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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연례행사가 여럿 있다. 그중의 하나가 여름에 설악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과 동행하여 설악에 들어갔고 많은 추억들을 남겼다. 올해 2009년 여름에는 특별한 사람들과 설악에 들어간다. 서울 무학국민학교 동기들과 설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어릴적 친구들의 의미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40년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 뿐 그 옛날에 전혀 몰랐던 친구도 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아주 어릴적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에 바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40년 전의 친구들! 참으로 오래된 친구들이다. 그들끼리는 서로들 연락하고 만났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중학교 마치고 고향 경주로 와서 고향에서 지금껏 살아왔기에, 나로서는 그들과의 만남은 어떤 특별한 해후이기도 하다.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이제 설악에 들어가 볼까? 우리들의 목적 코스는 천불동계곡-희운각대피소(1박)-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 코스이다. 장마기라 성공적으로 등반을 마쳐낼 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설악에 들어가는 데에는 성공한다.
산악동호회 <산에 대하여>는 2009 하계훈련지를 설악산으로 잡았다. 이 모임의 중심 멤버인 긴겨울이 공룡능선을 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된 것이다. 나는 긴겨울이 가고 싶다는 산에는 어디든 같이 가고싶다. 그는 요즘 사람 같지않게, 남을 잘 배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며, 특히 산심이 깊은 사람이기에 그렇다.
<산에 대하여>의 설악산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져...........경주팀(우원, 단미)은 경주에서 16일 설악으로 올라가 속초에서 1박하고, 서울팀은 17일 새벽 6시 반 경에 서울 잠실을 출발하여 설악으로 올라와, 두 팀이 오전 10시 경에 설악산의 척산온천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위 사진은 서울에서 설악으로 출발하려고하는 서울팀이다. 좌로 부터..........이성표(수송), 초보산지기(서브리더), 깊고푸른바다(수송), 이유경(의료), 이명자(기록), 장익진(수송), 긴겨울(등반대장,총무)이다. 서울팀 드림팀, 홧팅!!
설악으로 오다가 아침식사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표정들이 밝고 즐겁다. 사는 것이 늘 이렇게 즐겁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이렇게 웃으면서 자주 만나자.
서울팀은 내 말을 듣고 한계삼거리에서 미시령으로 넘어오는 모양이다. 미시령 코스는 미시령에 터널이 생겨 백두대간 동쪽으로 넘어오기가 가장 쉬운 길이 되었다. 서울팀이 미시령을 넘어 오면서 울산바위를 본 모양이다. 긴겨울이 찍었겠지. 그냥 지나쳤을까?
자, 이제 경주팀(우원, 단미)이다. 우리는 서울팀보다 하루 전인 16일에 점심 때 쯤해서 설악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다가 동해고속도로 상에 있는 옥계휴게소에 들런다. 예전에는 동해휴게소라고 했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동해안에서도 명사십리로 유명한 명주 망상해수욕장이 이곳에 있다. 위 사진처럼 백사장이 십리에 이른다고 명사십리이다.
강릉에서 위로 계속 올라가지 않고 좌회전하여 서울방향으로 틀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횡계에서 내려 용평스키장으로 들어간다. 왜? 최근에 개장을 서두르는 세계 최고의 리조트인 알펜시아리조트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계올림픽이 유치된다면 이 곳은 노난다. 지난번 유치 때 실패하는 바람에 잠시 주춤했지만, 강원도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다시 유치 신청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김연아 때문에 유치할 확률이 많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이곳은 금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A지구는 골프장과 빌라, B지구는 스키장과 여러가지 유락장, C지구는 동계스포츠 경기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는 B지구이다. 내가 왜 여기에 가 보느냐고? 지금 촬영하려고 선 이 자리에 투자를 좀 해 놓았기 때문이다.
속초의 청초호 호반지역의 모텔, 17일 아침 풍경이다. 속초 해변에는 유명한 두개의 호수가 있는데 영랑호와 청초호이다. 예전에는 쏙 들어온 지형의 바다였는데 해안의 모래 퇴적으로 입구가 막혀버려 호수로 변한 곳이다. 이름하여 석호라고 한다. 영어로 lagoon..........오늘 엄청난 비가 온다고 했는데 현재까지는 아니다.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는 것일까? 서울팀은 지금 인제를 35km 남겨놓고 있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서서히 준비하고 약속장소인 척산온천장으로 나가야지.
