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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21. 수요일 맑음
치산계곡 팔공폭포 및 진불사<숲과문화반산행>
오늘 산행에 동참하는 전체인원은 12명이었다. 남자 5명 여성이 7명이다. 자동차 2대가 10명을 태우고 동양고전연구소에서 출발하고 손수룡 선생이 2사람을 태우고 성서 쪽에서 출발하여 치산계곡 수도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9시30분 동양고전 앞에서 출발하여 팔공IC를 거쳐 청통.와촌 IC로 내려 신령을 거쳐 치산계곡 수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40분이 다된 시간 차 세대가 다모였다.
청명한 오월, 노천명의 “푸른 오월”처럼 초록의 나뭇가지가 생명의 기쁨으로 뿜어내는 향기를 만끽하면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이 주중이라 산행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올라가는 길에는 우리뿐으로 산 전체를 우리만이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깨끗하고 맑은 계곡의 물소리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자동차가 다니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팔공폭포 안내판이 붙은 쪽의 소로로 접어들어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폭포관람대 앞에 정자도 있고 관람대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대 앞 쪽으로는 밧줄로 폭포가까이 닦아가지 못하도록 안전조치를 해놓았다. 바위로 만들어 놓은 미끄럼대처럼 적당한 높이로 삼단으로 굽이쳐 내리는 꽤 수량이 많은 폭포수가 계곡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골짜기를 불어오는 부드러운 5월의 훈풍과 양쪽 산허리를 감싸 안고 싱싱한 푸른잎이 햇볕에 빛나고 있는 활엽수림의 속삭임이 감미로운 초여름을 예찬하는 노래처럼 느껴졌다.
위쪽에 새로 만들어 놓은 철제 다리를 마다하고 “징검다리건너기“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윤영희 선생
함박꽃
층층나무꽃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화곡암선생이 배낭 속에 넣고 가지고 오던 수박을 내려온 길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계곡 물 속에 보관해 놓기로 했다. 미끄러운 경사가 심한 언덕아래로 내려가 바위사이의 우묵하게 패인 물속에 떠내려가지 안도록 잘 간수해놓고 진불암으로 향했다. 2년 전보다 길이 많이 좋아져서 올라가기에 편했다. 길 가에는 함박꽃나무가 작은 애기 주먹만 한 흰 꽃봉오리를 달고 넓은 잎을 너울거리고 있다. 1980년에 김일성이 진달래대신 이 꽃을 북한의 국화로 지정한 꽃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산속 계곡 주변에 잘 자라고 있는 함박꽃나무는 꽃봉오리가 아래로 숙이고 다소곧이 피는 것이 수줍은 새 색시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꽃이다.
팔공폭포
차한근, 이영애, 김명화, 조인숙, 이영환, 윤영희, 이석임, 장세후, 손수룡, 김성희, 김주영
조금 올라가다가 하얀 꽃이 줄로 이어진 것처럼 피어있는 쪽동백를 만났다. 때죽나무와 같은 물푸레나무속으로 꽃모양도 매우 비슷하지만 한 나무에 피는 꽃수가 적고 나뭇잎도 때죽나무 보다 작은 편이여서 구별하기가 어렵지 않다. 길섶에 노랗꽃을 귀엽게 피우고 있는 일년초를 조인숙선생 “애기똥풀”이라고 하고 약용으로 그리고 염색재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계곡을 건너가는 철제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는데 중간이 흔들거리게 하여 장난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다리 바로 아래 계곡에는 상당히 키가 큰 쪽동백나무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있고 다리 건너 나오는 곳에 개회나무가 하얀 꽃 덩이를 가지에 달고 무거워 힘들어 하고 있는 표정이다. 무슨 나무인지 몰라서 가지고 간 수목도감을 찾아보니 개회나무다. 개회나무는 수수꽃다리, 라이락과 같은 속으로 꽃모양도 정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꽃수가 훨씬 많아 덩이채 달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키가 낮은 관목에 피는 꽃이다.
팔공폭포 설명문을 여기에 옮긴다.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 소재 수도사에서 계곡을 따라 약 1.5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명 “치산폭포”라고도 한다. 팔공산 남쪽과 서쪽으로부터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일대의 원시림 지대에서 흘러내리는 이 폭포는 3단으로 총 연장 60m 높이 30m, 폭 20m 정도로 팔공산에 산재해 있는 폭포가운데 가장 낙차가 크고 낙수물이 풍부하며 계곡의 맑음 물과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좋다.
