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을 주의하라!
마 16:5-12
오늘 성경의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제자들과 함께 한 곳에서 사역을 마치시고 호수를 건너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먹을 떡을 미리 준비하고 갔었어야 했는데 잊어버리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떡 때문에 염려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마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떡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왜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서로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먹을 떡 때문에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염려하는 것을 통하여 교훈을 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이러한 표적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야 했던 것은 떡이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영적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떡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아직도 육에 속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믿음과 성령님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첫째 : 바리새인의 누룩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12:1)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B.C200년 경부터 외세(헬레니즘)의 타락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학자계급 사이에서 생겨나 학자들에 의해 해석된 율법의 엄격한 실천에 열중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누룩”이란 말은 마차(מָצַה 주메 ζυμη)인데 발효시키다, 변질 시기다, 부패시키다, 이다.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이들의 가르침과 말을 조심하라는 말씀이고 그들의 외식이라고 했다.
외식하는 자들은 거짓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언행과 가르침에 주의 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책잡으려 하는 자들이므로 제자들의 가르침을 책잡아 말씀을 변질 시키고 또한 책잡으려 하기 때문에 삼가 하라고 말씀했다.
삼가하라는 말은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그들에게 책잡히지 말라는 말씀이고 그들의 가르침을 동요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헤롯의 누룩을 삼가라” 했다. 이 말씀은 이들의 가르침과 신앙생활을 말한다.
그러면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죽은 신앙이다.
율법을 더하여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만들어 그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 에 선한 공적을 쌓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리치고 가르치기만 하고 자기들은 행하지 아니하는 외식하는 신앙이다.
둘째 : 사두개인과 헤롯의 누룩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마16:6)
사두개인은 다윗,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적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 유래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그들은 대제사장을 지지하여 권력자들과 귀족계층에 속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세속적, 현세적 삶을 살았으며 부활, 천사,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종교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삼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받아들이면 삶 전체는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감하고 현실적인 신앙으로 하락 시켰다.
성경도 모세 오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창세기 출애급,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메시야 예언인 구약 역사서자 선지서나 예언서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세도 없다. 이들은 부활도 믿지 않고 내세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가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무서운 것이 세속주의 신앙과 외식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의 신앙을 육신적인 생활의 도구로 삼는 것이며 기도도 사람 듣기 대상으로 하는 것과 구제 봉사도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곳들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신앙을 타락시킨다.
사두개인들의 신앙이 철저하게 외식과 세속주의에 변질되어 하나님과 단절되어 경건의 모양은 있으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로 변질되어 버렸다.
셋째 : 물질 만능주의를 조심하라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그들에게 없더라”(막8:14)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막8:16)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져온 떡이 변질 되지 않도록 잘 간수하라는 말씀으로 오해하였다.
마가단에서 급히 떠나오면서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어제 먹고 남은 떡 한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식사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서로 수군수군 의논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의논하느냐” 했다.
(마16:8-11)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 하라 하시니”
“의논하다”는 말은 디에로기존타(διελογιζοντα) 작은 소리로 숙덕거리다.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염려 하면서 서로 의논 한 것이다.
그 것을 아시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했다.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 하신다. 믿음이 적은 자라는 말은 믿음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알곡으로 성숙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하신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으므로 수군거리느냐”
그리스도께서는 5000명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 거둔 사실과 사천 병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 거둔 사건을 생각하고 먹을 것 염려는 주님께 맡기고 누룩을 주의 하라는 말씀을 새겨들으라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