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진주서 쓴 일기(?)입니다.
주말을 넘기며 예정일이 지나도 손주가 나오겠다는 기별이 없어
'빨랑 나와서 바닷가로 물놀이 가자고 해!' 하는 카톡을 아들한테
남기고
기다리기 지루해 월요일 아침부터 집밖으로 나서 보았다.
지네들도 아닌게 아니라 뱃속 꼬맹이한테 고기 사줄테니 얼른 나오라해도
소식이 없단다.
걔가 고기를 좋아할 지 뭘 좋아할 지도 모르면서...
지도 더운데 너무 답답해 못 참겠다 꾀꼬리하면 세상으로 나오겠지뭐 하며 길을 나섰다.
바다를 보면 답답함이 사라질까 나선 삼천포행..
역시나 바닷바람은 더위를 가시게 하고 확 트인
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해졌다.
가까운 곳에 있으나 지금까지 살면서 거의
처음온 듯하다.
강태공들은 이곳
뜨거운 태양아래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한적한 배들...
별다를 바 없는 섬지방인데
왜 삼천포로 빠졌다며 예전에 삼천포를 비하하는 말이 생겼을까.
한바퀴 돌고는 집으로 돌아가려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시내버스는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온단다.
걷기 싫다며 택시 찾는 사람을 구슬러서 늑도대교를 건너기로 했다.
삼천포 나들이까지는 좋았고 그냥 평범했다.
진주에 도착해 집으로 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볼 일을 봤다.
난 그냥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현금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저양반은 꼭 현금을 요구한다.
노인네 티를 팍팍낸다.
그래서 찾아 줬다.
그리곤 점저녁을 먹으러 진주 중앙시장 식당으로 이동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밥값을 계산하려니 가방속 지갑이 없다.
순간 당황...
지갑속 현금은 얼마 없지만 갖가지 카드랑 신분증 등 중요한 건 거의 다
들어있다.
심지어는 대문 열쇠까지...어떻게...
이동거리는 은행에서 식당까지 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건넸던 돈으로 밥값을 지불하라 말하곤 좀전 은행으로 서둘러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 습관대로 가방에 잘 넣었다는 거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가방의 지퍼를 평소 잘 채우지 않는 버릇이 문제라고...
아! 식당가는 길 붐비는 시장통에서 누군가가 살짝 빼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른들이 흔히 하듯이 액땜한 셈치지 뭐, 큰 일 앞두고...
얼마 안되는 현금만 가져가고 카드든 지값만 돌려주면 좋겠다고 하다
결국 소란끝에 카드분실신고를 하자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과정에서 난
이 모든 사태의 잘못을 남편탓으로 돌리곤 구박을 했다.
왜 길에서 현금을
달라고 해 출금을 하려 지갑을 꺼내게 했냐는게 나의 항변.
시골에는 은행이 멀리 있어
현금을 찾으려면 좀 구찮기도 한데 번번히 현금을 달라니...
자기의 가장 소중한 애첩 담배도 한보루 미리
사뒀는데 왜 돈이 필요하냐,
필요한거 내가 다 해주지 않냐하며 지갑을 가져간 사람보다 저사람에게 온통 화살을 쏴댔다.
오죽하면 하면서 몇만원 안되니 잘
쓰겠지라며 지갑을 가져간 사람에 대한 원망은 적었다.
순박하고
인심좋은 지방이라며 좋아했는데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구나 까지만.
평소 둘이 외출시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조용히 걷지만
난 거의 수행비서수준으로 임한다.
잘 먹지 않는 사람 뭘 좀 더 먹게
할까서 부터, 좀 더 걷게 하려 온갖 묘책을 다 쓰고
그리고 따라오다 잘 없어지기에 수시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를 뽑거나 하면
말을 않곤 사라진다.
거의 큰애 돌보기 수준이라 내 머리는
하루종일 바쁘다.
또 자주 호주머니를 뒤져서 뭘 찾냐하면
담배나 라이터를 찾는단다.
그래서 아예 교통카드도 내가 두장을
들고 다니면서 찍는다.
라이터야 300원짜리 또 사면 되지만
카드를 분실하면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니 말이다.
이렇게 내 머리의 에네르기를 자꾸 쓰게
하니 이런 일이 생겼다며 공격하자
사태가 사태인만큼 자기도 찔리는 바가
있으니 조용했다.
다시는 현금이 없으니 불안하다는 말
말라며 쐐기를 박았다.
칼끝처럼 날이 선 나는 짜증지대로를 내
컨셉으로 날리며
또 다른 은행에 들러 카드 분실 신고를 하다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맥이
빠져
거의 포기 상태로 지쳐, 일단 집으로 돌아가 전화로
신고를 하자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곤 놀라기도 하고 긴장하며 분노게이지가
만땅으로 상승한 상태라
갈증이 나 물을 마시려 남편이 맨 베낭을 여니...
글쎄 딱...ㅎㅎ 그곳에 내 지갑이
들어있다.
순간 반가우면서 먼저 누군가를 의심한
거가 무척 부끄러웠고 회개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남편 탓으로 몰아부친 것에는
조금도 미안하다고 사과할 맘이 없었다.
내가 내 가방이 아닌 남편 베낭에 지갑을
넣는 상태가 된 것은
오로지 남편탓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기에...ㅋㅋ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보다 내가
완전히 삼천포로 빠진 날이었다.
첫댓글 아침부터 혼자 웃습니다~~
베낭속에 잘있는 지갑을
그린필드님에게 원망을
하셨으니????
ㅎㅎㅎ 자업자득인...그러니 평소에 잘해야 한답니다.ㅋ
어쨓거나 참으로 다행 이셔요 캐모마일님.ㅎㅎ
덕분에 평화로운 삼천포의 풍경 구경잘하고 갑니다!..^^
ㅎㅎ 다행이긴 했어요~
삼천포는 조용한 남해안 도시라 한번 가볼만 해요~^^
지갑이 가방에 빠진날 이군요~^^
그런날이 가끔은 있어야
재미진 인생이지요
ㅎㅎ 맞아요~ 지갑이 가방에 빠진 날이었습니다.~^^
깜박하는 기억력..이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네요..저도 부쩍 그런 증상이 생겨서 난감한적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아마도 자연의 순리겠죠?
나이 들어감에 일어나는 불편함은 순순이 받아들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