쪽동백
개회나무(물푸레나무과로 라이락과 같은 과에 속한다)
애기똥풀
산길의 해발이 상당이 높아지면서 나무수관 사이사이로 하얀꽃을 가지마다 층층이 달고 있는 나무가 여러곳에서 나타났다. 층층나무이다. 긴 가지 끝마다 크지 않은 꽃들이 촘촘히 하늘을 보고 피어 있어서 깨끗하고 단아한 모습이 고등학교 여학생처럼 청초해 보기에 좋았다. 주변을 보니 한 두 나무가 아니고 무리져 자라고 있다. 이들은 한 가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의 가계분석을 잘 할 수 만 있다면 숲속에서 나무와 나무의 대화도 들을 수 있게 될 것인데? 그러면 어디가 아픈지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등 등 식물세계의 좋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흥청에 가면 작물을 재배하는데 클래식 음악도 틀어주고 뽕작도 틀어주면서 식물의 생육과정을 살펴보면 음악이 없을 때와는 다른 보다 좋은 성장을 보인다고 들었다. 이러한 연구결과 보다 많은 정보들을 말 못하는 식물에서 얻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곳의 층층나무 집단은 키가 15-20m가 넘는 대경목들도 적지 않다. 싱그러운 오월의 푸근한 바람을 받아 너울거리고 있는 층층나무 가지 끝에 흰꽃들이 "백조의 호수" 발레의 춤사위을 보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산딸나무꽃
길섶에 비목의 작은 나무들이 보이고 산딸나무의 하얀꽃을 보았다. 꽃잎처럼 하얀 것은 꽃받침이 변한 것이고 가운데 딸기처럼 몽실몽실 나와있는 둥근 것이 꽃들이 모여 있는 부분으로 보기에 부처님의 머리같다고 하여 일본이름은 “야마보우시(산 스님)”이라고 하고 우리는 딸기를 닮았다고 하여 산딸나무라고 부른다. 최근에 이나무는 조경수로 개발이 되어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나무도 개체간에 차이가 많아 꽃이 많이 피는 것도 있고 꽃이 거의 피지 않는 것도 있어서 육종을 하여 꽃이 많이 피는 것을 심어주면 보다 아름다운 가로수로 활용할 수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까지는 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쉽게 올라간다. 여기서 널직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한보따리 싸가지고 온 참외, 방울도마도 등을 나누어 먹고 한참을 쉬었다.
진불암을 얼마 나두고 두 개의 작은 부도가 나왔다. 부도 앞에는 “옴메니“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상당히 오래된 부도를 보니 진불암의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주변에 작은 비목나무가 서있고 저 만큼 앞쪽 계곡에는 직경이 10cm정도가 넘을 것 같은 상당히 큰 비목이 서있다. 역시 비목을 물을 좋아해서 주로 계곡 주변에 많이 나타나는 나무이다. 꽃이 보이지 않아 숫나무인가?
진불암 800m앞에서 휴식
나무아비타불(음각으로 잘 세긴 글자라고 이영환선생말씀)
부도탑 앞에 세워놓은 "옴마니반메흠"
진불암 입구에 느티나무
마지막 200m여 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니 앞이 확트이고 전망이 좋은 곳에 진불암이 나타났다. 입구에는 수 백년은 능히 되었을 것같은 느티나무가 서있고 그 옆으로 난 작은 길섶에는 채전밭이 가꾸어져있다. 진불암 바위담아래 금낭화 꽃이 작은 촞불을 거꾸로 메달아 놓은 모양으로 아름답게 피어 있다.
진불암 앞 마당에 있는 돌로된 식탁에서 즐거운 김밥으로 점심을 시작하려고 준비중이다.
시간이 12시45분 수도사에서 진불암까지 2.7km라고 하는데 쉬면서 오긴 했으나 2시간이 넘은 시간이 걸렸다. 입구에 있는 진불사 설명 간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眞佛寺
팔공산의 제일봉인 비로봉아래 자리 잡은 진불암은 신라 진평왕 623년에 창건되어 무수히 많은 先知識人께서 이곳에서 정진하시어 도를 이루시고 관세음보살님께서 현신하신 도량으로 현존건물은 고려 문종때 환암혼수국사께서 중건하시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일설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찰로서 후면에는 청정법신 비로봉, 전면에는 대자대비하신 관음봉, 우측에는 실행제일 보현봉, 좌측에는 지혜제일인 문수사리봉으로 사방이 보살님들로서 장엄되어 있고 석가세존이 증명하여 진불이 중앙으로 장엄되어온 수려한 성지로서 팔공산의 유일한 고찰이다.
