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명절 대목장을 위해 달려봅니다. 오늘 오전은 김강선 선생님이 함께 하고, 오후엔 최효심 선생님이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코스는 오전에 매우 많은 주문이 몰리는 코스라서 긴장하고 가야합니다.
어르신들이 오늘 하루 땡겨온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기를 바라며 출발해봅니다.
9시 20분,
조용한 그 때, 저 멀리서 오시는 삼촌, 요 앞에서 오시는 어르신 곳곳에서 오십니다.
"아그들 저걸 잘 먹더만~ 컵라면 보단 봉지라면이 더 싸네~" 하며 불닭볶음면 하나 사시는 어르신. 여기 어르신은 늘 손주 먹을 것만 생각하고 손주를 위한 장을 보십니다. 삼촌도 필요한 물건 사고 바로 다시 올라가실 무렵, 건너편에서 어르신이 언제오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넝 갈께요~!"
건너가니 집 앞 의자에 앉아서 몰려 앉게 계시는 어르신들.
필요하신 청주와 막걸리, 숙주, 계란 등을 사십니다. 명절 대목엔 다들 비슷하십니다. 어르신들 다 사신가 싶어서 후진 하려던 찰나, 잠깐 기다리라는 어르신. 윗집에서 어르신이 걸음보조기에 의지해서 천천히 오십니다. 어르신께서도 힘겨운 걸음을 조심조심 오셔서 장 보십니다.
내 의지로 장을 볼 수 있다는 건 어르신들에겐 또 다른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힘이라 생각이 됩니다.
9시 40분,
마을 끝까지 올라갔다가 차를 돌리고 내려오니, 지난주 사신다고 하셨던 이모님 기다리십니다.
당면부터 두부, 숙주, 콩나물 등 점빵차를 기다리고 물건을 사주실 분이 있다는 건 점빵차에겐 큰 행복입니다.
10시 10분,
지난주 어르신께서 전화하셔서 신신 당부하신 집이었습니다.
"울 집에덜랑 꼭 들려야해"
어르신 집 쪽에 주차를 하지 않고, 시정 쪽에 주차를 하다보니 어르신이 걸어오시기가 힘드셨나봅니다.
이번 명절 대목에 꼭 사신다며 필요한 품목들 불러주십니다.
"내가 말한거 갖고왔지?" 반가운 마음에 웃는 얼굴 보여주시며 챙기십니다.
10시 15분,
회관 앞에 몰려 계시는 어르신.
"이렇게 집에까정 갖다주니 얼마나 좋아"
마트를 가기 힘든 어르신들, 집 근처로 점빵차가 가니 물건 사기가 수월하십니다. 이동보행기에 물건 놓고 살살 밀고가면 되니, 어르신들 장보기 수월하십니다.
요근래 회관에선 다들 얼굴 뵙기 힘들었는데, 명절덕분에 동네 어르신들 얼굴 한 번 다 보고 안부 확인합니다.
10시 30분,
앞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평소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조금 조급해집니다. 한편으로는 장사가 잘되는 것에 기분도 좋습니다.
늦게 도착해도 어르신들께선 뭐라하시는 분 한 분 안계십니다. 점빵차가 올 것을 알고 있고, 더 걸리는구나 싶으십니다.
미리 예약하신 청주들 받아가십니다. 그러던 찰나 제가 어르신 성함을 또 한 번 까먹었습니다.
"OOO 라고!! 아 몇 번을 말해야혀!!"
참 어르신 성함이 잘 안외워집니다. 얼굴을 보고 또 봐도.. 의식적으로 기억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때 그 때 기록이다보니 잘 외워지지 않습니다.
더 의식적으로 물건을 갖다드려야겠다 싶습니다.
다른 어르신께선
"목살 안갖고 왔어?" 라고 하십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지난주 왔을 때 목살 말씀하셨는데, 제가 깜박했습니다. 어르신께 양해 구하고 오후에 배달 해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1시 10분,
어르신 집 문이 살짝 열려있었습니다. 들어가니 어르신께서는 대뜸 밥솥을 보여주십니다. 밥솥안엔 물을 담가놓은것이 보였습니다.
"아들놈이 보내줬는데, 이걸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 하십니다.
"밥을 지을줄 몰라 아침부터 밥도 못먹고 굶었네"
제가 봐도 신기한 밥솥이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천천히 설명서보고 작동되는지 확인 후 어르신께 안내해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20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너무 흐른 나머지 함께 동행한 선생님은 먼저 윗동네로 가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시간 많이 잡아먹어 미안하다며, 언넝 물건 사자고 하십니다.
어르신도 명절 맞이 준비에 여념이없었습니다. 손주 좋아한다고 식혜를 그렇게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저한테도 한 잔 주신다고 하셨는데, 차마 시간이 안되서 기다리지못하고 바로 나왔네요. 여유만 있었다면 어르신 식혜 한 잔 먹고 왔을텐데 아쉽습니다.
11시 40분,
지난주에 아들 온다고 술을 여러가지 사셨던 어르신, 오늘은 음식준비하신다고 전감을 비롯해서 버섯과 해물동그랑땡 사십니다.
