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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韓日) 역사 여행
-<진해의 벚꽃> 다케쿠니 도모야스(竹國友康) / 이애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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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봄이면 도시 전체를 화려하게 벚꽃으로 수놓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그렇지만 난 진해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아름다운 도시를 방문하지 못한 채 소문으로만 혹은 TV 뉴스로만 간간히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진해를 우연한 기회에 방문해서 알게 된 어느 일본 지식인이 본국으로 돌아가 무려 7년에 걸쳐 자료조사와 각종 탐방을 통해 나온 결과물인 ‘진해의 벚꽃’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이즈음 난 아놀드 J 토인비 선생의 ‘역사의 연구’라는 지금은 나오지 않는 세로쓰기 판의 총 13권으로 묶여진 역사 전집을 읽어내느라 무척 힘들어 하는 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연구 자료의 방대함에 먼저 기가 꺽이는 데다 전 세계를 압도하는 서구문명의 대세론에 점차 위축되어가는 나머지 잠시라도 뭔가 반전을 꾀할 책은 없을까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에 이 책 ‘진해의 벚꽃’을 발견했던 것이다. 토인비 선생의 저서에는 거의 잊혀진 채 그 문명의 흔적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같은 이 한반도의 삶에 대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아주 일부분일 수도 있는 남단에 위치한 ‘진해’에 대한 역사보고서를 어느 일본인이 지었다는 특별한 점을 먼저 눈여겨보고, 그의 시각에서 본 역사보고서는 어떻게 서술되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전에는 대충 여겼던 진해의 역사에 대해 진정 본격적으로 알고 싶은 호기심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진해는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도록 건설한 계획 도시였던 것이다. 대륙 침략과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 군부가 야심차게 계획-처음에는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진수부’로 아시아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군항으로서 설계, 공사를 시작했으나 일본 내부의 사정으로 공사가 6년째 이르던 무렵 갑자기 축소되어 군함을 수리하고 잠시 정박하며 필요한 선내 보급을 받게 되는 ‘요항부’로 축소-하고 밀어붙인 전쟁 수행용 전진기지인 셈이다. 당연히 진해는 과거 로마제정시대부터 제국주의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발달되어온 군사도시 계획의 표본을 따르게 되고 진해의 전 영역은 요새로서 일사불란하게 배열, 배치된 전형적인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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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이번에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왜구에 의한 해적선 침입과 같은 소소한 침략을 제외한다면 이 땅은 이웃나라인 일본으로부터 긴 시간적인 간격(약 300년)을 두고 2번에 걸쳐 큰 침략을 당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임진-정유재란(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구한말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에 따른 강제합병이다.
그런 맥락에서 진해는 모두 두 번에 걸쳐서 역시 일본의 대 한반도 침탈의 교두보로서의 그 역할이 주어졌다. 일본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곧 이은 정유재란 시기에 한반도 이남을 영구히 식민화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에 경상도와 전라도 남단 곳곳에 일본식 왜성을 축조하게 되는데 진해에는 일본과 가까울 뿐 아니라 해전상의 전략적 요충지로 잘 들어맞는 적임지로서 당시 일본 제1군의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머물렀던 곳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일본이 대륙을 통한 대동아공영이라는 허울 아래 제국주의의 영역을 넓혀가던 중 제해권 선점이라는 목표와 잘 맞아떨어지는 진해를 또 다시 주목하고 이번에는 아예 진해시 전체를 해군 전진기지로서 재개발하여 군항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통탄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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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시는 당시 조선의 대부분의 지역이 모두 그러했지만 일본이 전략적으로 도시 전체를 재개발하여 일본화했던 전형적인 도시로 공사 초기에 지역주민인 진해 원주민들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공사시작부터 일본 본토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의 체계적 입주와 제반 군사 시설이 제자리를 잡고부터는 거의 일본화된 삶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제국주의적 일본의 일상이 본토와 다름없이 펼쳐져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당시로서는 압도적인 군사 시설과 새로 개발된 방사형 도로와 신시가지, 일본식 교육기관과 병원 등의 인프라 시설들은 거의 외진 시골이나 다름없었던 진해 원주민으로서는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서양식 문물의 이국적이고도 거대한 면모에 상당히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는 신도시 진해에 많은 나무를 식수했는데 그 중에 벚꽃이 다량 심어졌고, 그 후로도 군국주의 일본(해군의 휘장과 관련되어)의 꽃이라 명명되며 순차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서 추가로 다량 심어져 오늘날의 진해를 벚꽃의 도시로 만든 유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벚꽃은 한 차례 수난을 겪게 되는데 일본 제국주의 패망 후 진해시의 주민들은 이 꽃을 ‘사쿠라’라는 불온한 의미를 부여하며 대량 베어버렸다. 그러다 뒤에 다시 진해를 세계적인 벚꽃의 도시로 만들어 관광도시화하자는 정부와 시의 공통된 방침이 정해져 다시 대대적인 식수가 이루어짐에 따라 오늘날의 벚꽃 축제의 명소로 진해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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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일본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과 주변 어른들로부터 익히 체감한 이야기들로 많은 부분에 있어 어른 못지않은 식견과 주관이 잡힌 채 자랐다. 그 후로 많은 서적과 교양을 통한 정신적 성장이 있었음에도 나뿐 아니라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비춰지는 일본에 대한 선입견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제 나름으로는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처럼 이웃 일본과 미래를 열어가는 동반자로서 과거를 일체 청산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여 선린교류로 발전 상생해 나가야 한다고 주절거리며 일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뿌리깊이 몸으로 체득되어 기억되어온 역사의 단면들은 틈만 나면 저감없이 본색을 드러내며 눈을 부라리거나 심지어는 삿대질로 이어지는 것이다. 축구 한일전은 역사의 농축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라면서 얻은 양국에 관한 각종 폭 넒은 역사적 지식과 최근 들어 급속히 유입되어 들어오고 있는 일본의 문학을 비롯한 예술, 대중 문화, 스포츠 등과 같은 여러 분야의 문화 교류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난 서구 근대화에 있어서 우리보다 이백 년이나 앞선 일본이라는 나라에 축적된 서구 문명의 문화적 저력과 그 깊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난 일본의 어느 서적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 일본이 아직까지 서구 사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남았습니까?
