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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섬 한강공원/수영장 나들이 槪要
♡ 장 소 : 뚝섬 한강공원(수영장)
♡ 일 자 : 2014년 7월 27일(일요일)
♡ 누 구 랑 : 가족과 함께
♡ 소 재 지 : 서울시 광진구 강변북로 139 (자양동 704-1)
♡ 시 간 : 10시~17시
♡ 날 씨 : 맑음
평균기온:25.0℃
최고기온:30.6℃
최저기온:21.4℃
평균운량:4.0
일강수량: -
♡ 특 징 : 한강공원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강변유원지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수상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낭만과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윈드 서핑, 수상스키, 모터보트 등 수상스포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면 적 : 825,000㎡
♡ 길 이 : 11.5km(서울시계:광진교상류 육상 ~ 중랑천교)
♡ 안 내 전 화 : ☎02)3780-0521(뚝섬안내센터)
한강의 역사
한강유역에서 구석기, 신석기시대 유물이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며 그들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토기, 석기 또는 골각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구릉이나 야산에서 집중적인 채집활동을 벌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원초적인 어로기법인 낚시어법이나 자돌어법이 일찍부터 성행하여 창 또는 작살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찔려
잡기도 하였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자돌어법, 낚시어법이 개인적인 단독작업으로서 어획량이 많지 않은데 비해 어망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채집어법과 더불어 집단적 공동작업을 통하여 대량어획을
가능하게 하는 어로기법인데 그러한 증거로서 어망추가 여러 유적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공동작업에 의한 대량생산을 통하여 잉여생산물을 축척하여 나갔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환경에의 적응도를 높여 생존가능을 증대시켰으며, 그에 따라 인구가 증가되고 취락이 팽창하였으며 안정된 정착생활을 통하여 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고 이후 청동기시대의 발달된 문화를 거쳐
한강유역에서 고대국가가 발달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앙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는 한반도 동북지방(함경 남북도)의 민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문화, 서북지방(평안남도, 황해도)의 팽이토기
문화의 영향을 받아 민무늬토기문화 및 청동기문화가 성립되었으며 이들 양지역의 문화는 자체적인 발전과 혼합을 통해 한강유역의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이룩하고 한편으로는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문화를 전파시켜 주는 중간 매개지역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한반도에서는 민무늬토기 시대에 이르러 신석기이래의 농경이 더욱 발전된 것으로 보여진다.유적지 움집터에서 탄화된 쌀, 보리, 수수,
기장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잡곡농사가 한반도 전역에 일반화되었음은 물론, 벼농사도 서북지방과 남한지역에 상당히 일반화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한강유역의 벼농사는 서북지방
팽이토기 주민의 남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남하한 팽이토기인들이 재래의 동북계 민무늬토기인과 접촉 융화하면서 한강유역, 나아가서는 남한지역에까지 벼농사가 일반화 된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한강유역의 득실이 나라의 흥망성쇠와 지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강유역이 반도의 중앙부를 축으로 관류하는 큰 강인 만큼 한반도의 중심무대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 경제, 사회, 외교적 제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지역이 삼국쟁패의 주요 과녁이 되었고 한강유역을 점유한 국가는 영토적 확장과 더불어
국가발전의 강력한 터전을 마련한 결과가 되었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유역을 번갈아 지배했던 사실을 전 역사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강유역을 점유하면 나라가 번영하였고 상실하면
쇠퇴하였다.
