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벗에게 글을 보냈습니다 카카오톡KakaoTalk으로요 보낸 사람은 '비'라는 ID말고도 '희'와 '사'라는 ID까지 3개 아이디를 지닌 가깝고 좀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아이디 '비'에서는 슬픈 표정을, '희'에서는 기쁜 이야기를, '사'는 신경을 썼습니다 명상하는 모습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절친인 '자'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앞서 보낸 톡Talk 얘기가 나오면서 '자'의 스마트폰에서 확인하게 되었는데 '자'는 한 사람의 3가지 아이디를 함께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느냐며 이유를 물었더니 '자'는 건성으로 답하는 거였습니다 "글쎄? 그냥 그리 되데?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어."
보낸 사람은 자기를 세 사람으로 취급했다며 마지막에는 절교를 선언했고 사진을 받은 '자'는 황당했습니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엄청 억울해 했습니다 어째서 남들은 보통 폰도 하나 아이디도 하나인데 스마트폰 3개에 아이디까지 3개로 잘난 체는 혼자 다하고 일만 복잡하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어쩌겠습니까 내가 해결사를 자처할 수밖에요 그런데 나도 실은 컴맹입니다 사실 '자'와 자의 친구 사이에는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습니다 구태여 흠을 잡는다면 아이디ID가 하나면 곧 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스마트폰 시스템을 이해 못한 점을 두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비희사 사무량심은 아마타 부처님께서 지니신 사랑과 슬픔과 기쁨과 버림이라는 거룩하신 덕성입니다 그 분의 내면으로 흐르고 온몸으로 흐르고 손길과 발걸음으로 흐르고 언어와 표정으로 눈길로 흐르는 말할 수없는 성스러움 자체입니다
그러니 '자'처럼 홀로 있으나 '비희사'처럼 셋이 함께 있으나 또는 셋이 떨어져 있으나 결국 이들이 다 아미타불 마음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네요 만일 사무량심이 아미타불의 고유 마음이라면 중생들이 아무리 닮고자 애를 쓴들 전혀 쓸 모가 없겠습니다
(1). 사랑 무량심慈無量心 사랑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에 마음이란 표현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사랑 자체의 뿌리와 줄기가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없습니다 '사랑의 한량없는 마음'이라 길게 풀이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랑은 마음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빛이고 아미타부처님의 공간이며 아미타부처님의 목숨이고 아미타부처님의 시간입니다 빛을 벗어나 부처님이 없고 생명을 떠나 부처님이 없습니다 공간을 떠나 부처님이 없고 시간을 벗어난 부처님은 허상입니다
(2). 슬픔 무량심悲無量心 슬픔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사랑慈이 긍정玆하는 마음心이라면 슬픔悲은 부정非하는 마음心이지요 긍정이 무조건 감쌈이라면 부정은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해 바른길로 나아가게 하는 함입니다
사랑 무량심과 슬픔 무량심은 말만 다를 뿐 실은 같습니다 그러기에 묶어서 자비라고 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 좌보처 관세음보살의 자비 사랑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되고 슬픔이 오면 눈물이 오고 슬픔이 극에 달하면 눈물마저 메마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먼저 세상을 뜨면 너무 슬퍼 눈물도 흐르지 않습니다
(3). 기쁨 무량심喜無量心 기쁨喜이란 마음의 신명입니다 선비士가 동네 넓은 마당口에 촤르르르르 자리一를 펴고 제단八을 잘 꾸민 뒤에 정성껏 잔豆을 올려 제祭합니다 그리고 담소를 즐기니 실로 기쁘다 하여 생긴 글자가 다름 아닌 기쁠희喜자이지요
세간의 기쁨이란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태어나고 경제적 이익이 늘어나고 겨루어서 경기에서 승리하고 잃었던 것을 되찾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출세간의 기쁨은 뭐니뭐니 해도 진리의 축적이며 자유와 해탈의 맛일 것입니다
(4). 버림 무량심捨無量心 버릴사捨자에는 '버리다' 외에 포기하다 폐하다 내버려두다 개의치 않다 바치다 기부하다 희사하다 놓다 쉬다 휴식하다 (화살 따위를)쏘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은 '버림' 입니다 사람人이 지니고 있는 것 중에 제일 버리기 어려운 게 둘이 있으니 손扌과 언어舌입니다
자비희사 사무량심 중 마지막이 버림 무량심입니다 버림捨 무량심이 소중한 것은 파자破字에서 본 것처럼 버릴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겸손이든 손扌을 버린다는 게 쉬울까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두뇌에서 먼저 지시가 떨어져야 하나 입술과 차아와 혀와 목구멍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입안의 이들 모든 신경이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법입니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치과에서 마취한 뒤 치료를 받고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는 말이 어눌하게 나오지는 않던가요
사람이, 보살행자人가 이들 언어의 근간이 되고 음식 섭취의 기본이 되는 혀舌를 버린다는 것이 쉬울까요 따라서 '버림捨'이라 함은 차원 높은 텅 비움이 아니고서는 베풀다 보시하다 나누다 라는 엄청난 비움(空=捨)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