라는 일본 어느 학자가 한 말이다. 이 자신감과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책 ‘진해의 벚꽃’을 쓴 작가 다케쿠니 도모야스 선생을 보라. 책의 전편에 흐르는 그의 일본인적인 심증과 문맥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은 잠시 보류해 두자. 그러나 이 책의 전체에 흐르는 그의 자료에 대한 성실함과 꼼꼼한 확인, 그리고 양국간의 현안에 대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그의 냉철함.
그것은 시바 료타로라는 근대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가 러일 전쟁중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싸우기 위해 일본의 전 함대가 진해를 중심으로한 해역에서 전쟁준비를 하는 장면에 관해서까지 조사를 미치는데, 소설에는 진해에 그때까지 일본의 군사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 것을 저자는 일본 정부의 고문서로부터 자료를 확보해 그 허구성을 지적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며-진정 자신의 조국인 일본을 사랑하고 전 인류적 평화공존을 위한 개인적 신념에 입각해서겠지만-책에는 일본 군벌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야욕을 일본 국민이 사랑하는 작가가 숨겼노라고 거침없이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케쿠니 선생은 한국에 남아 있는 역사적 일본 유물을 그대로 남겨 후세에 교훈을 남기자는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지만 편협한 한일 양국민은 그러한 선생의 높은 뜻보다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일본군이 훼손하고, 해방 후 한국에 남은 각종 일본의 승전비와 자료들을 한국민이 파괴하며 지금까지도 과거사에 대해 서로 간에 한 치도 양보 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양국 간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비탄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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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내게 될 것이다.
(존 F 케네디)
지금 진해의 여러 공무원과 향토사학자는 과거를 떠나 현재를 중시하며 미래지향적인 자세에 입각해 진해의 각종 역사적 유물을 보존하자는 취지가 활발하며 일본에서도 그런 취지하에 일본의 해전 승전비나 왜성 등 유물을 보존해달라는 요청을 계속 타진하고 있는 것 같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과거를 교훈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삼는 것 보다는 과거에 얽매인 채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스스로 감기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역사는 우리들의 살아온 모습이다. 인류가 그 생존을 위해 적나라하게 살아온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어리석은 인류가 마침내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유지하게 된 과정이 핵무기의 위협이 아니라, 토인비 선생의 이론처럼 태어난 인간은 성장하는 것처럼 문명도 성장하듯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 인류는 지나간 암울한 역사에서 살 길을 찾아 현명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저자인 다케쿠니 선생도 책 내용 안에서 벚꽃의 원산지를 놓고 내셔널리즘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 아니라 꽃이 주는 그 평화를 서로 지향할 것이며 상호간에 상생할 수 있도록 꾸준히 마음을 열고 교류해 나가는 가운데 양국의 거리를 좁혀나가며 상생하자는 취지를 계속해서 밝히고 있다.
역사에서 영원한 진리는 없으며 모두 가설에 불과한 것으로 중요한 것은 그 진리를 밝히는 노정에 있지 않은가.
첫댓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진해의 벚꽃★ 📚을 읽지 않아도
📚에 담겨진 내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마음 속 깊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세라님, 반갑습니다. 문학을 사랑하시는 마음의 향기가 글을 쓰는 이곳까지 전해옵니다. 자주 왕림하셔서 좋은 글,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쉽지 않네요. 직접 뵐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날 선물로 주신 빵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애옥입니다. 회원 등급을 해 주셔 선생님의 글을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현호선생님에게도 이 페이지를 소개하자,
당장 클릭하여 읽은 후,
"유려하고 깊은 사색이 담긴 감상문"이라며,
(나에게) 코멘트를 보내왔습니다.
다음에 천안에 가면 또 연락드릴게요.
진해(근처)에 오실 일이 있음 연락 주세요.
'진해의 벚꽃' 독후감으로 저의 번역서를
전국에 알려주시는 정병철선생님에게 진해를
안내하고 진해의 맛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이현호 선생님 "MBC경남아 사랑해 초대석"에 출현하여 진해근대문화역사길의 취지와 해설사 를 하게된
배경에 대한 방송내용 잘 봤습니다.멋지십니다. 저는 오래전에 방송내용 봤었는데 정병철님과도 잘 아시는분이라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