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댓돌위의 신발
댓돌 위의 신발 26
시체놀이 13
마지막 목욕 17
집 전화기 22
가을이 30
포대기 36
고시원 40
새 길 44
남편의 애인 48
안전불감증 53
아버지의 향기 58
제2부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65
맞선 69
벽사 73
고장 난 세탁기 77
긴축재정 82
콩잎과 깻잎의 간극 87
아메리카노와 믹스커피 91
미역국 한 그릇 95
로또 98
낯선 이와의 하룻밤 102
제3부
각설이
각설이 111
놀이터 아이 115
찬밥 120
남편의 청바지 124
순심이 128
해감 134
고추 농사 139
바람이 불면 142
그녀를 생각한다 147
부적 000
제4부
호칭
호칭 155
고지서 한 장 159
영미 164
오진誤診 168
장마 173
기찻길 177
황당한 소동 181
지리산 종주 186
지리산행 191
오시게장 국밥집 아낙 197
발문/홍억선
저자 소개
권춘애
저자 : 권춘애
경남 창녕 출생
2003년 계간 《문학예술》 수필 등단
2005년 월간 《아동문예 》 동화 등단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수필문학상 수상(2014)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2018)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한국에세이포럼 회원
2013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작품집 『별을 심다』 발간
2019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작품집 『벽사』 발간
출판서 서평
수필은 삶의 재현이다. 망각의 강물에 흘려보내지 못하고 굳어버린 앙금들을 풀어내는 복기復記의 작업이다. 더러는 애써 간직하고픈 것들이고, 더러는 떠나보내려 하나 버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들은 대개가 내 안의 모습이고, 너 안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니 수필은 나의 삶이 너의 삶과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와 너의 동류의식으로 안식과 위로를 주고받고자 한다. 혹시나 나와 다른 특별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탐색해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수필 밖에서 찾아야 할 일이다.
한 권의 수필집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나와 닮은 듯한 나를 복제한 듯한 또 한 사람의 나를 만나는 즐거움에 있다. 권춘애의 수필 역시 오래 묵은 벗처럼, 담장 너머 한 사람의 이웃처럼 먼 길 가는 우리에게 동행으로 다가온다. 들마루에 둘러앉은 우리들 사이에 소리 낮춘 시냇물의 감성으로 스며든다. 그가 툭툭 던지는 이야기들은 사소하고 평범해서 낯익은 일상이다. 하지만 어제 먹었고, 오늘도 먹었으며, 내일도 먹게 될 흰밥과 같이 오래가도 싫증나지 않는 단맛을 품고 있다.
수필집을 아우르는 표제작품 「벽사?邪」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살을 꼬집으며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또다시 내일을 기원하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다.
「마지막 목욕」은 그가 「벽사」를 표제제목으로 삼은 까닭을 설명한다. 천지도 모르는 새댁시절, 큰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 구멍이 생겨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을 당하게 된다. 수술 전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이를 안고 마지막 목욕을 시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그때를 ‘미안하다. 이런 고통을 안겨줘서 미안하다고 웅얼거리는 말은 울음 속에 파묻혔다. 울음을 꾹꾹 삼키며 배우처럼 아이 앞에서 웃는 연기를 했다. 그렇게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안고 병실로 오기까지의 시간이 나에겐 무간지옥을 헤매는 시간이었다.’(-마지막 목욕)라고 적었다.
「기찻길」 역시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의 여정을 말한다. 유년의 기찻길은 자주 놀이터로 등장한다. ‘어느 날 친구와 공기받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적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기찻길로 고개가 돌아갔다. 친구의 동생이 기찻길에 서 있었다. 제법 먼 거리를 친구가 쏜살 같이 달려갔지만 친구는 바람이 아니었다. 헐떡거리며 달려오던 기차는 친구와 동생을 덮치고 한참을 더 가서 씩씩거리며 멈추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친구도 동생도 세상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기찻길」) 짐작하건데 아마도 코스모스가 아득하게 한들거리는 가을의 일이었을 것이다. 유년에 느닷없이 다가온 그 기울어가는 풍경은 그에게 깊이 각인되어 세상사 걸음걸이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인생길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다. 오르막내리막길을 타며 겨우 여기에 이른 지금, 부디 종착역까지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 날마다 가슴 졸이며 빌 수밖에 없는 것이 벽사요 진경進慶이 아니겠는가.