송악의 호족 출신인 왕건은 918년 왕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고 935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문종 21년에 한강유역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당시 양주(현 서울)를 남경으로 승격시켜 개경 및 서경과
함께 3대요지가 되었다. 이후 고려말 1382년(우왕 8년) 9월에 한양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창궐, 대명관계의 복잡성등 정치,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풍수지리설이 성행하자 도읍이
불길하다 하여 이듬해 2월에 개성으로 돌아왔다.고려왕조 마지막왕인 공양왕때(1390년 9월) 다시 한양천도를 단행하였으나 한양천도가 있은 후 큰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일어나고, 인축이
동사했으며 신도의 문화부에 큰 범이 뛰어들어 사람을 물어가는 등 불길한 일이 자주 발생하자 1391년 2월에 다시 개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고려로서의 한양천도 문제는
종말이 맺어지고 그 완전한 실현은 1394년(조선태조 3년) 이성계에 의해 이루어 졌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후 불과 16일만인 1392년 8월 3일에 도평의사사에게 한양천도를 명하여 태조3년(1394년) 10월 25일(음력) 천도를 실현하였다. 한양천도의 배경은 다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주지하는 바와 같이 풍수지리설에 영향을 받은 바가 컸다는 점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개경의 지덕이 쇠패한 땅이라 망국의 수도를 하루라도 빨리 피하려는 미신적 사상인 음양지리(풍수)적
사상에 영향받아 천도를 서둘렀다는 지적이다.둘째, 태조 이성계 자신이 왕위획득과 관련되는 행위에 대한 가책과 개성의 왕씨를 중심으로 한 구가세족의 반발에 대처할 필요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정황은 태조 이성계로 하여금 천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하였다.셋째, 한강을 끼고 한양의 인문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한 왕조가 도읍지를 선택할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선 지리적인 위치를 고려하고 있음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양은 지세가 훌륭하고 군사적인 방위에 있어서 천연의 요새지였다. 이러한 지세의 훌륭함은 일찍이 이중환도 그의
「택리지」에서 한양의 진신인 삼각산이 수려하고 맑기가 나라 안에서는 사산중의 하나라고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전근대사회에 있어서 국가재정의 운용을 위한 수입은 거의
농업생산물에 의지하고 있었다. 농업경제가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상태에서는 현물을 조세로 수취하였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세곡의 운송에 큰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도로망을 포함하여
육상교통 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던 까닭에 조세는 주로 대량수송이 용이한 조운을 통해 운송되었다. 그러므로 도읍지로서의 위치는 수륙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어야 함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지리적 위치 등을 고려하여 선택한 한강을 끼고 있는 한양은 천도때부터 조운의 발전은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국의 세곡이 조운을 통하여 한강에 모였고, 한양에 거주하는
지주층이 지방농장에서 거두어 들인 소작도 대부분 선박으로 이곳에 운반되었다. 도성내 일반 생활품도 그 양이 많은 것은 대부분은 선박으로 한강을 통하여 공급되었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이르러 세제개혁과 아울러 대동법이 실시됨에 따라 한강은 더욱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으며, 호남을 비롯하여 충청도 등지에서 수납되는 대동미는 조운선을 통하여 한강으로 수송되었다. 따라서
한강은 백관의 녹봉과 국가재원을 충당시켜 보급로가 되었다.
한강변에 입주했던 최초의 외국인은 프랑스인 신부들이었는데 1887년 현 원효로4가 1번지의 6,500평의 땅을 구입하여 신학교를 건축하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한강에 증기선이 최초로 운항한 것은 1888년이었는데, 그 뒤 1890년 독일계와 미국계의 증기선이 취항하게 되었고, 이어 중국인 거상 동순태가 100톤짜리 증기선을 들여와 용산과 인천사이를
취항하기 이르렀다.1899년 착공한 한강철교공사는 다음해인 1900년에 완공,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철교가 놓여졌다. 그리고 길이 26마일의 서울역에서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가 1900년에
개통되었다. 그리고 한강에 최초의 인도교가 가설된 것은 한일 합방 6년뒤인 1916년이었고, 새 인도교는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되었는데 폭 20미터에 길이는 10,005미터였다.
한강에 큰 홍수가 있었던 때는 1912년과 1920년, 1925년의 세차례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낸 것은 1925년(을축)대홍수로 7월 15일에서
18일까지 4일간에 걸쳐 400에서 500밀리미터의 높은 강수량을 보였다. 노도와 같은 홍수물은 한강 제방을 무너뜨리고 순식간에 용산, 남대문
앞 까지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현재 올림픽 주경기장이 위치한 잠실동과 신천동은 부리도(浮里島)라 불리는 하중도(河中島)였다.
