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열리고 있는 구본숙 사진전 - 악산악수(樂山樂水)는 그녀의 지난해 전시회 주제였던 헤테로포니(Heterophony)와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의 작품에서 먼저 느낀 것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다. 여기에서의 동양이란 산수화를 의미하고 서양이란 서양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을 말한다. 구본숙 작가는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혹은 신비적인 것에서 나와서 ‘탈신비화’라는 작품의도를 비추기도 했지만 악산악수라는 전시제목 자체가 간단하고 쉬운 표현을 들자면 ‘음악인이 산과 물에서 노니는’ 모습을 담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바로 이 점이 작품들의 이해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해서 이 작품들의 구성에서 사람을 빼면 그대로 산수화로 봐도 될 정도이고 자연을 빼면 그대로 악기연주자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 동양과 서양의 성격을 만나게 함으로써 흔했던 것 같지만 결코 흔하지 않는 만남의 매력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한국의 산수화와 서양악기 연주자의 만남이다.
이 만남으로 인해 구 작가의 작품들에선 주관과 객관의 매력적인 경계감이 느껴진다. 동양의 산수화는 신비스럽고 악기연주자의 모습은 현실스럽다. 이 신비한 배경의 자연에 우리가 종종 만나는 연주자의 현실적인 등장이라는 조합은 흔했을 법 하지만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관과 객관의 경계라는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들을 통해 사진은 새삼 시간의 예술임을 느낄 수 있다. 뭉게구름이 바람과 함께 빨리 흘러가는 하늘, 모든 것들이 파릇파릇 피어 있고 윤택이 나는 식물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나는 강물, 그 속에서 차분히 자연을 음미하고 쉬고 있는 연주자들, 이 모든 것들은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고정’과 ‘매너리즘’에 익숙한 도시인들이 보기엔 변화의 흐름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자연 속에 온전히 있다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나 구 작가는 그 시간 중에서 찰나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또한 이 포착은 시간 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관한 것이어서 그 매력은 배가된다. 구 작가는 이 작품들의 장소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인 것 같다. 물이 흐르는 계곡의 자락, 병풍과도 같은 바위조각들이 배치된 강, 자연의 풍화를 통해 다듬어진 바위들과 산의 정상 언저리 등을 찾아가는 답사의 정성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또한 사진은 ‘빛’의 예술임을 느끼게 된다. 실제 작품에서도 요란스럽다고 할 정도로 밝은 분위기나 들뜬 연출은 없었을 것이나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와 맥락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분위기는 차분하다. 이는 사진을 찍었을 때의 빛에 후반작업을 통한 빛이 함께 한 것일테니, 이는 쉼, 더 나아가서 자연에서 느끼는 명상에 관한 주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호기심을 갖고 궁금하게 본 부분은 산수에서 거니는 연주자들의 모습에서, 연주하는 모습 자체를 많이 담지 않았을까 하는 사전의 느낌으로 작품을 일별했는데 실제로 작품들에서 연주하는 모습은 단 한 작품만 있었고 나머지는 쉼, 유유자적 혹은 자연을 느끼는 명상에 가까운 모습이어서 이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들어볼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대로 심기충전이 되는 시간일 것이다. 연주자들조차 도시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들과 함께 한 연주자들은 단순한 바캉스나 여행과는 달리 구 작가가 데리고 가서 포착한 멋진 곳에서 새로운 체험과 느낌을 지녔으리라 본다.
그러나 구 작가가 악산악수와 관련해서는 흥미를 계속 느끼고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번 작품들을 단계로 해서 다시 나아가서 연주하는 모습들을 더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연주자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이 하나로 보여지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모든 드라마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기승전결의 ‘기’를 이번 전시에서 본 것 같다. ‘기’가 이리 멋지니 ‘승전결’에선 어떻게 더 멋져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동양의 산수라는 분위기와 서양악기 연주자의 매력적인 만남을 보여주는 그 길을 멋지게 걸어가기 시작한 구본숙 작가의 현재와 미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