권춘애의 수필은 따뜻하다. 「댓돌 위의 신발」은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작품이다. ‘큼직한 신발’은 울타리가 되는 가장의 위이를 대변한다. 공직에 있던 아버지가 숙직으로 집을 비울 때면 어머니는 큼직한 아버지의 신발을 댓돌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시절의 변화에 따라 날개 없이 추락하는 부성의 자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온기가 가득하다.
「오시게장 국밥집 아낙」도 정이 사라진 시대에서 찾아낸 안식처다. 오시게장은 금정구 부곡동의 오백 년 넘는 전통시장이다. 막걸리 한잔으로 위로가 되고 걱정이 사라지던 풍경이 마지막 명맥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뭉텅뭉텅 썰어 넣은 고기와 선지가 숟가락 넘치게 딸려 나오면 아낙의 정 때문에 침을 꿀꺽 삼킨다. 아낙의 걸쭉한 입담이 정겹다. 손님들이 내민 술잔을 한 잔 두 잔 기울인 아낙네가 투박한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구성지게 노래를 뽑아 올린다. 아낙의 노랫소리가 흘러간 시절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인간성 상실의 냉혹한 세기에서 수필의 역할은 중대하다. 문학은 형이상학이다. 육체의 아픔은 의학에게 맡긴다고 치자. 정신적 상처들은 누가 어루만지며 위무해 줄 것인가. 절대가치의 푯대가 휘어진 작금의 철학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원전에서 한없이 멀어져 가는 신앙이 책무를 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 수필은 이 시대 훈풍이다. 그러기에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소중한 가치가 된다.
권춘애 수필의 재미는 아무래도 행간의 여유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여유는 글쓰기에서 최대의 장점이다. 문장을 재촉하기에 바쁜 글은 보이는 것이 없고 들리는 것이 없다. 짐짓 눌변의 여유를 부리는 글은 행간에 재미를 묻을 수 있고 능청스러움도 감출 수 있다. 사실 인간 권춘애는 똑 부러져서 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은 느긋하여 재미있게 씹히는 것들이 있다. 슬금슬금 웃게 하는 가독성이 있다.
작가의 남편은 평생 공무원이라 제복과도 같은 양복이 제격이다. 그러니 청바지는 언감생심이다. 그런 남편이 퇴직을 하자 뒤를 살살 간질여 결국 자유분방한 청바지 마니아를 만들고 만다. 그 과정이 능청스럽고 문학적이다.(-「남편의 청바지」) 시체놀이는 어떠한가. 가족이 없는 낮 시간에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손에 들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것이 일명 주부들의 ‘시체놀이’라는 거란다. 시체놀이에 빠진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뜬금없이 살이 찐 것을 보면 알 수 있단다. 죽은 몸에도 살은 점점 불어나고 그 사이에 뒷산 둘레길은 겨울인가 했는데 어느 새 꽃 지고 연초록이 춤을 추는 여름의 문턱이란다. (-「시체놀이」)
작가의 이런 여유는 그의 또 달리 관심을 두고 있는 예술 활동에서 오는 것 같다. 작가는 20년 넘게 각刻을 해오고 있다. 각이란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이 아닌가. 반야바라밀다심경 한 장을 각刻하기 위해 적어도 5년 넘게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단다. 인내하며 사유해온 긴긴 시간들이 여유를 만들어 그의 삶과 글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수필은 자전의 글이다. 수필집은 곧 바로 그 사람이다. 만 명의 수필가가 만든 만 권의 수필집을 만들면 만인보萬人譜가 된다. 권춘애의 수필집 역시 굽이굽이 돌아가는 인생의 오솔길에서 만난 한 사람의 벗이다. 그 길이 때로는 고단하기에 함께 온기를 나누며 벽사진경하며 가자고 작가는 이번 수필집을 내놓았다.
홍억선(한국수필문학관장)
첫댓글 <정신적 상처들은 누가 어루만지며 위무해 줄 것인가.>
이 시대 수필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권춘애 선생님,
수필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발간을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