90이 다되가는 어르신이라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이 삶이라도, 아들을 위한 음식 한 번 내어주고자 하는 마음은 죽을 때까지 가는구나 싶습니다.
12시,
시간이 늦어 다음 마을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는데, 문재 선생님이 물건을 미리 준비해놓겠다고 하시며, 점심도 준비해놓겠다고 하셔서 다음마을까지 바로 갑니다.
어르신들께서도 식사를 하고 있었던 상황, 보자마자 밥 부터 먹으라고 합니다. 물건은 둘째입니다. 일단 앉아서 밥 부터 먹습니다. 오늘의 메인메뉴는 돼지껍데기 볶음입니다. 딱딱하지도 않고 아주 부드럽고 매콤한 양념이 일품입니다.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니
"그건 아무도 모르는겨~" 하십니다.
미원의 맛일수도 있겠으나, 어르신들의 음식은 언제나 맛있습니다.
13시 20분,
어르신 집에 가니 어르신께서 한쪽 눈을 가리고 계십니다. 무슨일인가 싶더니 백내장, 녹내장, 모두 다와서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바람이 들어가면 안되니 가리고 있었다고 합니다.어르신들의 많은 병 중에 하나는 백내장, 녹내장이지요. 어서 쾌차하셔서 눈이 잘 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집안에는 둘째 아들과 손주가 와있었습니다. 할머니집이라고 뛰어놀고 있는 아이, 모처럼 집에와서 편안하게 술 한 잔하시는 아들, 보기 좋구나 싶습니다.
13시 45분,
회관에 어르신들이 많이 안계십니다. 명절 전이라 집에서 준비하기 바쁘십니다. 그래도 우리 어르신들 몇몇은 일부러 기다려주십니다. 이동점빵차가 가니깐요.
"나 필요없는데, 새송이 쪼그만한거 하나만 줘볼랑가? 살려고 했는데, 며느리가 다 해온다네. "
자식 며느리가 장 봐오면 더 좋지요. 모시고 한다는데 안좋은것이 어딨겠습니까? 그저 어르신들은 점빵차에서 더 많이 못팔아주시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크신것이겠지요.
14시 10분,
이름이 오만원인 강아지가 있습니다. 오만원에 사왔다고 이름을 오만원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항상 점빵차가 오면 반갑다고 꼬리 흔드는 녀석.
오늘도 조용히 지나가던 찰나, 명절 때마다 숙주를 찾으시는 어르신이 나오십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숙주 한봉지 사시는 어르신. 고맙습니다.
14시 40분,
오늘도 조용한 이 곳. 어르신 혼자 회관을 지키고 계십니다. 하지만 곧 다른 어르신들이 나오리라 압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줄지어 나오시는 어르신들.
"자 이거 먹어~! 아 아여!!!"
"왜이래~!"
바나나 두 손을 사시곤 한 손은 자기보다 더 나이가 많은 어르신께 주십니다. 서로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에 그러시겠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웃고 받아주십니다.
지난번에 머리가 아파서 나오지 못한 어르신도 함께 나오십니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는 어르신. 최근엔 술을 줄이셨다고 합니다. 술로 인해 체중이 많이 늘어 부담이 된다고하십니다. 잘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이 매주 사시는 술이 우리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어르신에겐 해가 될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5시
점빵차 도착하자마자 문열고 나오는 남자 어르신. 반갑게 보시곤 커피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손수 알커피에 설탕 넣고 두잔을 타주시는 어르신.
"오늘은 상하수도관이 터져서 다들 못나올꺼여~ 다들 집에서 고치고 있거든"
동네 상수도관이 요즘에는 '엑셀' 이라고해서 튼튼한 pvc 관이지만, 옛날엔 일반 파이프 관이라 잘 터지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온동네가 물난리로 보였나 봅니다.
집집마다 집에 있을거라고 하시는 어르신, 살짝 도니 집에서 어르신들 나오십니다.
"빠꾸혀~! 술 갈아야하니깐~"
무슨일인가 싶었더니 이장님에게 선사하신다며, 돈을 주면 안받는다고 술 내려놓고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일인진 모르겠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너나 하할것 없이 모두 술을 선사하신다고 하니 큰 일 하셨나 싶습니다.
15시 20분,
점빵차오면 항시 들리라고 말씀하셨던 어르신. 명절 준비하시는지 한 번 또 여쭤봅니다.
"나는 딸만 둘이여, 다들 안와. " 하십니다.
일전에 먼저라도 왔던것인지, 어르신 마음에 공허함이 보입니다.
"오늘 외상으로 달아야하겠는데? 아직 입금이 안됬어~"
딸들이 어르신께 용돈을 주시나 싶었는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활이 오래됬구나 싶기도합니다. 명절엔 가족들과 함께 보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이상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을 보면 늘 마음이불편합니다. 그래서 어르신 한 번 꼭 안아드리고 왔습니다. 어르신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랄께요.
어제보다 더욱 바빴던 오늘, 돈이 일부 맞지 않았지만 어제보다 더 나았던 오늘이었습니다.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 보내고 다음주 또 반갑게 맞이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