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처음 주제에 대해서 쓸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퀸틸리아누스의 조기교육에 대한 우리나라의 조기교육의 현실을 빗대어 비판해보고자 했는데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즉 제가 원했던 서적 자료 찾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망연자실하고 있던 찰나에 집 책장에 있었던 루소의 ‘에밀’ 에 자연스레 눈이 갔습니다. 이번 교육 철학 강의를 통하여 꼭 제가 접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철학 책을 읽겠다는 제 목표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철학책 한권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이 ‘에밀’!! 사범대에 다니고 있던 언니가 꼭 한번은 읽어 보아야 한다며 권했던 책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덧붙이는 언니의 말이, ‘에밀 읽다가 다섯 번은 졸았다’ 며 함부로 읽을 만한 책은 아니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한번 읽어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독서 감상문 같이 보일 수 있는 이 조심스런 글을 써나가려 합니다.
루소의 에밀에서 도대체 어떤 내용에서 의문점을 가지고 또 어떤 측면에서 생각을 해 보았는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에밀에 대한 대강의 줄거리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에밀을 4일에 걸쳐 모두 읽었다. 루소는 에밀에서 교육단계를 제1단계 ~ 제5단계의 형식으로 나누고 있었다.
제1단계 ⇨ 유아교육의 단계로 동물적 감각 지배 시기라고 하여 감각 훈련과 신체 단련이 필요하다. 유아는 상호성이 없고, 오직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특징이 있다. 이 단계에서는 자연적인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어떤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제2단계 ⇨ 아동기로서 5세 ~ 12세를 말한다. 이 단계는 말을 할 줄 아는 어린이가 언어와 경험을 학습하는 때이다. 이 시기는 소극적 교육의 시기로 생각해 어려운 책은 피하고 감각교육, 사물 교육, 육체의 훈련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하여 자연주의적 삶의 지식이 실제 생활 즉, 자연 속에서 스스로 얻는 교육이다.
제3단계 ⇨ 소년기로서 12세 ~ 15세를 말한다. 이 단계는 개인의 합리적 사고를 통여 생활하고 삶에 대한 문제 해결을 스스로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제2단계와 달리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자신의 생각에 의해서 행동하고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개인에게 유용한 기술 습득을 장려한다.
제4단계 ⇨ 청년기로서 제2의 탄생기라고 하며 15세 ~ 20세를 말한다. 이 단계는 사회적 시기로 사회관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즉, 도덕적 교육 종교적 교육에서 우정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 생긴다. 그 감정에 의하여 이성이 완성된다. 이 단계에는 사회에 나가서 지식을 얻어야 하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인하여 혼란스러우므로 배울 것이 없고, 오히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연성을 인식하게 하는 시기이다.
제1단계 ~ 제4단계까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던 부분으로 루소에 대해 익히 잘 알려져 있던 내용이여서 나에게 큰 흥미를 불어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제5단계에 있었다. 루소가 에밀에서 잠시 언급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성 교육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서 많은 의문점을 주었다. 5단계에서 특히 많은 의문점을 가진 이유는 나의 배경의 영향이 가장 크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매우 권위적이시다. 말 그대로 한국의 가부장적인 가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세 남매의 둘째로 위로는 언니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다. (참고로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공을 들이셨다고 한다.) 큰집에 가도 주로 듣던 이야기가 ‘여자는 대학 안 나와도 집안 살림만 잘하면 된다.’ 이었다. 이런 여건에서 여성 교육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환경일수록 내가(나또한 여자였으므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5단계가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것 같다.
제5단계는 결혼기로서 에밀과 통하는 소피를 만나 가정생활을 꾸려 나가고 감정의 안정을 찾고 내적인 자유를 얻는 완성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내가 크게 관심을 가진 부분은 루소의 여성교육에 대한 관점으로 제 5부의 구절구절을 읽어서 루소의 생각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더 쌓여만 갔다. 그 몇몇 구절은 다음과 같다.