진불암 앞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비로봉을 뒤로 하여 전면은 관음봉 오른쪽으로 보현봉 왼쪽으로는 문수사리봉이 둘러싸고 있어 이곳이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한다. 앞 마당에는 돌로 쌓아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좁은 곳에 천남성, 불두화, 조금 떨어진 동편 끝부분에는 상당히 수령이 될 것같은 함박꽃나무에는 어린에 주먹만큼 큰 하얀 함박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있고 바로 곁에는 겹벚꽃나무에 아직 몇 개인가 마지막 철지난 꽃송이를 달고 있는 모습이 내년 시험을 기다리고 있는 삼수생처럼 처량해 보였다.
천남성
불두화
금낭화
진불암 동쪽에 있는 함박꾳나무
느티나무 옆에 있는 디딜방아 절구통
바람에 멀리 날아갈 채비를 한 민들레 종자
우리의 인생은 한조각 구름이런가?(小雲堂의 주련)
점심을 마치고 봉다리 커피도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그리고 그동안 내놓지 않았던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져 나왔다. 언젠가 우리주변의 생활형태가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급격이 바뀌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식이 이식놈 삼식세끼 이야길 오래된 버전이지만 남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터 어쩔 수 없는 노후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화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선생과 나이가 70이 넘은 남성은 성이 중성이라고 하니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있을 런지?
오늘 김밥을 제공해주신 김명화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다들 대구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김밥을 먹었다. 윤영희선생의 말로는 왜 두 번째로 맛이 있을까? 그것은 첫 번째로 맛있는 것은 자기집사람이 싸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가지고온 방울 도마도를 먹고 그리고 오랜지를 맛보고 절 마당 한쪽 편에 서있는 함박꽃나무를 보러 갔다. 산목련이라고 말했으나 함박꽃나무였다. 바로 옆에는 겹 벚꽃나무서 있고 아직도 몇 개의 꽃을 달고 있는 것은 이곳이 대구와 온도차이가 매우 많이 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금낭화를 사진에 담고, 느티나무아래 디딜방아 절구통을 화곡암 선생이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스냅을 담았다. 순간의 표정들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희망을 주는 것 같다.
함박꽃
오늘은 돌아 가는 길에 거조암에 들리기로 했다. 영천 군위 경산 쪽에 있는 조계사 사찰은 모두 팔공산 은해사의 암자들이라고 한다. 거조사도 일연스님이 한동안 거했던 곳이라고 하고 영산전은 국보로 지정된 건물이라고 한다.
팔공폭포 아래쪽에 시원한 계곡 물속에 담구어 놓은 수박 먹을 생각하니 자연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려오는 길에 조인숙선생과 이영환선생의 소동파의 적벽부를 외어 읊는 목소리가 푸른 팔공 골자기에 가득히 넘쳤다. 무엇을 읊는지 몰라 다시 물어 이메일로 받은 전 적벽부의 일부를 여기에 올린다. 두 분의 실력은 적벽부 뿐만아니고 중국에 관해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배울 것이 많은 분들이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소동파(蘇東坡)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 범주유어적벽지하.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기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서 노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 오고 물결은 일지 않네.
擧舟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거주촉객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배회어두우지간.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니, 조금 있으니 달이 동쪽 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횡강 수광접천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네.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종일위지소여 능만경지망연. 호호호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탄듯하여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 飮酒樂甚 ?舷而歌之 표표호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훨훨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歌曰:桂棹兮蘭? 擊空明兮?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가왈: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광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삿대로 물에 비친 달을 쳐서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쪽에서 바라보네.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기성오오연 여원여모 여읍여소.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蚊 泣孤舟之釐婦. 蘇者 秋然正襟 危坐而問客曰 : 何爲其然也? 여음요요부절여루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소자추연정금 위좌이문객왈 : 하위기연야?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하고 외로운 배를 의지해 살아가는 과부를 울게하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客曰 :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객왈 : 월명성희 오작남비 차비조맹덕지시호? 손님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중략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소동파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려(流麗)한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폭포 관람대 옆에 세워진 정자에 도착하여 폭포수 아래 계곡 물에 시원해진 수박을 윤선생의 능숙한 배분 수완 덕분에 아무런 일 없이 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조인숙선생의 “푸른오월“과 “모란이 피기까지는“ 두 시를 낭송하는 목소리가 폭포소리와 어울려 詩中風이요 風中詩가 되어 많은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두편의 시를 여기에 올린다.
