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맹자 『다산의 마지막 공부』 조윤제
맹자를 공부할 때 메모해 둔 글귀입니다. 하늘이 제게 사명을 내리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0년 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몸과 정신과 영혼에 담금질이 가해졌습니다. 굶어 죽을까봐 겁이 났고, 정신줄 놓을까봐 두려웠으며, 인간성 자체가 황폐해 질까봐 절망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떠냐? 세 가지 다 멀쩡하지요. 육, 혼, 영의 훈련을 통과한 후 비로소 사람이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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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읽으니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에 마음이 머뭅니다.
모세가 딱 그짝이 났지요. 딴엔 압제받는 동족을 구하겠다며 혈기를 부리다 광야로 쫓겨나 40년을 썩잖아요. 모세 인생이 '폭망'한 거지요. 이집트 왕위 계승자로서 금수저 중의 금수저가 졸지에 흙수저로 전락하는 건 순간이었고, 양떼의 똥 오줌 속에서 양치기로 연명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서 힘을 다 뺍니다. 신분 세탁은 기본이요, 자의식의 물빼기가 시작된 거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자각이 올 때까지. 아니, 그런 자각조차 사치일 수 있을 때까지. 안 그렇겠습니까. 80 노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민족 구제의 소망은 고사하고 제 가족 건사에도 힘이 부쳤을 테니.
이때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었구나. 가자, 모세야!" 하시지요. 맹자의 말대로 하늘이 장차 큰 사명을 내릴 준비가 갖춰진 거지요. 그러니까 사명자가 되는 건 별 게 아닌 거지요. 그런데 그 별 게 아닌 게 엄청 별 거지요.
내가 완전히 죽어야 가능하니까요. "내가 낸데!"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사명자는 못 되는 거지요. 사명자 중의 사명자 바울도 그러잖아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오죽 안 죽으면 그런 한탄과 각오를 할까요.
우리 중에는 한 번도 안 죽어본 사람이 부지기수일 걸요.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 있는 건 고사하고.
사명도 사명나름인지라, 모세처럼 민족 구원과, 바울처럼 인류 구원의 사명을 띤 사람으로 훈련되는가 하면, 저처럼 가정 구원을 위해 10년을 '고시방 훈련'을 받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사명의 스케일은 달라도 훈련 내용은 같습니다. 즉, 자아 물빼기!
염색할 때를 생각해 보죠. 흰머리나 새치 염색말고, 까만 머리가 노란물을 들이려고 할 때는 우선 탈색을 시키잖아요. 원래 색을 뺀 후에 새 색을 입힌단 말이죠. 그처럼 내 자아를 빼 낸 후에 하늘의 자아를, 다른 말로 성령을 주입시키는 것, 그것이 사명자 훈련의 핵심입니다. 일종의 '영갈이'인 거지요.
그러면 내 자아를 빼낸 자리에 하늘의 자아인 성령을, 다석 류영모 선생의 표현까지 빌린다면 '얼나'를 어떻게 장착시킬 것이냐, 그 방법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말 자체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현대인들에게는 거부감이 들지요.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요?
제가 곧 호주행 비행기를 타게 되는데 기장이 그 비행기를 몰고 가겠지요. 거기서 제가 기장 대신 비행기를 몰겠다고 설쳐대 봐요. 완전히 미친 거지요.
기장이 모는 비행기를 믿고 타는 것, 기장을 믿는 것, 그것이 순종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이 내 인생을 몰고 가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 하나님의 하심을 믿는 것, 그것이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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