드디어 서울팀과 경주팀이 척산온천장 주차장에서 만났다. 무학동기가 유일하게 아닌 단미가 촬영해 준다.
드디어 설악으로 들어간다. 설악동 지나 신흥사 대불을 거쳐 저항령계곡위의 다리에 섰다.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는 걸어서 50분 걸린다. 그 비선대에서 부터 설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비선대로 가다가 좌측으로 보이는 집선봉. 일명 권금성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 세조시대에 이 권금성에 권털보라는 무시무시한 산적두목이 살았는데 아무도 이를 건들지 못하는 장사라고 했다. 기록에 의하면 수염이 못같이 쭈뼜쭈뼜 튀어나왔다고 한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무리지어 사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얘기는 지금까지도 많이 전해오고 있다. 유명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계유정란으로 많은 충신들이 죽임을 당할 때 생육신 중의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한양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방랑생활을 했는데, 그 중의 한 곳이 설악산 오세암이었다고 한다. 오세암! 암자가 너무 높아 암자 밑으로 구름이 노닌다고 했던가? 지금 설악동 권금성의 권털보 산적두목이 설악에 김시습 대감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을 모조리 데리고 오세암으로 넘어 갔다고 한다. 설악동에서 오세암이 어딘가? 지금 비선대에서 마등령 넘어 내설악으로 내려가야 나오지 않는가? 말하자면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는 길이다. 마등령을 넘어 잡아온 큰 멧돼지 한마리를 마당에 내려 놓으며, "설악에 계실 때까지는 편안하게 지내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 뒤 권털보는 매일 두명의 부하를 한 밤중에 백두대간을 넘어가게 해(요즘 치면 당번이겠지?), 아침에 오세암에 도착해 김시습 대감이 밤을 무사히 보내었는지 안부를 살폈다고 한다. 몇년 뒤 김시습이 설악을 떠날 때 설악에서는 큰 이별의 잔치가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김시습이 있었던 유명한 암자 오세암의 이름도...............5살 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가 사서삼경을 외우고 그 해석을 자유자재로 하며 한시를 척척 지어낸다는 소문을 듣고 명군 세종대왕은 그 어린 아이인 김시습을 궁궐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어전에서 세종은 어린 5세의 김시습에게 경전을 외우게 하고 한시를 짓게 하니 과연 김시습 아이는 천재였다고 한다. 세종은 그 자리에서 감탄하면서 잘 자라 나중에 국가의 큰 동량이 되어라 하고 격려를 하며 '五 歲 神 童' 이라는 글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시습이 머물던 설악의 오세암은 그 오세신동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비선대로 향하는 즐거운 동심들. 익진아! 대춘아! 맹자야! 성표야! 니네들 지금 어디 가고 있니?
가다가 우측으로 저항령이 보인다. 한국전쟁 때 엄청난 군인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치열했던 설악산 전투지역이다. 저항령 오른쪽 높은 산이 황철봉이다. 왼편 봉우리가 1250봉으로 구름이 끼면 금강산을 연상시키는 바위봉이다. 이 저항령계곡 좌우로 엄청나게 많은 바위골들이 산재해 있다.
드디어 비선대에 도착했다. 비선대를 장식하는 두개의 유명한 바위 봉우리, 장군봉과 적벽이다. 좌봉이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우봉이 적벽이다. 적벽은 70년대 초기에 한국 산악계의 선각자들이 다투어 초등을 하려고 애 썼던 유명한 오버행이 있는 Redface이다. 당시에 크로니와 요델산악회가 서로 초등을 경쟁했는데, 겨울 토왕성폭포 빙벽을 초등했던 크로니의 박영배가 적벽을 초등하고 만다. 나는 당시에 크로니 사람들을 좀 알았는데, 요델에도 이영식 형을 알았다. 그는 당시 양폭산장지기였다. 영식형은 지금 미국에 있다. 당시의 크로니의 박영배, 남순철씨는 서울에, 안나푸르나의 영웅 유동옥 형은 부산, 박인록 친구는 일산에서 살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과 왔던 비선대에 이번에는 무학동 친구들과 같이 왔다. 옆에 알리바이와 게쉬타포가 서 있다. 깊고푸른바다는 내 뒤에 가려져 있네. 그 큰 키에 잘도 숨었다.