푸른오월/ 노천명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리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이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 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 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담 끼고 외딴길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씬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벋어나오던 길섶
어디에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 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루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묻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오후 3시 10분전 이곳을 정리하고 신령 쪽에 있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머물렀다는 거조암에 들르기로 하였다. 한참을 달려 3시30분경에 거조암에 도착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에 영산문은 증수를 하는 중이고 뒤편에 있는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다는 영산전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라고 했다. 영산전은 영주무량수전과 버금갈 만큼 오래된 고려 때의 건물이라고 했다. 이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있고 주변에는 5백이 넘는 나한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자기 얼굴과 닮은 나한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는 말을 듣고 한번 둘러보았으나 잘 알 수가 없었다.
밖 앝 왼쪽에는 산신각이 있고 그 앞에는 백여 개 관등이 달려 있는데 산바람에 살랑 거리고 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조용하게 지낸 석가탄신일 때 설치해 놓은 것 같아 매년의 분위기와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저조암 영산전
오백나한
영산전 앞에 세워 놓은 설명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국보 제 14호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622
거조함은 원래 거조사라하여 신라 효성왕 2년 (738년) 원찬조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다고 도하고 경덕옹때 건립되었다고도 한다. 근래에 와서 거조사는 은해사의 말사로 편입되어 거조암이라 불리워 지고 있다. 거조암은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이미 아미타불이 항상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전은 거조암의 본전이며 해체 보수할 때 발견 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 우왕 원년(1375년)에 건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래 고쳐지었다고 한다.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계(柱心包系 )형식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5량구조(五樑構造) 맞배집으로 공포, 보(樑)의 단면, 솟을 합장[八字臺工], 포대공(包臺工) 등에서 일부 古式을 볼수 있다. 형태 및 구성 기법에 있어서는 백제계 고려 건축을 엿 볼 수 있으며 일반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고쳐 지으면서 많은 부분이 변형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안에는 526분의 각기 다른 표정의 석조나한상(羅漢像)을 모시고 있다.
오후 4시가 넘어 거조암 앞 마당에서 오늘 온 산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올 때와 같이 차를 나누어 타고 대구로 돌아왔다.
오늘 만난 나무들은 함박꽃나무, 쪽동백나무, 개회나무, 층층나무, 비목, 말채나무 초본류는 금낭화, 애기똥풀, 천남성을 만났다.
오늘 하루도 아름답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산행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오늘의 산행기를 마친다.
즐거운 웃음으로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 진 것 같은 하루였다. 참가한 모둔 분들에게 감사을 드린다.
지산
* 사진 올리는 것이서투러서 한글파일로 올렸으나 편집한 것이 다깨져서 다시 어물어물 고쳐 올렸습니다. 오탈자가 많습니다. 고치도록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회원들 한사람 한사람 멋진 사진도 찍어 주시고 , 시원한수박을 공산폭포 아래 정자에서 맛있게 먹게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올해 처음 먹어본 수박 정말 맛있었습니다 회원들 모두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오늘의 수박은 선생님의 정성이 깃들어져 한결 더 시원했습니다. 오월의 창공이여!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일기 세세하고 정감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모든 나무, 꽃,들을 일일이 사진으로 올려주시고 시와 적벽부까지 다양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마무리 정리는 언제나 선생님께서 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자상한 인터넷 교실로 함께 하지못한 저도 반 분은 풀었습니다!
개인사진 한 컷 한 컷은 다음을 기약하는 미끼? 인것도 같고...
노천명님 "푸른오월" 의 싯구처름 그렇게 그렇게 나의 오월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천년선생! 감사합니다. 팔공폭포의 아쉬움을 다음달에는 달래 볼수있기를 바랍니다. 다음달에는 1박2일 코스로 구룡포 해변에 갈 예정입니다. 구룡포경북대학교 수련원교수숙사에서 1박을 하고 포항죽도시작에서 횟감을 작만하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진 곳에서 소주한잔에 한학기동안의 회포를 풀고 다음날은 오어사, 장기(송시열선생과 다산선생유배지, 장기읍성, 최남선선생의 배일대<장기일출 조선10경중의 한곳>을 둘러보고 돌아올 예정입니다. 아직 날자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6월 18일(수), 19(목)요일로 잡을가 생각중입니다. 이번 수요일 (28일) 의견수렴을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합니다
징검다리 건너다 물에 빠진 사람 없나요? 사진에 보니 비틀거리며 곧 뺘질 듯한 사람이 보이던데요
그런 사람 없었습나다.ㅎ
@솔바람 그 참! 넘어진 사람이 없다니 다행이긴 한데요 웬지 마음 한켠에선 불만이 솟아남은 왜일까요?(요놈의 나쁜 심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