이 섬은 오랜 세월 동안 흐름이 약간씩 북서류하게 됨으로써 생겨난 섬이다.1970년 4월, 북쪽 하도를 넓게 하고 남쪽의 하천을 폐쇄함으로서
하중도를 육지화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대역사는 100만 평이 넘는 공유 수면 매립공사가 주축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그 주변 340만평의
광역 구획정리사업이 동시에 실시되어 1975년에 마무리 되었다. 이개발로 인해 남류하던 흐름이 폐쇄되면서 만들어진 호수가 하적호(河跡湖)인 석촌호수이다.
뚝섬 한강공원
한강의 옛이름
한사군과 삼국시대 초기의 한강은 한반도의 중간 허리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 라 불렀고, 고구려에서는 '아리수' 라 했으며, 백제는 '욱리하' 라고 했다.
또 신라는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 라고 불렀다. 한편 '삼국사기' '신라편' 지리지에는 한강을 '한산하' 또는 '북독' 이라고도 했다.
고려때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내리는 긴 강이란 뜻으로 '열수' 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아 '사평도' 또는 '사리진' 이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경강' 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이전에 백제가 동진과 교통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라 불렀고,
그 뒤부터 옛이름은 차츰 사라지고 '한수' 또는 '한강' 이라고만 불리어졌다.
한편 한강은 본래 우리말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 넓다, 길다'는 의미이며, '기람'은 강의 고어로 '크고 넓은 강' 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수영장
- 이용시간 : 오전9시 ~ 오후8시
- 이용요금 : 어른5,000원, 청소년4,000원, 유아3,000원
수영장
수용인원 3,400명(6월말 ~ 8월 개장)
※문의처: 452-5955
한강의 발원지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한 하천으로서 삼척시 하장면 부근에서 골지천의 이름으로 북류하다가 광동댐을 지나 석병산(1,010m)에서 발원한 임계천과 합류해 서류,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서 황병산(1,407m)을 발원지로 한 송천과 만나 조양강이 되어 흐르다가, 오대천과 합류한 후 남류하여 동강이 된다. 동강은 영월읍에서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류해 만들어진 서강과
만난 후 흐르다가 충주시에서 달천, 강원도 원주시와 경기도 여주군 부근에서 섬강·청미천과 만난 후 양화천·복하천·흑천 등의 지류를 합친 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난다.
동강은 한강 본류의 최상류 지역을 흐르는 하천으로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위치한 금대봉에서 발원해 영월읍으로 흘러나가는 총연장 148.7km, 유역면적 2,335㎢의 하천이다.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발원한 동강은 삼척시 하장면 상사미리를 지난 후 북류하다가 광동댐을 거쳐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에서 임계천을 만나 임계천이 된 후 서류해 북면 여량리에서 황병산에서 발원해
횡계를 거쳐 남류한 송천과 만나 조양강이 되어 흐르다 오대산에서 발원해 평창군 진부면을 거쳐 남류한 오대천을 합한 후 남류,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에서 동남천을 합친 후 곡류하다가 영월읍으로 흘러가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정선군 가수리에서 영월읍 삼옥리에 이르는 구간인 동강 하류는 석회암의 지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감입사행천이 발달되어 있다. 이 지역은 약 4억 5천만년 전에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 지대로 약 2억년 전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으로 인해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현재에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침식 퇴적작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강에는 이러한 지표수의
운동에 의한 지형적 특성 외에도 지하수의 용식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256개의 동굴이 분포되어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백룡동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강은 평창강과 주천강이 만나 이루어진 하천이다. 평창강은 서강의 본류로서 평창군 용평면에 위치한 계방산(1,577m)으로부터 발원한 속사천이 남류하다가 봉평면에서 발원해 남동으로 흐르는
흥정천과 용평면 장평리에서 합류, 대화면을 거쳐 남류하다가 방림면에서 발원한 계촌천을 합친 후 평창읍을 지나며 곡류해 영월군 서면에서 주천강과 만난다. 주천강은 횡성군 둔내면에서 발원해
남류하다가 안흥면과 강림면을 거쳐 영월군 수주면과 주천면을 곡류하며 흐르다 영월군 서면에서 평창강과 만나 서강이 된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태기산(1,261m)에서 발원해 계천이라는 이름으로 남서로 흐르다 횡성읍을 통과해 남류, 원주시에서 치악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한 원주천과 합친 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발원한 삼산천을 만나 남한강으로 들어가는 연장 92.6km, 유역면적 1,485㎢의 하천이다.
