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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9:1-14 강해 자연과 말씀을 통한 계시 220817 수요
19편, 여호와의 일반 계시 및 특별 계시에 대한 선민의 바른 자세
19편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시(啓示)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자연 속에 나타난 일반 계시를 통하여(1-6절),
그리고 성문화된 율법 속에 계시된 특별 계시를 통하여(7-14절),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과 위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탁월한 신학적인 위대성을 지닌 황금 시입니다.
*계시 (啓示), 啓 열 계; 示 보일 시;
① 깨우쳐 보여 줌.
② ⦗종⦘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 묵시(默示).
*헬라어로는 한 단어인 아포칼륍시스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드러냄’ 전체를 광범위하게 의미하는 조직 신학적 용어인 ‘①계시 (Revelation) ’와 이제 이러한 계시 중에서도 특히 ‘현 세상의 종말과 새 천국의 도래 과정을 독특한 문학 양식을 통해 드러냄’만을 더욱 좁게 의미하는 성서신학적 용어인 ‘②묵시 (Apoꠓypse) ’ 등 두 가지로 나뉘어 번역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쟁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설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하나도 없듯이, 우리 앞에 있는 정교하고 장엄한 우주와 아름다운 자연만물 역시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그것을 설계하신 인격적인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편 19:1-6절 부분은 자연 세계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제시합니다.
후일에, 바울은 자신의 편지인 로마서 1:19-20절에서 이런 논리를 더 깊이 전개시킵니다.
바울은 자연 만물로부터 조물주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과 부합하는 것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피조물들은 마치 라디오 방송국과 같고, 각 사람의 마음은 방송국에 주파수가 맞춰진 수신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누구든지 자연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7절에서 14절의 말씀은, 하나님앞에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특별 계시를 통해 살린다고 하십니다.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시편 19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전반부 1-6절은 ①하나님의 일반 계시(general revelation)의 도구인 창조의 신비와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시적 성격을 지닙니다.
그리고 후반부 7-14절은 ②인간 구원에 관한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인 율법의 완전성과 고귀함 및 그것이 인생에게 미치는 유익에 대해 노래하는 지혜시적 성격을 지닙니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두 부분이 함께 어우러진 본시는 결국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며 생명의 말씀의 수여자이신 여호와께 순종하며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만이 인간의 진정한 살길임을 간접적으로 교훈해 주는 지혜시입니다.
한편 본시의 전반부과 후반부의 서로 다른 성격은 신명(神名)의 사용에서도 나타난다. 즉 창조주의 권능과 영광을 노래하는 전반부에서는 '하나님'(히, 엘로힘)이라는 신명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신명입니다.
특히 전반부에 언급된 태양에 대한 묘사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이방 국가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태양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열방의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분이심을 중거함과 동시에 이방인들의 범신론을 깨뜨리고 유일신론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여호와'(히, 예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7번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택한 백성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 당신의 백성들을 교훈과 계명과 규례를 통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신명입니다.
결국 본시에서 시인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택한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여 기서 '하늘'과 '궁창'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즉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로 만들어진 우주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주 만물의 응대함과 장엄함 또는 섬세한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의해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이런 우주 만물을 통해 분명히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자연 속에 당신의 자취를 남기신 것입니다(롬1 . 20).
그럼에도 인간들이 자연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반견하기는 커녕 도리어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 것은 타락한 본성 때문인 것입니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는 낮과 밤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이루고 있는 조화로움과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갖는 그 아름다움과 그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창 1:14, 8:22, 렘 33 : 20, 25).
▶말하고‥‥지식을 전하니.
'말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마치 창수가 밀어 닥치듯 또는 샘이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샘물을 뿜어내듯 말하다'입니다.
또 '지식을 전하니'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롬 1 : 17, 20)을 제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신앙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① 하늘은 말을 못하지만 그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 아주 선명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②하늘, 즉 자연 만물의 모습은 말이 없어도 모든 사람이 직접 눈으로 봄으로써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여기서 '그의 소리'와 '그 말씀'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가리키는 말로 온 땅 어디에서나 자연이 있는 곳이면 그 자연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곳에서 선포함을 증거 하기 위하여 어디에나 빛을 비추는 '해'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를 위해 장막을 베푸셨도다'는 말은 해를 의인화시킨 표현으로서 우주의 천체들 가운데 면류관이라 할 수 있는 해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 국가들 중에는 해를 숭배하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해'에 관해서 노래한 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노래한 것으로 이방인들과 전혀 다른 창조 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연 계시의 편재성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당위성을 주장하였습니다(롬 1 : 18-20),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해가 '신랑'같다는 말은 아침 마다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해의 신선하고 웅장함을 신부와 밤을 보내고 아침에 신방을 나오는 신랑의 활기찬 모습에 비유하여 나타낸 의인법적 표현입니다(욜 2:16).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아서.
아침에 돋는 해의 힘찬 모습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을 장사가 힘차게 달리는 모습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고대 근동 지방의 문학 작품에서 태양신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방인들이 숭배하는 태양이 실상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도 볼 수있습니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인해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태양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태양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보지 않는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지 않는 자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7-14, 지금까지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당신의 권능과 신성을 계시해 보이신 자연 계시에 대하여 언급하였었습니다.
그에 이어 이제 본절서부터는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초자연 계시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이 계시는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특별한 것이니 '특별계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여기서 '율법'은 제한된 의미의 모세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그분의 모든 '말씀'을 가리킨다. 본절 및 8, 9절에서 언급된 '여호와의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은 다같은 의미로서 바로 하나님 말씀의 특징의 각기 다른 측면을 묘사한 말들입니다.
그리고 '완전하여'라는 말은 흠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Keil) 이는 이 세상의 어떠한 법이나 교훈과도 다른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을 나타냅니다.
