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늑대
꼰대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시튼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시튼을 모른다. 그래서 파브르는 아냐고 물으니 파브르도 모른다고 했다. 세대차가 기하급수로 심화되고 있음을 다시 실감했다. 정말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나 같이 책으로 자란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에나 시튼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는 필독서에 해당했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동식물을 소개하는 더 좋은 책들도 많으니 모르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근데 아쉽다. 공통된 것이 자꾸 사라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늑대였다. 고양이가 여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반면, 상대적으로 개는 남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개와 늑대는 남자 사냥꾼들이 관심을 갖는 사냥 대상에 대해 같은 관심을 공유한다. 인간은 개를 선택했고 늑대와는 끝내 공존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개와 함께 늑대를 사냥했다.
생태학에서 많이 거론되는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군의 열두 달>에서 레오폴드는 늑대 사냥을 하다가 자신이 잡은 늑대의 죽어가는 눈동자에서 ‘맹렬하던 꺼져가는 녹색 불꽃’을 목격하고 회심을 경험한다. 이후 그는 땅의 권리와 야생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보다 한 세대 앞서 시튼은 뉴멕시코주 카롬포 황야에서 그 지역 목장들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늑대왕 로보와 3달에 걸친 대결을 펼친다. 결국 로보를 잡아 죽이게 되지만 로보의 개성에 매혹되고 품격에 감탄하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유년기 빨간모자와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악당으로 묘사되는 늑대에 대해 느꼈던 동정과 부당한 감정이 상기되면서 인간에 의해 모독받는 야생을 옹호하기 위한 작업에 더욱 몰두하며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미와자키 하야오는 <원령공주>에 나오는 자연을 수호하는 늑대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원령공주를 내세운다.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신성과 그에 따르는 자연의 원한과 복수, 그리고 균형회복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인간 앞에 자연은 슬프다.
늑대는 인간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지만, 인간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은 늑대를 증오하고 또 동경했다.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 젖으로 컸다는 전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하지만 근대의 늑대인간은 끝내 인간도 늑대도 될 수 없는 존재였다. 늑대와 인간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경계가 필요할 뿐이다.
늑대는 늑대고 인간은 인간이다. 생명의 고유 영역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함부로 침입해서는 안 되는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변경은 어디인가?
늑대개가 있었다. 티베트 여행 수미산 코라에서 길을 알려주며 한동안 동행했던 덩치 큰 하얀 개는 특이하게도 늑대 울음을 울었다. 사람에겐 순했지만 평원의 끝까지 퍼져나가는 포효는 분명 개의 것이 아니었다. 네팔의 룸비니에서 머물며 밤에 듣곤 하던 늑대들의 화답하는 울음소리도. 가까이 할 수 없지만 뭔가 외경해야할 대상을 상기시켰다.
분명 늑대는 인간과 공통의 먹이대상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기에 가까이 할 수 없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거리를 두고 공존하며 살아야할 존재다. 늑대가 무섭지만 매혹적이다.
꼰대의 슬픔이겠거니. 시튼이 쓴 야생 숲살이와 인디언 책을 자세히 읽고 싶어졌다.
자연의 문 앞에서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