이제 천불동계곡으로 들어가자. 천불동은 비선대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7 km 코스의 중간 계곡으로 설악의 산악미를 한곳에 집약하듯, 와선대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주담, 이호담,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포 등 유수한 경관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천불동이라는 호칭은 천불폭포에서 딴 것이며, 계곡 일대에 펼쳐지는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관(奇觀)을 구현한 것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계곡으로는 한국 최고의 계곡이다. 한국의 유명한 계곡들을 열거하자면 뱀사골(지리산), 칠선계곡(지리산), 탐라계곡(한라산), 무주구천동(덕유산), 용소골(응봉산), 화양동구곡(도명산), 선유동계곡(대야산), 무릉계곡(청옥산), 소금강(오대산) 등보다 설악의 천불동이 더 아름다운 계곡이다. 설악보다 한수 위로 쳐주는 금강산도.................'금강산에는 천불동이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칠선골 입구의 다리에서 같이 선 단미와 나. 단미는 천불동이 처음이다. 작년 내외설악 종주 때에 단미는 아이들과 함께 일본여행을 하고 있었다.
귀면암(바위가 귀신의 얼굴 모양이다)언덕을 지나면 천불동은 드디어 열반의 세계로 접어든다. 이른바 탈 속세인 것이다.
뒤에서 부지런히 따라오는 이유경씨. 유경씨는 동기회에서도 남자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산행하면서 보니 남을 많이 배려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늘 웃고 친절하며 맺힌 말을 잘하지 않는 부드러운 친구였다.
한번 포즈를 취해보는 탐사팀. 어? 중간에 게쉬타포 쫄따구 한마리가 있네?
Go, Go, mountain!
산에서의 첫 중식이다. 중식이기에 관습대로 간단한 떡라면으로 간다. 물론 라면은 종류별로 다 다른 짬뽕라면이다. 모두들 동작이 빨리 금방 식재료가 나오고 불이 지펴지고 물이 끓기 시작하고 금방 후루룩 후루룩 짭짭 풍덩이다. 풍덩이 뭐냐고? 라면 먹고 나와 초보산지기가 물에 뛰어들어가는 소리다. 뭐하러? 몰래 방뇨하러............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야 없지. 훌떡 벗고 풍덩. 드럼통 두개가 계곡 물에 떴다. 비가 그렇게 와도 물은 맑다. 누가 한국에서 오대산 북대골 물이 가장 맑다고 했을까? 언젠가 비올 때 가보니 북대골은 흙탕물이었다. 설악의 물은 청정 그 자체이다.
계곡 다리 위를 지나가는 단미와 장익진. 두 사람의 포즈와 표정이 재미있어 올려본다. 그 많은 사진들의 경쟁을 뚫고.......
작년에 여기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나. 여기에는 급류가 있어 작년에 한뻔 빨려 들어갔었다. 옆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천불동계곡의 바위벽들
오련폭포가 시작된다. 설악의 오련폭은 금강산의 팔상담에 비유된다. 팔상담이 더 화려하지만 스케일은 오히려 오련폭이 낫다. 2006년도 태풍으로 밑부분이 많이 훼손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깊고푸른바다, 전현수. 그는 산 경험이 비교적 많은 친구이다. 산행하는 데에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춘 친구이다. 단 너무나 바빠 시간이 좀 부족할 뿐......그는 동대문상고, 성균관대 상대를 나온 현직 회계사이다.
오련폭은 다 나오지 않는다.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나무숲에도 가렸는데 5개 중 하나의 폭포가 살짝 보인다. 어쨌든 천불동에서 가장 절경인 두 곳(양폭, 오련폭) 중 하나인 오련폭포이다.
줄지어 늘어선 바위벽들. 천불동의 바위는 끝이 없다. 자연현상이 여기에 이 깊은 바위골짜기를 만들어 놓았다.
경치를 보니 양폭산장이 가까워진다. 동행한 친구들은 모두들 건강하다. 최근에 주변의 지인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니 갈 수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 갑자기 산에 못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더 부지런해 진 것 같다.
드디어 탐사팀, 양폭산장에 도착하여, 산장을 쳐다보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1977년 가을 설악제 때 여기 왔었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요델의 이영식 형의 도움으로 산장 건물 옥상에 조그만 터를 겨우 잡았는데, 그 밤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저녁 취사중 석유버너가 폭발해서 크게 다칠 뻔했고, 밤에는 자다가 한 친구가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 때는 경험과 장비가 너무나 부족했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고도 그 다음날 당시에 길도 없고 반달곰이 나오던 공룡능선을 치고 나갔으니............