▶영혼을 소성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함을 의미합니다.
즉 비록 자연계시가 하나님을 증거하나 그것은 죄로 인해 영안(靈眼)이 어두어진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에는 절대 불완전한 것이며,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중거'는 '여호와의 율법'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확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견고하다', '충실하다', '의심할 바 없다'는 뜻으로 그 내용에 있어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을 만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확실한 말씀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견고하게 이끄시며 그 나아갈 바를 깨닫고 행하는 질혜로운 자가 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정직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르'는 '바르다', '곧다'란 뜻이다. 즉 이는 여호와의 교훈이 세상의 거짓된 교훈과 달리 인생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는 그러한 여호와의 교훈이 진정 인생들의 마음에 참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다는 말은 그 말씀에 전혀 거짓된 것이나 그룻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 말씀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근거하여 무엇이 옮고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선악간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정확 무오한 유일한 시금석인 것입니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정결하다'는 말은 전혀 불순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거짓된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 외 하는 도', 즉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이 삶의 규범으로 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오류나 거짓된 것이 없으니 영원토록 존속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존하는 이 세상은 장차 폐하여 없어지고 말게 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니 그분의 말씀 또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벧전 1 : 24, 25).
▶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신뢰 할 수 있는 완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의롭다'는 말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그룻된 것이 전혀 없고 그 말씀이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에 있어서도 의롭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영혼을 소성케 하기 위해 주어진 것(7절)이라는 목적의 측면에서, 그리고 구원에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과정과 그 구원 방법의 측면에서 절대 의롭다는 것입니다.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금'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비유되는데, 그중에서도 '정금'은 전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금으로 아주 귀중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송이끌'은 벌집에서 흘러 넘치는 꿀 덩어리를 가리킵니다.
이는 꿀의 달콤함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송이꿀'은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인 순금과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송이꿀에 비유함으로써(시 119 : 72-103, 잠8 : 10, 겔 3 : 3).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하며 또한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과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교훈적 기능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교훈받게 되며 이로써 그룻된 행동을 삼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물론 이 말은 인간이 선한 행실을 힘씀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경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복하며 그분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따른 분명한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고전 3 : 10-15).
이것은 구원에 덧붙여 하나님이 덤으로 더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인간이 스스로는 자기허물을 깨달아 회개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말씀을 통해 영안(靈眼)을 밝게 하여(8절) 자신의 숨은 허물을 깨달아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숨은 허물'이란 13절에서 말하는 '고범죄'와 달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은 죄를 가리킨다.
이는 실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인의 진솔한 고백입니 다.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고의로 짓는 죄, 즉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짓는 죄를 의미합니다.
이 고범죄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켜 보고 계시는 심판자 하나님를 멸시하는 것이기에 모든 죄보다 더 심각한 것이며 성경은 이를 '성령 훼방죄'와 동일하게 사함받지 못할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마 12 : 31).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다음으로 '주장하다'는 말은, '관장하다', '다스리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는 간구는 한번 고의로 범죄하는 자는 계속 그 죄가 올가미되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게 마련인데 이같은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실로 이같은 죄의 무서운 속성을 충분히 인식할 때 시인의 이같은 기도가 또한 우리 자신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시119:43).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큰 죄과. '죄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는 '거역하다'는 말에서 나온 단어로 본래는 '반역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거스르며 순복지 아니하는 '고범죄'를 가리킵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
시인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힘', '피난처'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속자'(히, 가알)는 어떤 대가를 대신 지불함으로써 구원해 주는 '보수자', '기업무를 자'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이야말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석처럼 힘과 피난처가 되시며 또 자신의 죄 문제를 깨꿋히 해결해 주실 자, 곧 대속자 또는 용서하실 자가 되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열납되다'는 말은 회생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기도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마음속에 생각한 바를 곧 말로 표현해 아뢴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말'은 단순한 언어 행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행위까지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말'과 '마음'은 내면적, 외면적 모든 생활을 의미하므로 본 절을 확대해서 해석하면 시인이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인의 간구처럼 신앙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삶이어야 하고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여야 합니다(롬 12:1).
왜냐하면 그것이 야말로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세이며 늘 성령께서 자신을 온전히 주장하시기를 원하는 자의 바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결론
첫째, 모든 만물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가 드러난다
그래서 만물을 보면 이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수 있습니다.
로마서1:20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다만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만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찾아 알수는 없습니다=>구도자로 인도할 뿐입니다.
=>특별 계시인 말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만나야만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특별계시인 말씀이 사람을 살린다
일반계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은총이라면 특별계시는 믿어 구원얻을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셔서”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알며 자기 죄를 대속하신 주님을 자기의 구속의 주님으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섬기도록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이 특별계시의 말씀을 항상 내 마음에 두고 교훈를 받아야 합니다.
많이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깨닫는 대로 순종하여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일반계시인 자연 만물을 통해 만물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 분이 계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 것을 깨달았다면 즉각 그분이 누구실까 찾아야 합니다. 바로 구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찾고 찾으면 만물을 퉁해 자기를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우리 기독교처럼 초지일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종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잠8:17.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일반계시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결국 특별계시인 말씀,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때 특별 계시인 말씀을 붙들고, 또 특별 계시이신 예수님을 말씀을 붙들고 그 가르치신 말씀대로 실천하면 약속된 구원의 백성이 됩니다.
계시를 주신 이유는 그 계시를 통해 구원의 주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일반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 계시로 자기를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일반계시인 천지만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어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셔서 우리의 생명을 소생케 하십니다.
오늘 시인은 끝절인 14절에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께 자신의 모든 삶이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한다는 간구입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주님께 우리도 우리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