∘여성도 마찬가지로 같은 기관들을 지니고 같은 욕구를 지니고 같은 능력을 지닌다. 여러 기관도 똑같이 구성되어 있고 각 부분도 똑같으며, 신체의 움직임도 같고 외형의 모습도 닮았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양자를 고찰해 볼 때 그 양자는 약간의 차이 밖에 없다.
→ 이 부분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인 듯하다. 과연 그럴까? 이러한 부분들이 남성교육과 여성교육에 있어서 차이점을 낳고 있을까?
∘우리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양자가 공통되게 지니고 있는 점은 모두 인간이라는 종족에 속한다는 것이며, 양자가 서로 다르게 지니고 있는 점은 모두 성에 속한다는 것뿐이다.
→ 이부분에서부터 무언가 불평등적인 교육 내용과 방법 등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루소는 어떻게 여성 교육과 남성 교육을 구분하여 옳게 일반화 하여 갈 것인가?
∘양자의 공통점에 있어서 양자는 평등하다. 양자의 다른 점에 관해서는 비교할 수 없다.
... 남성의 가치는 그 힘에 있다. 남성은 강하다는 것 한가지로 마음에 들기 마련이다.
...여성에 있어서 힘이 되는 것은 갖가지 매력들이다. ...여성의 교활성, 부드러움, 수치심
...어머니가 되었을 때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한 참을성, 상냥함, 열정, 애정...
남성과 여성이 신체 구조에 있어서나 성격에 있어 동일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 일단 밝혀진 이상, 당연히 양자는 동일한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 이런 식으로 여성과 남성의 교육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일반화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루소가 결론을 내리기를, 양자의 능력들은 서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있을 때 보다 훌륭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남성으로서 있고자 할 때에는 그 가치가 떨어진다. 여성이 자기의 권리를 올바르게 발휘할 경우에는 항상 남성보다 우위에 선다.
→ 이런 부분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공과대학의 여대생으로 남성들이 전담해 온 일을 하기 위해 이 과에 들어왔다. 그러면 내가 나의 전공을 살려서 공부할 경우에는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아가 모든 공대에 여성들이 성공할 확률은 없단 말인가??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분명 나 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흑백논리의 오류 등을 범했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를 들어서 생각한 것이다.
제5단계에서는 대략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정리를 하자면, 루소의 견해를 통해서 여성이 교육 받아야 하는 이유는 슬기로운 아내 즉, 남편에게 순종하고, 겸손의 미덕을 가지며, 항상 청결해야 하고, 섬세한 재주를 지녀야 하며, 수예를 배우고, 아이의 양육, 정성스런 간호, 가사의 전담 등 현모양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루소가 예로 들고 있는 여성이 소피이다. 소피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이고, 사적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어머니, 아내, 주부로서의 가정교육을 중시 여기는 현모양처이다. 소피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해보면, 그녀는 출생신분과 유능한 점에서 에밀과 같고 재산 문제는 좀 떨어진다. 그녀는 첫눈에 반할만한 여자는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매력을 더한다. 그녀의 교육은 취미가 있고 기교는 없으나 재능이 있고 지식은 없으나 판단력이 있다. 그녀의 정신은 지식이 몸에 배지 않았으나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그녀는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훈육되었다. 소피라는 여성을 루소는 이렇게 묘사하였다. 여기에서의 소피의 여성상에 대한 루소의 설정이 많은 비판점 즉, 모순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루소의 ‘에밀’에서 처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남녀 모두는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루소의 사상은 평등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자연에서 의해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가진 성에 의해서 차이가 발생하여 입장은 반대가 된다. 남녀간에는 불평등하게도 다른 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래서 평등하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자연에서 비롯된 남녀의 성 차이를 존중하고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차별을 인정하고, 그렇게 자연에서 비롯된 남녀의 사회적 역할과 성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교육에서도 차별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남녀의 차이를 당시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교육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교육을 불변의 가치로 고정시켰다는 점에서도 모순점을 가진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루소는 