자! 기념촬영. 양폭까지는 성공이다. 그러나 내일 폭우 소식이 있어서 공룡행은 예측할 수가 없다.
양폭에 선 여성들. 좌로 부터 김단미, 이유경, 이명자이다. 세대차가 있지만 서로 교감하고 있다. 하긴 산에서는 性도 없는데........
양폭에서........왜 다 서 있냐구? 의자가 비에 젖었기 때문이다. 양폭산장은 지금 한창 리모델링하고 있어서 숙박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천불동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 양폭이다. 희운각대피소의 앞 개울은 백두대간 반대편인 가야동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양폭을 신경쓰지 않고 이 계곡물로 라면을 벌써 끓여 먹었다.
여기는 陽폭포. 뒤에 숨어 있는 陰폭포와 함께 兩폭이라고 한다.
양폭에서 단미와 커피 한잔, 쨘! 폭포와 커피는 짐짓 어울리지 않지만..............그럼 사람들은 제법 어울리는가? 물론 초보산지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겠지?
천당폭에 선 깊고푸른바다(靑海)와 긴겨울(長冬).......산에서 많이 어울리는 인격과 품성을 갖추고 있다. 산에 어울리는 품성이 있냐구? 물론 있다. 智者樂水 仁者樂山......논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과 같이 막힘이 없다는 말이겠지. 큰 돌이 나오면 돌아서 흘러가고, 막힌 곳이 나오면 넘치기를 기다리며, 낭떠러지가 나오면 떨어지기를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바다로 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물 길은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 막아도 우선 자존심 없이 타협하는듯 보이나, 바다라는 커다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
어진 사람은 산은 좋아한다는 말은, 산이라는 것은 물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물은 끊임 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지만, 산은 그 자체로 목표이며 궁극이다. 어진 사람은 마음을 따로 움직이지 않아도 자체로 주위를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산이 항상 그 자리에 있듯이, 어진 사람의 마음 역시 이익에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않는 마음인 평상심을 유지하기 때문에 둘을 비슷하다고 본것이라 생각된다.
내 생각에 위의 두 사람은 仁者라고 생각한다. 나? 나는 오히려 智者라는 생각이 든다.
천불동계곡 마지막 부근. 이제 서서히 물소리가 잦아들어가고 있다.............고 현수가 옆에서 말했다.
무너미고개 전망대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천불동계곡. 저렇게 크게 깎였으니 그런 계곡이 나올 수 밖에.........뒤의 능선은 화채능선인데 중간의 높은 봉우리가 화채봉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막혔으니 설악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유일한 곳이다. 왜 그렇게 오래 묶어 놓고 있냐고? 대청봉에서 내려오기가 가장 쉬운 코스이기에 훼손도 심하겠지만, 비선대 아래로의 가게들의 힘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들 화채능선으로 내려오면 비선대계곡에는 하산객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가 등반 시작 즈음에 막걸리를 마시겠냐? 모두들 하산하면서 한잔씩 하는 거지.
이제 바로 윗능선에 대청봉이 보인다. 이른바 설악의 정상이다.
무너미고개 전망대에서 단미와 함께. 나를 알면서 그녀는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여전히 즐거운 표정들이다. 우리는 오늘 이 희운각대피소에서 밤을 지샐 것이다. 그리고 내일 공룡능선으로 들어갈 것이다.
긴겨울이 가져 온 후라이를 빠르게 설치한다. 몇이 모여서 역학이니 지랫대니 하다가 강풍에도 견디어 내는 튼튼한 후라이를 쳐내고 만다. 공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런 것들은 잘도 한다.
여름의 낮은 길다. 우리는 모두들 재빠르게 움직여 저녁밥을 지어내고 천막 밑에서 맛있는 석식을 즐긴다. 아마 오늘 밤은 이 천막 밑에서 아름다운 밤을 지샐 것이다. 이 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꽃을 피울까?
설악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얘기는 끊임 없이 이어진다. 그 얘기들 가운데에는 초보산지기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비가 오나 강풍이 부나 우리는 이 밤을 지새울 것이다. 아름다운 설악의 밤을............