복하천은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에서 발원하여 마장면과 호법면을 관류하여 구만리 벌판을 돌아 이천시 백사면과 부발읍의 지계를 이루며 여주군 흥천면을 지나 남한강에 합류되는 이천의 젖줄이다.
연장 37.3km, 유역면적 288㎢로 옛날에는 남천이라고도 불리었다.
양화천은 이천시 설성면에서 발원한 송곡천이 역시 같은 산간 부락인 설성산의 장천리에서 발원한 대신천과 만나 북쪽으로 이천시 대월면과 가남면을 지나 여주군 능서면 내양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연장 32km의 하천이다.
이천시의 동남단을 흐르며 충청북도와의 지계를 형성하고 있는 청미천은 그 근원이 용인시 원삼면 으로 연장 66.1km 유역면적 615㎢이다. 유역 내부의 장호원읍 노탑리·
오남리·어석리·대서리와 율면 본죽리·신추리 등의 지역은 넓고 기름진 들판으로 이루어져 복하천 유역에 버금가는 이천쌀의 특산지이다. 백족산 남단에 청미천을 가로질러 축조된 자점보는 조선 중기에
축조된 것으로 유명하다. 청미천은 여주군 점동면 장안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경기도 용인시 호동에 있는 문수봉(404m)에서 발원한 경안천은 용인읍을 지나 북류하다가 광주군 모현면에서 능원천과 합류한 후 초월면에서 곤지암천을 합친 다음 팔당호로 들어가는 길이 49.5km
유역면적 598㎢의 하천이다. 경안천의 주요 지천으로는 고산천·직리천·중대천·목현천 등이 있다. 경안천 중간에는 양벌보·중앙저수지·서하양수장 등이 있어 농업용수로 크게 활용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경안천이 우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안천은수도권 주민의 상수원인 팔당호의 수질을 악화시키는 주요 하천으로 취급되고 있다.
곤지암천은 광주군 실촌면에 위치한 앵자봉(667m)에서 발원해 유정천·노곡천·궁평천·진우천·산이천·학동천과 합류되어 초월면 지월리에서 경안천으로 흘러들어 간다. 총 23km로 추곡저수지·
곤지암보·쌍동보·용수보·도평보·지월보·지월양수장 등이 위치해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발간, 2001.10.)』 수록내용
서울은 1392년 7월 17일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운 다음 1394년 11월 26일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오늘에 이르는 60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의
한국 민족사의 중심역할을 하는 수도 서울로서 남쪽 지방과의 육상교통은 반드시 한강을 거쳐 갈 수 밖에 없었으니 한강의 교량은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변천하게 되었다.
