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명:생활작문
♧교수:손 춘 섭
♧학과:건축공학부
♧학번:0401008
♧이름:김 찬 호
♧장소:대 청 봉
♧모듬 조원:도시관광계획학과-조혜미0404023,황연화-0404027,
건축공학부-설재경0401019,심민선-0401022,정장미-0401042
♧제출날짜:2004년4월9일
♧리포트 목차:
1.개요
2.주요명소
3.도로안내
4.현지숙박
1.개요-높이 1,708m의 대청봉은 설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남한 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수많은 계곡을 거느린채 내,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는 곳이며, 천불동 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 곳에서 발원 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이 있다. 대청봉은 설악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설악동, 오색리, 장수대, 백담사 등에서 출발하는 등산 로가 있다.
2.주요명소-
☆백담사-내설악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백담사 지역이다. 백담사와 함께 계곡의 아름다움이 한층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다.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는 8km에 이르는 백담계곡이 깨끗한 암반과 소를 이루고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다. 계곡을 따라 아스팔트와 시멘틀로 포장된 길이 나 있고 백담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셔틀버스 종점에서 3km 쯤 걸으면 백담사에 닿는다.
내설악을 대표하는 절인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에 자장이 세운 장수대 부근의 한계사라는 절이었는데, 창건 이래 지금의 백담사로 불리기 시작한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친 화재를 만났으며,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백담사 앞 개울 백담사라는 이름을 짓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를 세어보라고 해서 이튿날 세어보니 100개였다. 그래서 담(潭)자를 넣어 백담사(百潭寺)로 이름을 고쳤는데 그 뒤로는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화재가 발생해 건물 70여칸은 물론 경전과 종까지도 모두 태워 다시 불사가 일어났다.
백담사 가는 길(봄)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려 「조선불교유신론」,「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족하는 부속암자로는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이 창건하여 부처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가 된 봉정암, 자장이 관음진신을 친견하였다는 관음암의 후신인 오세암이 있다.
이렇듯 역사가 오랜 절이지만 고색 창연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계속되는 불사와 절마당까지 들어선 자가용은 구비구비 산길 따라 오르면 울창한 전나무 숲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던 백담사, 계절 따라 피던 들꽃과 채마밭의 푸르름은 오간데 없고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비룡폭포-소공원에서 비룡교를 건너면 남쪽으로 산길을 타고 오르는 권금성 가는 길이 보이고 왼쪽으로 소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가족과 함께 걷기에는 더 없이 조용하고 낭만적인 길이다. 다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길을 따라 25분 쯤 가면 두번째 휴게소가 나오고 이어 시작되는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선인봉과 노적봉의 암벽을 이룬 협곡 사이에 여섯 개의 폭포와 소가 어우러진 육담폭포가 힘찬 물소리와 함께 깊은 계곡의 운치를 한껏 돋우어 준다.
협곡을 따라 놓여진 쇠다리를 지나 약 300m 정도 산길을 오르면 좁고 험한 골짜기에 높이 약 45m의 힘찬 물줄기가 골짜기를 울리며 내리꽂히는 모습은 마치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비룡폭포에 이르게 된다. 휴게소에서 25분쯤 걸리는 거리다.
비룡폭포 못미쳐 왼쪽으로 가파른 바위길을 올라 토왕골을 따라가면 3단으로 이어진 높이 350m의 토왕성폭포를 만나게 된다.
겨울철 빙벽 등반으로 산악인들의 가슴을 설레임으로 채우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휴식년제 적용구간으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울산바위-울산바위의 이름은 3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울타리같이 생겼다 하여‘울산’이라는 설과 경남 울산(蔚山)의 지명을 딴 전설적인 이름이고, 또 하나는 울산(鬱山) 즉 ‘우는 산’이라는 뜻의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 때 산 전체가 뇌성에 울리어 마치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같으므로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까지 한다는 기록이 신흥사지에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양부 북쪽 63리, 쌍성호(지금의청초호) 서쪽에 있는 큰령 동쪽 가닥이다. 기이한 봉우리가 꾸불꾸불하여 마치 울타리를 설치한 것과 같으므로 울산이라 이름하였다. 항간에서는 울산(蔚山)이라고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