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청으로부터 배우고자 한 박제가
20104414 가족복지학과 강주현
(1)북학의란?
1778년(정조 2) 실학자 박제가(朴齊家)가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와서 그 견문한 바를 쓴 책. 2권 1책. 사본. ‘북학의’에서 ‘북학’이란 ≪맹자≫에 나온 말로 중국을 선진 문명국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청년 시절부터 시인으로서도 유명해 연경(燕京)에까지 명성을 날렸다. 채제공(蔡濟恭)의 호의적인 배려로 연경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동안 자신이 연구한 것을 실제로 관찰,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3개월의 청나라 여행 및 1개월여의 연경 시찰로 그 동안 자신이 연구한 것과 연경에서 직접 본 경험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더해 쓴 북학론이 바로 이 책이다. ‘북학의’라 하면 북학파를 상기하게 되는데, 북학파의 북학사상을 가장 철저하고도 과단성 있게 대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학파라는 이름도 ≪북학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내외편 각 1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내편은 거(車)·선(船)·성(城)·벽(?)·와(瓦)·옹(甕)·단(簞)·궁실(宮室)·창호(窓戶)·계체(階?)·도로(道路)·교량(橋梁)·축목(畜牧)·우(牛)·마(馬)·여(驢)·안(鞍)·조(槽)·시정(市井)·상고(商賈)·은(銀)·전(錢)·철(鐵)·재목(材木)·여복(女服)·장희(場戱)·한어(漢語)·역(譯)·약(藥)·장(醬)·인(印)·전(氈)·당보(塘報)·지(紙)·궁(弓)·총시(銃矢)·척(尺)·문방지구(文房之具)·고동서화(古董書?) 등 30항목으로 되어 있다. 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론을 제시해 현실의 문화와 경제 생활 전반을 개선하려 하였다. 외편은 전(田)·분(糞)·상과(桑菓)·농잠총론(農蠶總論)·과거론(科擧論)·북학변(北學辨)·관론(官論)·녹제(祿制)·재부론(財賦論)·통강남절강상박의(通江南浙江商舶議)·병론(兵論)·장론(葬論)·존주론(尊周論)·오행골진지의(五行汨陳之義)·번지허행(樊遲許行)·기천영명본어역농(祈天永命本於力農)·재부론(財賦論) 등 17항목의 논설을 개진하였다. 상공업과 농경 생활에 관한 기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기본 골격은 중국을 본받아서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서 놀고 먹는 유식양반의 처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또한 상공업의 발전과 관련해 농경기술·농업경영을 개선함으로써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민부(民富)를 증대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 풍조로 보아 청나라인 중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과단성 있고 혁명적인 사상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는 정치적인 대외정책으로 말미암아 청나라에 사대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청나라를 멸시하는 풍조가 병자호란 이후 도도한 대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풍조의 두터운 벽에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받게 될 박해를 무릅쓰고 구국·구빈(救貧)의 길은 오직 북학밖에 없다는 소신에서 역설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소신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이다. 그는 실학자들마저도 천편일률적이었던 금사론(禁奢論)을 배격하고 용사론(容奢論)을 주장하였다. 즉, 민중의 수요억제·절검이 경제 안정에 필요하다는 통념을 물리치고 생산 확충에 따른 충분한 공급이 유통 질서를 원활하게 한다는 경제관에 입각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 확충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선진 문물의 습득과 보급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한편 시대착오적인 북벌론을 무릅쓰고 북학론을 외쳤으며, 과학 기술 교육을 위해서는 서양의 학문도 배워야 할 것임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한 사상이 담긴 ≪북학의≫는 구국의 명론인 동시에 당시 우리나라 도시와 농촌의 의식주에 관한 귀중하고 솔직한 기록으로서도 중요하다. 이는 그 시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만년의 정약용(丁若鏞)의 논설과 더불어 전근대에 있어서 가장 선진적이요 진보적인 사상이 담긴 불후의 고전적 명저이다. 나아가 우리가 계승, 선양해야 할 얼이 서려 있는 고귀한 사상적 유산이다. ≪북학의≫의 내외편 가운데 3분의 1 정도의 내용을 간추려 첨삭을 가하고 순서를 바꾸어 올린 ≪진소본북학의 進疏本北學議≫가 있다. 이는 그가 1798년(정조 22)에 경기도 영평현령으로 있을 때 농서(農書)를 구하는 임금의 요청에 따라 응지상소(應旨上疏)의 형식으로 바친 것이다. 따라서 그 논지는 ≪북학의≫ 내외편과 거의 같으나 우선 분량이 현격히 다르므로 두 종류를 엄격하게 분간해야 할 것이다. ≪북학의≫는 광복 전에는 간행되지 않다가 광복 직후에 ≪진소본북학의≫의 번역문만이 출판되었다. 그 뒤 1962년에 이르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의 문집과 함께 ≪북학의≫가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고, 1971년에는 ≪북학의≫의 내외편이 을유문고본으로 전문이 번역되었다.
