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일지(2024.07.04~07.25)*
<7월 23일 화요일>
책과 꿈 이야기
소설을 읽다보면 신기한 일들이 주변에 생겨요.
-소설가 김영하의 천안시 교양강좌 제목
1
책과 꿈 이야기
간밤에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반갑게 오셔서 나를 보고 웃는다. 운동장에는 새롭게 깐 아스팔트가 평탄하지 않다. 대신 작은 파도치듯 굴곡이 심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사무실은 별도로 위치해 있었다. 사무실 구석의 내가 앉을 책상 옆에는 체육수업에 쓰이는 바닥 매트가 젖은 채 깔려있다. 사무실은 컨테이너 모양으로 좌우로 길다. 누군가 찾아왔다. 자신을 건축주라 해서 내가 ‘건설’을 맡고 있고, 공무를 맡은 직원을 소개한다. (꿈은 이보다 좀 더 내용을 가진 채 길지만 꿈의 중간 중간이 생각나지 않아 앞뒤가 다소 맞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는 인근 도시에 건물을 새로 짓는데 감리를 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문의였다. 협회에 올린 자료를 보니 내가 사는 집이 가까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실은 난 올 2월에 어느 도시의 사옥을 짓는 감리감독 업무를 종료하고 5개월째 집에 있는 중이었다. 물론 아내의 등쌀이 따갑기는 했지만 무료하지는 않았다. 매월 기한을 정해두고 일정량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매일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일상을 규칙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취직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취향에 맞는 독서습관과 글쓰기를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이뤄나감과 취직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듯한 예감이 들어 기분이 묘하다. 만약 취직이 된다면 독서일지는 당분간(약 20개월) 못 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한 달 전인가 집 앞 큰 도로에 있는 육교를 건너려고 길을 걷다 육교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인기 소설가 K씨를 시청 강당에 강사로 초빙해 듣는 교양강좌 소개였다. 제목은 이러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생기는 신기한 일들
제목이 정확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에 프린터기가 없어서 어찌 어찌 찾아간 PC방 주인여자(전에 자주 이용했던 PC방은 자취가 없고 헬스장이 대신 들어서는 바람에)의 남편도 전북 김제에서 감리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사에 인연이란…….
2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정영란 옮김
작품 속 사제의 고뇌
-색정은 생명의 원천 바로 그곳이다. 창조력이 없는 색정은 인류에게 부여된 가냘픈 약속을 배아 때부터 더럽힐 뿐이다. 색정은 아마도 우리 인류가 가진 온갖 흠집의 근원이자 원리일 것이다.
-위선이 벗겨져 나간 쾌락의 면모는 바로 고뇌의 면모다.
-아무리 어렸지만 나는 술에 취한 것과 다른 것에 취한 것을 정말 잘 구별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다른 것에 취한 것만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것은 교만이 많은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여성의 얼굴을 들여다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중략)… 오늘은 호기심이 더 우세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호기심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건 마침내 엄폐물 없이 다가오는 적을 대면하러 참호 밖으로 나오는 모험을 감수하는 병사의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깊은 진정성을 결코 삶에 걸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략)…그것을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앞뒤가 분명하고 명백해진다. 그러면……? 그러면 사회가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인공 손과 발을 죽음으로 앗기고 나면,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기네들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어버렸던 모습, 발육부전의 흉측한 괴물, 왜소증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이상은 작품 내용 중에서 발췌)
사람은 저마다 고뇌가 있는 법이다. 이 작품 속 사제는 자신이 맡고 있는 본당 신자들로 인한 고뇌로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사제직을 내려놓을 것도 고민하고 있다. ‘나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고집스럽게……’부분은 고뇌로 인한 위궤양으로 고생하면서도 치료받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소증에 갇힌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 보인다. 인간은 신이든 사상이든 철학이든 강력한 믿음이나 신념으로 거인같이 우뚝 솟은 영혼으로 세계를 굽어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그 의식부터 왜소해지며 눈앞의 자잘한 현실에만 매달려 광활한 우주부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내면까지 아무 것도 보려들지 않고 오로지 고개를 자신이 걸어가는 땅으로만 처박은 채 양어깨가 축 처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