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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
(59) 아사왕의 통치(1) 아사왕의 신앙고백 역대하 14:1-15
잠시 복습하겠습니다. 남유다의 첫 번째 왕 르호보암은 어리석고 미련한 왕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벌여놓은 싸움을 고스란히 아들에게마저 물려주는 아비였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준비됩니다. 싸울만한 남자들과 훈련받은 정규군이 마주하여 섭니다. 숫자도 사십만대 팔십만 두배가 차이가 나고 있었는데, 아비야는 전쟁을 치러보지 않은 초짜 왕으로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르고 이 전쟁의 정당성이 남유다에게 있음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 북이스라엘은 남유다 뒤로 복병을 움직이고 있었고, 눈치챘을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앞에는 북이스라엘, 뒤에는 복병이 남유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이 전쟁은 끝나는 전쟁이었습니다. 전력으로도 전략으로도 이미 모두 패배한 싸움이었습니다. 남유다 병사들이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할 수순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요? 위기에 처한 남유다가 두려움에 울부짖을 때, 제사장들이 다급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며 전쟁의 시작을 나팔을 불 때,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셨던 것입니다. 저들을 모두 패주시키셨던 것입니다. 50만명이 궐이 납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네, 하나님께 부르짖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찾으라 구하라 두드리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복을 받으며 사는 비결이죠, 요약하면 부르짖고 나팔을 불라는 말씀입니다. 미리부터 기도하고 나아왔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더라도, 어려울 때, 위기가 찾아올 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등장했을 때, 우리의 전력과 전략이 먹혀들지 않을 때, 우리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면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강하고 훈련받은 군대라 할지라도 패퇴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한번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죠? 남유다와 아비야가 하나님 앞에 잘한 것이 없었습니다. 르호보암과 백성들은 죄짓는 일에 신기록을 세우며 악을 행했고, 아비야역시 그의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행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땠다구요? 다윗을 기억하신 하나님이 오늘 그의 부르짖음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는 다윗이 필요합니다. 물론, 다윗의 길을 따라 정직하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악을 행하며, 온전치 못한 우리일지라도 우리 이전에 단 한 사람 다윗이 있으면, 아비야에게는 하나님께서 등불을 남겨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지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을 기억하사 아비야에게 등불을 주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기억하사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을 구원과 형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신약시대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 중에 정말 편파적인 은혜요, 차별이라고까지 말해도 될 내용입니다.
그러니, 부르짖으십시오. 내게는 다윗과 같은 좋은 믿음의 부모님이 계시고, 좋은 선배가 있고,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를 보면 답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삶을 살아간 이들을 보시고, 그리고 더욱 예수님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 특별히 지난 주일 말씀처럼, 말세의 순간, 주의 영을 부으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3번째 왕 아사 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사 왕에 대한 내용은 사실 오늘 읽은 14장에서부터 16장까지 계속됩니다. 아사 왕에 대한 행적은 열왕기상 15장 9-24절에 기록돼 있는데, 그는 20명의 유다 왕들 가운데 선한 8명의 왕들 가운데 한 왕으로 꼽힙니다. 물론 열왕기에서는 아사 왕의 통치 41년 생애를 15절에 함축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오늘 읽은 역대기하에서는 39년의 통치로 밝혀주고 있고, 그것도 3장에 걸쳐서, 시대별로 나눠서, 보다 상세하게 기록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왕으로서의 모습이 오늘 남유다 포로귀한 공동체가 기억해야할 모습이라는 말씀이겠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떤 교훈을 남기는 왕인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아사는 비교적 연소한 나이에 등극했습니다. 선왕 아비야가 3년 만에 폐위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1년의 재위기간 중(B.C.910-869년) 초기에는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의 섭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밑에서 자란 아비야가 우상숭배를 배우고 음란히 섬겼던 것을 기억하면, 본문의 아사왕도 그렇게 자라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연소한 아사의 마음이 우상숭배로 물들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신앙의 불모지에서 신앙의 새순이 자라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불신 가정, 혹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학교와 회사에서 혼자라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아사처럼 믿음의 불모지에서 신앙으로 일어서서 주변을 변화시키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더욱, 불모지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잠시 피었다 지는 꽃 말고 거대한 거목으로 성장하시어 오늘 그곳을 아름다운 동산으로 만드시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4장은, 그가 통치를 시작하고 10년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가 왕이 되고 제일 먼저 마음들여 행한 일이 이렇게 기록됩니다. 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기에 나오는 이방 제단과 산당은 과연 어느 때에 영향을 받아 세운 것들이겠습니까? 또 풍요와 번영의 신을 상징하는 아세라 상은 과연 누가 세운 것들입니까? 네, 이방 신상과 제단들은 모두 솔로몬의 처첩들이 가져온 것들이죠. 오늘 아사왕의 수많은 할머니들이 세운 것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좇아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중심으로 성전건축에 온 힘을 쏟을 때 하나님께서 창성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존귀한 이름을 주시고, 대적들로부터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창대와 번영의 최정점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욕심껏 계속해서 무리한 건축을 시작했던 그는, 700명의 처와 300명의 첩을 이방 나라들에서 데려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죠. 외국자본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신 지혜를 팔아, 또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을 팔아, 오늘 그 재원을 마련하는데, 오늘 성경에 금하신 것들을 어기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신명기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는데도, 솔로몬은 그렇게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서 나라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죠. 바로 그때 그 이방 여인들이 이방 신상들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신상들이 바로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왕하23:13)이었죠. 그런 신상들이 성전을 비롯한 이스라엘 곳곳에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것들이 솔로몬을 거쳐 아들 르보호암과 손자 아비야 시대까지 계속 내려왔던 것이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했다고요? 다시한번 2-5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대하14:2-5)