(2) 박제가란 누구인가?
18세기 후반기의 대표적인 조선 실학자. 호는 초정(楚亭).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전통적인 양반 교육을 받기는 했으나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으므로 누구보다도 국내 상업과 외국 무역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따라서 그의 사상도 당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도시 상공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기 실학, 이용후생학파와 시기를 같이한다. 그리하여 그는 반계(磻溪) 성호(星湖) 등의 토지경제사상을 지양하고 선진적인 청(淸)의 문물을 받아들여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상공업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는 수레(車)를 쓸 수 있도록 길을 내어야 하고 화폐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중상주의적 국가관을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 『북학의』(北學議)가 있다.
(3) 북학의의 가치와 의의
북학의는 3가지로 분류하면 첫째, 북학의에 나타난 경세관과 경제관에서는 백성들의 생활을 낱낱이 드러내면서 위정자의 각성을 촉구하였고, 사농공상들의 일에 대해 구체적인 이용후생 방안들을 제시하여 진정한 선비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한다. 둘째, 용사론을 통해 보여주는 금사론의 수정 과정과 북학의 논리는 전대, 당대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변하는 시대 분위기를 간파하고 제시한 적극적인 대응방안이었다. 그리고 박제가는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해 구조적으로 궁핍해질 수밖에 없는 조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검약이라는 도덕적 기준으로 경제를 이끌려 하기 보다는 소비를 진작시키고 생산을 독려하여 활발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박제가는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해 구조적으로 궁핍해질 수밖에 없는 조선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검약이라는 도덕적 기준으로 경제를 이끌려 하기 보다는 소비를 진작시키고 생산을 독려하여 활발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그리고 박제가가 활동할 당시에는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박제가가 당시 산업혁명에 대해서 상세히 알았을 리는 없지만 이런 혁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면에서 북학파가 실제로 조선 정치에서 대두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매우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필체와 실용적인 제안들을 한 박제가를 비롯한 이용후생파가 집권하였다면 조선이 근대 세계열강들에 뒤처져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명분과 도덕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에서 실리와 이익을 주장한 박제가를 비롯한 북학파의 행동은 자못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의 시각이 청에만 맞춰져서 청국의 선진문물만 칭송하고 조선에 그 점을 어떻게 변용해 적용시켜야 할 지에 대한 의견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당대의 한계를 뛰어넘고 조선의 발전을 도모한 열정적인 학자로서의 그의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내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앞장섰던 소현세자와 더불어 박제가를 비롯한 북학파 역시 조선의 주축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현대에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고정관념이나 명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나타내야겠다.
(4)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북학의 [北學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박제가 [朴齊家]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박제가의 북학사상 연구: 북학의를 중심으로, 김인숙,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전공. 1994
북학의 [北學議] - 열린 사회를 꿈꾼 사회사상서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9.18,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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