국왕은 선왕의 능에도 참배하고 온천에 가거나 나들이를 하기 위하여 1년에 몇번씩은 한강을 건너야만 했다. 이같이 국왕 행렬이 도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큰 배 70여척을
가로로 이어 서로 묶은 뒤 그 위에 널판지를 깔아 5, 6필의 기마가 옆으로 서서 자유로이 건널 수 있도록 오늘날의 부잔교와 같은 교량을 세우곤 했다.(도면 1-1 참조)
오늘의 한강대교 자리에 놓여졌던 이 다리는 백성의 배를 일정기간 징발하여 사용했는데 놓는데 한달, 푸는데 한달이 걸리는 등 강변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 후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의 확장과 더불어 교통량이 증가되고 한강을 도강하는 보다 많은 물동량의 수송이 요구되었다. 토목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한강에 최초로
건설된 교량은 경인철도부설공사와 병행한 용산과 노량진간을 연결하는 한강철도교로 1897년 착공하여 1900년에 준공되었다. 이 교량을 시점으로 지금은 26개의 교량이
한강상에 가설되었거나 가설 중에 있다.(표 1-1 참조) 수도 서울의 발전과 인구집중으로 한강상에 많은 교량들이 설치되었으며 토목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시대에 부흥하는
여러형식의 교량이 세워져 시민의 교통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형식의 교량건설은 하천경관 향상등에 크게 기여하는 반면 기술 및 시공상의 문제 등으로 최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발생되고 당산철교 철거가 확정되었으며 광진교는 철거 후 새로운 교량을 설치하고 있는 등 유지관리에 따른 문제가 계속 발생되고 있어 교량 건설과
함께 유지관리 문제도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 | 규모(m) | 상부구조형식 (본교만) |
준공연도 | 공사비 (백만원) |
시공사 | 관리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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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 연장 | ||||||
팔당대교 | 18.7 | 1,113 | PSC BOX GIR | 1995.5 | 65,000 | 유원건설 경기도공영 개발사업단 |
하남시 (건설과) |
미사대교 | 32.4 | 1,530 | PSC BOX GIR | 2009.7.15 | 137,100 | 한국해외기술 현대산업개발 |
서울춘천고속도로(주) |
강동대교 (상하류) |
16.6 | 1,126 | PSC BOX GIR | 1991.12 2002.12 | 115,000 | 대림산업(주) 동명기술단 제일엔지니어링 |
한국도로공사 |
양화대교 (상하류) |
18.0 | 1,108 | Steel Plate Girder | 1965. 1.25.(구교) | 512 | 현대건설 | 도로시설과 |
16.2 | 1,053 | Steel Plate Girder | 1982. 2.25.(신교) | 14,900 | 삼부토건 | ||
한남대교 (상하류) |
25.7 | 919 | Steel Plate Girder | 2005.11.30 | 140,793 | 현대건설 외 4개사 | 도로시설과 |
25.5 | 919 | Steel Box Girder | |||||
마포대교 (상하류) |
22.75 | 1,389 | Steel Plate Girder | 2000. 7. 3 | 21,987 | 현대건설 외 4개사 | 도로시설과 |
22.75 | 1,389 | Steel Box Girder | 2005.12.19 | ||||
광 진 교 | 20.0 | 1,056 | S.T BOX GIR S.T PL GIR |
2005. 6. 30 | 103,718 | 삼환기업 제일ENG |
도로시설과 |
천호대교 | 25.6 | 1,150 | S.T BOX GIR PSC GIR |
1976.7.5 | 3,840 | 동아건설 동명기술단 |
도로시설과 |
올 림 픽 대 교 |
30 | 1,470 | PSC BOX GIR 사장교 |
1990.6.27 | 68,725 | 유원건설 삼우기술단 |
도로시설과 |
잠실철교 (도로교) |
8.8 | 1,235 | S.T BOX GIR S.T PL GIR |
1979.10.30 | 3,072 | 동아건설 유신설계 |
도로시설과 |
행주대교 | 10.0 | 1,400 | PSC Beam Girder, PSC Box Girder, 사장교 Steel Box Girder |
1978. 7.22. | 2,750 | 한국건업 | 도로시설과 |