여성이 교육받아야 하는 이유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에 정성을 다하는 여성 즉 현모양처를 양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어머니는 튼튼한 신체를 가지고, 튼튼한 아이를 출산해야 하고, 튼튼한 아이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과, 여성의 감정이 남성의 취미, 쾌락, 행복 등 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것은 여성 교육이 남성과 상호성을 가져서 남성 즉, 남편의 생각과 같이 생각하며, 남편과 아이를 내조하고, 위로하여 가족들의 생활을 이끌어 나가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조선 시대 쯤의 가부장제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요즘 현대 사회의 여성 교육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듯하다. 이 두 번째 주장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요구되는 일부분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이 꼭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성적인 차이만 있을 뿐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교육을 받아서 남성만큼 남성들이 하는 일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런 내용의 글 즉, 신문 기사를 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일에서 남성들 못지않게 성공한 많은 예들이 있다. 그 예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 탄생하고, 또 남성들이 많은 부분에 대해 관여하여 왔던 연구 분야도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여 꼼꼼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이런 예들로 인해서 성적인 차이는 교육을 받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루소의 여성 교육에 대한 내용은 남성의 교육 내용과는 상반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퍼즐 맞추기 식으로 하나의 퍼즐이 볼록 퍼즐이면 다른 하나의 퍼즐이 오목 퍼즐이듯이 여성은 남성과는 상반되는 교육 내용을 교육 받지만, 두 번째 비판점에서 언급한바 있듯이 여성의 모든 교육은 남성과 관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남성에게 달갑게 여겨지는 것,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 사랑 받고 존경받는 것, 아이를 기르고 보살피고 남성의 대화 상대가 되고 위로하고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것 이것이 여성의 모든 의무이고,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분명 그의 저서인 ‘에밀’에서 여성 교육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여성의 진정한 교육이라기보다 가정에서 내조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교육이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생각해 오지 않았던 남성 우위 사상이 루소의 여성 교육론을 통해서 확실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루소의 여성 교육관은 그 시대에 살아가던 시기에 비한다면 결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니다.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생각해 볼 때, 루소가 여성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을 때 너무나 고리타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러한 것들이 현대 사회에서 적응해 나가는데 적합한 교육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에밀의 등장인물 ‘소피’는 신부 수업을 받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진정한 여성 교육으로 버금가는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요즘 학교에서 가정교육, 도덕교육, 윤리교육, 교련교육 등 이런 과목을 배우는 정도가 루소가 생각하는 여성 교육이 아닐까 한다. 이런 교육들 말고도 우리 여학생들이 배워온 과목은 수도 없이 많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심지어 예전의 남학생들이 배웠던 기술 산업까지도 배운다.
마지막으로 루소의 여성 교육의 방법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배우는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을 대충 어떤 것인지만 알고, 여성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고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생각해서 배워야 할 것들은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일, 레이스 뜨기, 살림하는 법, 요리와 부엌일, 식료품의 값과 질을 따져 구입할 줄 알고, 가계부도 꼼꼼히 쓰는 등 어머니가 직접 모범을 보여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여성이 가정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데 있어서 배워두면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남성도 주부가 될 수 있는 요즘 확실히 뒤떨어진 생각인 것도 당연하다. 앞에서 생각한 것과 거의 동일하다.