밤이 깊어갈 수록 이야기는 더 많아지고 웃음소리가 더 늘어난다. 이러다가 지치면 서서히 빠져나가겠지. 자정이 지나자 나와 단미, 초보산지기와 깊고푸른바다, 그리고 긴겨울만이 남는다(그래도 반이 넘지만.........).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설악의 밤은 깊어만 간다.
우리들의 천막 안으로 이방인이 한명 뛰어 들어왔다. Anton(21세)은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경희대 교환학생으로 왔다는데, 주말을 이용해 혼자서 설악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희운각에 저녁녘에 도착하여 정상인 대청봉으로 오르려고 했는데 국립공원 직원들에게 정상 등반을 제지 당하고 있었다. 서로 말이 안 통하여 나보고 통역을 해달라고 해서 잠시 얘기 해보니, 정상 등반을 막는 이유는 강우와 강풍, 그리고 어두운 밤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정도로는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You can go up to the summit. There you will be able to find the bigger shelter, Joongchung, than here. Because of becoming dark soon, you have to stay there. But as the National Park staffs don't want you to go up farther, go up secretly" 그는 나의 말을 듣고 희운각대피소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몰래 계곡 다리를 건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Anton 은 두시간 쯤 뒤에 다시 희운각에 나타났다. 그는 너끈히 대청봉에 올랐으며 중청산장에 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시 내려왔다고 했다. 우리는 잘 왔다고 환영하며 그에게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도 이제 우리팀이 되었다. 그도 밤을 지새우는 이야기 속에 같이 참여한다.
유난히 길고 즐거웠던 그리고 시끄러웠던 희운각대피소에서의 하루밤이 지나고 이제 18일 아침이다.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한다. 멤버가 한명이 늘었다. 같이 밤을 지냈던 미국인 청년 Anton(21) 이다. 하지만 Anton 은 우리와 같이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는 무너미고개에서 나에게 말했다. 한국 최고의 등반코스인 공룡능선을 꼭 가고 싶다고..........나는 강풍과 폭우가 예상되므로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You can pass through the Dragon Ridge. As I find your hard walking to the summit yesterday, I believe in your ability. Go to the Dregon Ridge!" 그는 공룡능선으로 들어갔고 설악 하산 뒤 와선대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는 공룡능선을 치고 비선대로 내려오는데 5시간 정도로 등반을 끝냈던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민간외교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런 낯선 곳에 와서 친절한 본토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오래토록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게 외교지 무엇이겠는가? 와선대에서 Anton 에게 다시 밥을 먹이고 우리팀이 하산 뒤 척산온천에 들었을 때에 나는 Anton 을 속초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태워 주었다. 그는 터미널에서 헤어지면서 말했다. "you are very kind. Thank you very much. I'll send you the pictures by E-mail"..............
어제밤 4시를 기해 설악산 지역에 재해비상조치가 내려져 입산 통제, 긴급 하산, 입산자 점검 등이 행해졌다. 밤과는 다르게 아침에는 비가 크게 오지 않지만 우리는 희운각대피소 직원들에 의해 체크되고 하산하도록 조치 받는다. 우리가 누구냐? 이따위 날씨에 공룡은 아무 것도 아니지. 오히려 이런 날씨는 산행에는 최적인데..........하지만 팀원들의 인상은 그게 아니다. 무엇보다 규칙은 지키는 것이 맞다는 시민의식이 앞서는 친구들의 분위기였다. 나는 별 아쉬움이 없다. 어차피 설악이면 나는 아무데나 상관이 없지만, 공룡에 못 가본 친구들은 많이 아쉬울 법도 했다. 하지만 고집 부리지 않고 전체 의견을 조용히 살폈다. 결론은 천불동 하산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나에게 최종적으로 결정하라는 의견이 모아진다면 공룡으로 들어 가자....하겠지만, 여기는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산도 산이지만 우선은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강했다. 나는 그런 결정에 수긍한다.
혹 이런 것도 있다. 나같이 발목이 강한 사람은 괜찮겠지만 빗길에 누가 다리라도 삐끗한다면 공룡에서 어떻게 할까? 글쎄? 대책이 좀 그렇다. 강풍 속에 헬기가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그래, 만에 하나라도 위험하다면 내려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는 말이 없이 내려온다. 공룡으로 가지 못함의 아쉬움을 토로할 참에는 깊고푸른바다가 일침을 가한다. "어쨌든 우리가 내린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후회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지나고 난 뒤 가지 못한 길에 대해서 후회해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의 뒷모습을 내가 봐도 좀 처량해 보인다. 오랜 세월을 저렇게 고개 숙이고 혼자서 산길을 걸어갔을 것이 아닌가. 나에게 온 여자들은 내가 측은해서 동정심으로 나에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 측은(惻隱)한 감정이 곧 사랑이다.......라고 맹자는 말한다. 惻隱之心이 仁이라...........