그래요. 솔로몬이 망가뜨리고 잃어버린 모습을 아사왕이 되찾기 시작합니다. 공의와 정의, 선과 정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자신만이 아니지요? 백성들로 하여금, 조상들의 하나님을 찾게 하며, 그의 율례와 법도를 행하도록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고, 아세라상을 찍고,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는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에 등장하는 첫 번째, 종교개혁이요, 성전정화의 일을 해내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떤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까? 본문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1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아사의 시대 10년 동안 평안함을 주셨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사는 그만큼 왕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이 나라가 평안케 될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나라의 위기라는 것은, 국가경제나 국방력이나 외교력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정신과 삶 속에서 자취를 감춘 하나님 신앙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것을 인식하였던 것이죠. 그 하나님 중심, 예배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다시금 불러 일으켰던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다윗의 시대에 부어주셨던 평안을 내려주신 것이죠.
그래요. 아사시대의 평안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6절). 강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 평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아사와 유다에게 평안의 복을 주셨고, 아사는 이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백성들에게 선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7절 확인해볼까요?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그쵸? 하나님을 찾고 구하였기에 이 땅이 우리에게, 평안이 임하였음을 공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을 때, 성읍을 건축하고 군사를 훈련해두는 그의 직임에 충실했던 왕임을 보게 되지요? 그렇게 은혜와 평안을 믿음과 실력의 기회로 삼아내는 모습, 저와 여러분도 늘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실 때, 더욱 성장하고 훈련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내 그 실력을 확인할 기회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9절 상황이 급변합니다. 본문 8-15절 뒷부분의 내용이 그 일을 기록합니다. 구스 왕 세라가 군사 100만명과 병거 300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을 치려고 오는데, 그러나 이미 다 준비된 뒤였던 것이지요. 오늘 아사왕이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 예배중심, 말씀중심의 모습을 명령하고 실천해갈 때,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평안만 주신 게 아니라, 이방 대적들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아사는 큰 방패와 창을 잡는자, 작은 방패와 활을 당기는자 모두 58만의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죠. 그때 아사가 했던 위대한 신앙고백이 11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14:11a)
그래요. 아무리 우리가 힘을 길러도, 선대왕보다 훨씬 많은 군사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보다 더 강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마주하기만 해도 평안이 사라지고 염려가 생겨나는 거대한 문제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그럴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싸우고 노력해서 헤쳐나가기 이전에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 앞에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문제 앞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문제가 어려움이 고난이 축복입니다. 싸울 대상이 있음이 축복인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교회 밴드에서 오늘 새벽 설교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바로 그때입니다. 이 아사왕의 부르짖음을 보십시오. 지난 시간 유다백성들의 부르짖음보다 한층 수준 높지요? 그냥 두려워서 울부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신뢰를 기대를 소망을 분명한 입술의 언어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아사왕의 이 고백을 잊지 마십시오. 제 아무리 군사력과 무기력이 강할지라도, 제 아무리 그 군사력과 무기력이 약해도, 전쟁의 이김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오늘 우리 역시 마주하는 전쟁에 나의 승리가 아닌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시는 복된 종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우리 마음이 염려와 근심으로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함 중에 당신을 구하며 기도할 때, 우리의 산성과 요새가 되어주시고, 환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십니다. 아시지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이 달라진다고 평안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고난을 넘어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알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고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입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새끼 독수리는 자신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언제든지 자신을 그 날개로 받아줄 아빠 독수리가 가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강한 팔을 든든히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절벽이기에, 저 절벽에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절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도우시는, 아니, 당신을 찾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늘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시길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빌4:6-7)
그래요. 아사는 바로 이 믿음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사는 그랄까지 내려가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돌아오게 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던 왕과 백성에게 주시는 승리였습니다. 이것이 아사의 왕정 40년 기간 중, 초기 10년간의 일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불모지라고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거대한 적이 나타났다고 주저 앉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 예배중심, 말씀 중심으로 더욱 나아가고,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시는 놀라운 승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놀라운 하나님을 증거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일들 모두 영적인 전투임을 확인합니다.
큰 일을 앞에 두고 있든지 작은 일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예배중심의 자세로 서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심을 누리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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