다. 이재명 수사는 증거가 없는데도 60여 명의 검사를 동원하여 240여 차례 압색을 함으로써 일경의 독립운동가 수사보다 더 가혹한 반면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주가조작 수사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한 차례 소환조사조차 않고 있다. 그러므로 털고 싶으면 털고 덮고 싶으면 덮어버리는 검찰의 자의적 수사는 가히 ‘검폭’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독재자의 경향 가운데 핵심은 정적 탄압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독재자의 경향으로 ➀민주주의 규범의 거부 ➁정치 경쟁자를 불인정 ➂폭력의 조장 또는 묵인 ➃언론 및 정치 경쟁자 억압을 들고 있다. 넷 가운데 둘이 정치 경쟁자에 대한 억압이다. 정치 경쟁자를 적대자로 간주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곧 멈춰서게 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되는 이재명 수사와 체포 획책은 정적을 억압하는 독재자의 전형이다.
야당 대표뿐 아니라 여당 대표도 정적으로 간주되면 그냥 두지 않는다. 집권여당의 이준석 대표를 쫓아낸 사실은 가히 엽기적이다. 당대표 축출에 멈추지 않고, 당대표 선거에 개입하여 당규까지 바꾸면서 유승민의 당권 도전을 막는 한편, 나경원마저 윽박질러 출마를 저지했다. 마침내 안철수까지 아무 말도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이 과정에 수석들이 언어폭력을 자행해도 대통령은 묵인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물론 정당 민주주의까지 무너뜨린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자, 검찰 권력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검찰 출신으로 인사 도배를 하고도 모자라, 학폭 아들 징계를 법기술로 덮으려 한 검찰 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검찰 권력자들끼리 검찰 출신을 낙점하고 검증하고 임명하면, 학폭 가해자 아들을 감싸고 돈 정순신 같은 이가 경찰의 수장이 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검사는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라는 정순신 아들의 폭로는 그나마 검찰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역설적 순기능을 한 셈이다.
이번 사태처럼 검찰의 내부자 거래를 통한 대통령의 검찰독재는 더욱 가속화될 조짐이다. 따라서 진정한 법치로 대통령 권한을 적극 통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어떤 해괴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한참 늦었지만 역주행하는 법치의 질주를 막기 위해 모두 나서서 위험경고를 하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법치란 검찰을 앞잡이로 법의 칼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위험한 법기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