최근에 가장 자주 교유하고 있는 친구, 전종성. 긴겨울이다.
하산 중에 비가 내려도 한바탕 풍덩. 물론 초보산지기도 뛰어들어온다. 근데 이번에는 단미도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물개다. 수영 경력이 길다. 접영이 장기일 정도로 실력이 있는 swimmer 이다.
드디어 실력을 보이는 초보산지기, 산지기, 시끄러운 새끼. 카페의 귀염둥이. 순영이 동생, 1274 고참..............별명도 많다. 설악에서는 물안경이 필요 없다. 물이 맑아 눈을 떠도 깨끗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천불동계곡의 협곡 구간. 여기와서 경치를 보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이 사진은 세로로 찍어 주변의 바위들도 드러내어 고도감을 생기게 하면 좋은 사진이 되었을텐데...........나는 이곳에 오면 꼭 사진을 세로로 찍는다. 그러면 아름다운 하나의 화폭이 된다.
드디어 비선대가 보인다. 장군봉과 적벽이 나타난 것이다.
비선대 암장을 배경으로 한 커트.
장군봉과 적벽이 서 있는 비선대
공룡능선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비선대로 돌아왔다. 한명의 전사자도 없이......어느 누구도 불평이 없다. 여전히 웃는 얼굴들이다.
와선대 옆 주점에서 막걸리를 한잔씩 걸치면서도 여전히 폭소 무드. 즐거운 2일간의 설악 탐사는 이렇게 끝이 난다. 옆에서 마지막 식사, 라면이 끓고 있고 라면 먹을 때 즈음에 미국인 청년 Anton 이 이리로 지나간다. 그리고 또 같이 먹고..........짜식이 먹을 복은 타고 난 놈이다.
깊고푸른바다의 의견을 따라 속초 동명항의 어느 횟집으로 왔다. 모두 척산온천에서 몸을 담근 상태가 용모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성게와 우렁쉥이(멍게), 게불 등이 나왔지만 관심은 성게다. 생긴 게 이상해서 그렇다. 고단백 해산물이라 일본으로 많이 수출된다는데......어찌 잘못 보면 생긴 것이 꼭 그것 같다. 개 눈에 똥만 보이는 것일까? 뭐든 쭉쭉 빨아보자. 조심해라. 잘못하면 찔린다. 자고로 맛있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잘못하면 찔리기에...........
조개류, 우렁쉥이, 게불, 한치 등이 나오고.........
자, 이제 마시자. 맛있는 회를 안주로...........나는 정수리가 훤하다. 단미한테 무자비하게 뜯겨서.........
자! 이제 살아있는 돔들이 회로 나왔다. 우리가 한 점씩 떼어 먹으니 눈을 꿈뻑꿈뻑한다. 불쌍한 놈들, 그러나 맛있는 놈들!
속초 동명항에 있는 속초등대전망대. 최근에 50년 만에 새롭게 단장돼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동해지방 해양수산청이 40여억원을 들여 새로 건립한 속초등대는 지상 3층에 높이 28m 규모로 행보관과 전망대, 야외 휴식공간 등을 갖춰 설악권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57년에 설치된 속초등대는 등대의 고유기능을 수행하면서 속초팔경 가운데 하나로 연간 10만여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설악탐사는 끝이 나고 우리는 동명항에서 서울팀과 경주팀이 이별을 한다. 조만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아마 이번 탐사 이전보다 우리들은 훨씬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산이란 그런 것이다. 같이 다녀 오면 은연중에 서로가 가까워져 있음을 느끼게 되는.....................
서울팀들이 서울로 돌아가면서 미시령에서 촬영한 울산바위이다. 올 때와 비슷하다.
경주팀은 속초에서 하루밤을 자고 19일 아침에 청초호의 아침을 맞는다. 오늘 19일은 인제의 대암산을 등반할 예정이다. 공룡능선의 아쉬움을 펀치볼로 유명한 대암산 용늪에서 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제-양구에 있는 대암산에 들어간다. 최전방 지역에 있는 대암산. Adieu, L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