14.5 | 1,460 | 1995. 5.19. | 16,800 | 벽산건설 | 도로시설과 | ||
2000.12.27 | 65,640 | 벽산건설 | 도로시설과 | ||||
성수대교 | 28 | 1,160 | Steel Plate Girder | 1997. 8.14.(복구) | 70,800 | 현대건설 | 도로시설과 |
Steel Plate Girder | 2004.12.28(확장) | 127,173 | 현대건설 | ||||
잠실대교 | 35.0 | 1,280 | S.T PL GIR | 2004.02.20 | 112,597 | 현대건설 천일 |
도로시설과 |
청담대교 | 27 | 1,211 | S.T BOX GIR | 2001.02.27 | 100,148 | 동부건설 동부ENG |
도로시설과 |
영동대교 | 25.0 | 850 | S.T PL GIR PSC GIR |
1973.11.8 | 2,065 | 대림산업 동명기술단 |
도로시설과 |
성수대교 | 35 | 1,160 | GERBER TRUSS S.T PL GIR |
2004.12.28 | 21,500 | 현대건설 천일기술단 동명기술공단 |
도로시설과 |
당산철교 | 10.0 | 1,360 | K-Truss | 1983.12.31. | 11,000 | 남광토건 | 매트로공사 (동작,동호,당산) |
강합성교 | 1999.11.22. | 100,000 | 현대중공업,진흥기업 | 매트로공사 (동작,동호,당산) | |||
동작대교 | 28.6 | 1,245 | Steel Box Girder, Steel Plate Girder |
1984.12.29. | 55,370 | (주)대우 | 도로시설과 |
동호대교 | 20.4 | 1,220 | Steel Box Girder | 1984.12.31 | 23,700 | 남광토건 | 도로시설과 |
한강철도교 | 5.6 | 1,113 | TRUSS S.T I GIR |
1990. 6.27. | 68,725 | 진흥, 흥화기업 | 한국철도공사 서부본부토목부 |
원효대교 | 20.0 | 1,120 | PSC BOX GIR | 1981.10.27 | 24,500 | 동아건설 한국종합 |
도로시설과 |
서강대교 | 29.0 | 1,320 | NIELSEN ARCH PSC BOX GIR |
1999.8.14 | 86,996 | 현대건설 한국종합 |
도로시설과 |
성산대교 | 27.0 | 1,040 | GERBER TRUSS ST PL GIR |
1980.6.30 | 25,790 | 현대건설 한국종합 |
도로시설과 |
가양대교 | 29 | 1,700 | S.T BOX GIR | 2002.5.31 | 25,790 | 현대건설 삼우기술단 |
도로시설과 |
마곡대교 | 10.7 | 2,930 | Warren Truss + S.T BOX GIR | 2010.12.31 | 25,790 | 현대건설 (주)청석엔지니어링 |
코레일공항철도 |
방화대교 | 31.1 | 2,559 | AR TRUSS S.T BOX GIR |
2000.9.30 | 176,000 | 롯데건설의 3개사 | 신공항 하이웨이 |
김포대교 (상하류) |
19.4 | 2,590 | PSC BOX | 1997.07 | 195,000 | 쌍용 건설 | 한국 도로공사 |
일산대교 | 28.6 | 1,840 | S.T BOX GIR | 2008.01 | 233,500 | 현대 건설 | 일산대교(주) |
대한민국 최대의 강변 문화축제! 캠핑.물놀이. 음악회. 영화제. 거리퍼레이드. 수상레포츠. 자전거 등 5가지 테마 37종의 문화프로그램이 한여름 더위를 피해 한강을 찾는 시민들을 맞이합니다.
‘한여름 한강에서 즐기는 5색 문화바람(風流)’를 주제로 펼쳐지는 2014 한강행복몽땅프로젝트(약칭 ‘한강몽땅’)는 ‘시원한강’, ‘감동한강’, ‘도전한강’, ‘편안한강’, ‘함께한강’ 의 테마로 나눠진
프로그 램으로 7월 19일부터 8월 19일까지 강변 한강공원 전역에서 펼쳐집니다.
시민들은 가족.연인.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프로그램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열린 프로젝트형 축제를 통해 시민중심 문화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만나게 됩니다.
기간 | 2014. 7.19(토) ~ 8.19(화), 여름 휴가철 한달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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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한강 공원(11개), 선유도 공원 |
주제 | 한여름 한강에서 즐기는 오색 풍류(風流) |
슬로건 | “한강에서 꿈꾸고 강변에서 놀자” |
프로그램 | 5개 테마, 37개 프로그램 |
자료출처: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