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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어린 시절 역을 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후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겉으로는 차갑지만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똑똑한 과학도 '구지원’ 역으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으로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그녀의 연기는 미처 열매를 맺을 기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 '이은주는 지금 뭐하나' 궁금증이 생겼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개봉되고 그 궁금증이 풀릴 때쯤 이젠 예전의 그녀가 아님을 다시 알렸다. 사랑에 적극적이고 감정에 솔직한 사랑스런 태희. 그 후로 이은주의 행보는 부쩍 빨라졌다. <연애소설> <하얀방> 그리고 <하늘정원>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알차게 채워졌다. 다음으로 출연한 <안녕! UFO>로 때늦은 찬사가 그녀에게 헌사되었고 <주홍글씨>에서 그게 결코 괜한 호들갑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형이 결혼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구. 형 없이는 살수 없다는 거" 원래 자기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떠나 보낸 후에야 그것이 생애 유일의 사랑임을 깨닫은 가희. 삶과 사랑을 향해 집착을 버렸건만 죽음의 문턱에서 속 모르고 작열하는 마지막 사랑. 애써 감정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집착의 또 다른 표현일 뿐. <주홍글씨>에서 이은주는 다시 한번 사랑의 심연에 빠져서 마지막 남은 숨결을 아낌없이 토해냈다. 비련의 여주인공 가희, <주홍글씨>에서 이은주는 그간 자신이 장기를 발휘했던 이미지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기존의 청순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버리고, 도도하고 당당하지만 내면에 깊은 고독을 품고 있는 ‘가희’로 분한 이은주는 <주홍글씨>에서 별 이견 없이 뛰어난 연기를 펼친다. 관대한 시선을 거둬 들인다 해도 그녀는 충분히 잘 했고 어디 크게 틀린 데도 없었다. “(가희 집 촬영씬 때) 일주일을 거의 못 자고 못 먹으면서 정말 가희가 돼버렸어요. 배우 이은주라기 보다는 진짜 가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매일 같이 기도한 탓일까요. 촬영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은 지금도 가희를 연기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내 안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가희처럼 목숨이 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은주와 가희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많다. 둘이 요조숙녀는 되지 못할 거란 점에서 서로 통한다는 이은주의 말에 일단 수긍. 둘 다 권태를 가장 못 견딘다는 다음 지적에도 할 수 없이 긍정. 대신 이은주는 가희가 감상적인 반면에 자신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시나마 살아볼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만큼 <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힘들었어요. 나와 비슷한 점이 있긴 하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나 많은 가희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마음이 아파 왔거든요.” 영화 속에서 다층적인 성격으로 표현된 가희는 이은주라는 적임자를 만나서 비로소 그 미세한 결을 드러낸다. 다양한 장르를 호기롭게 넘나드는 영화처럼 이은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일궈온 다양한 연기들의 최고치들을 큰 맘 먹고 선심 쓰듯 풀어 헤친다. 이은주는 최근에 내놓은 작품들에서 연기의 자유로움을 체득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아직도 가닿지 못한 연기의 영역이 있기라도 하듯이 새로운 도전에 있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배역에 몰입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이은주는 이제 막 배우의 초입길에 들어선 신인의 ‘안달’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이전 작품들이 지금의 ‘배우 이은주’를 있게 해 준 받침대이었다면, <주홍글씨>는 ‘저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연기를 하는 동안 가희의 진심이 느껴져서 늘 가슴이 아렸는데 관객들이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 정도의 연기는 했나고요. 그건 직접 보시면 아실수 있을 거예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