루소의 여성 교육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현 한국 여성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루소 또한 그 시대 상황에 따라 가부장적인 형태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루소의 생각에서 나아가 한국 여성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도 생각해 보기로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은 많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동등한 입장에서의 교육자로 버금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유교적인 인습이 깊이 뿌리 박혀서 아직도 가부장적 가정의 분위기를 많이 띈다. 가정 폭력에 대한 어떤 통계조사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더 많은 수입이 있을 경우 남성들은 열등감에 쌓여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면 현대의 한국 여성들은 과연 어떻게 교육을 받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한국 여성의 교육에 대한 인식 정도는 몇 백 년을 이어온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많은 결정권을 가졌던 남성들에 비해서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많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이 지위를 보완해 줄 수단을 갖지 못한 채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성차별로 인해서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회사가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학생이 수학 과목 성적이 부족하면 과외를 하거나, 학원을 가듯이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서 개선해 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약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는 여성에게 그것을 개선할 만한 여지를 교육이 일부는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오면서 틀에 박힌 교과서에 박혀 있는 남녀의 성역할을 강요받는다. 초등학교 때 우유 당번은 학교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남학생들이 했다. 여전히 대학에 와서 M.T를 갈 때 무거운 상자를 드는 일도 남학생들이 한다. 반면 초등학교 때 환경 미화일로 교실 뒤에 있는 벽보를 꾸미는 것은 여학생들이 했다. 대학에 와서 걸레질은 여학생들이 주로 한다. 틀에 박힌 교육 때문에 그러한 예들이 반복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 한국 여성들에게 어떤 교육이 이뤄져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여성은 여성스러워야 하고 남성은 남성스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하나의 편견임을 인식하는 여성 스스로의 자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의 옷을 입히고 남자아이에게는 하늘색 옷을 입히는 것, 여자아이에게는 부드럽고 얌전한 성격을 강조하고 남자아이에게는 늠름하고 씩씩한 성격을 강조하는 것 이러한 편견들을 교육적으로 성 역할의 어떤 고정관념에 의하여 강요된 결과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양성성의 개발 교육이 필요하다. 양성성이란 여성과 남성의 각각의 장점을 골고루 갖춘 조화로운 인성을 말한다. 요즘 사회에서도 강조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교육에 이용되는 교과서의 재 편찬이 요구되고, 교육 과정을 개편하고 틀에 고정된 교사들보다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많이 채용되어야 한다. 또한 정책의 결정하는데 있어서 여성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여성의 기술 교육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의식적인 교육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기본적인 가부장적인 가족관, 남성 우호주의의 사회관를 포함하는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들의 생각의 변화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은 성적으로 약한 존재가 아니고 여성도 남성과 같이 교육받아서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루소의 여성 교육을 통한 비판적인 시각에서의 해석과 그 여성 교육을 한국 사회에 까지 이끌어 해석하고 그에 대한 교육적인 방안까지도 생각해 보았다. 한국의 여성들도 이제는 변화해야 할 시기이다. 지금은 세계화의 과도기로 남성 여성 구분 없이 즉 성에 구분 없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국 여성들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고 있고 또한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듯 여성들도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 여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여성을 위해 주어진 교육을 최대한 누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서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다시 루소의 에밀로 돌아가서, 루소는 분명히 여성의 수동적인 가정중심적인 교육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현대 한국 여성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많은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고 저녁 늦게 쯤에야 엄마가 와서 데려가는 그런 현실을 따끔하게 꼬집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한국 여성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첫댓글저도 공대쪽이라 여성교육에 대해 좀 관심이 많은 편인데요...얼마전에 취직한 선배언니말이 여자는 그냥 술자리에서 술이나 좀 따라주고 좀 웃어주고 과장님 비위만 잘 맞춰주면 회사생활 정말 편하게 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언니도 그러는게 싫은데 편하게 하려면 어쩔수 없다면서...
이 말을 들었을때 아직도 우리사회가 이렇다는게 참 충격이었는데..물론 사회적인 분위기의 개혁이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선배 언니처럼 이제는 여자들이 더 안일하게 여성의 지위(?)에 대처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여자들의 의식 자체가 더 문제가 아닌가...하는생각이요...
첫댓글 저도 공대쪽이라 여성교육에 대해 좀 관심이 많은 편인데요...얼마전에 취직한 선배언니말이 여자는 그냥 술자리에서 술이나 좀 따라주고 좀 웃어주고 과장님 비위만 잘 맞춰주면 회사생활 정말 편하게 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언니도 그러는게 싫은데 편하게 하려면 어쩔수 없다면서...
이 말을 들었을때 아직도 우리사회가 이렇다는게 참 충격이었는데..물론 사회적인 분위기의 개혁이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선배 언니처럼 이제는 여자들이 더 안일하게 여성의 지위(?)에 대처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여자들의 의식 자체가 더 문제가 아닌가...하는생각이요...
잘 읽었습니다...그런데,,시대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거라서 비교하기가 쫌 그렇긴 하네요..만약,,루소와 같은 시대의 우리 나라의 여성관이랑 비교를 했다면,,루소의 의견이 그렇게 여성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