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공부 ㅡ심지(정신,자성)와 경계
@ 심지가 요란해 지는가 ?
경계가 나를 괴롭힐 수 없다. 내 마음은 내가 만들고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진실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알게된다.
그동안 마음공부에서 심지가 (경계를 따라) 요란해 진다고 정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일상수행의 요법에 보면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고 하셨다. 여기서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는 것의 바른 뜻은, 요란함이 나의 어두운 생각(분별과 주착심)에 따라 있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어나는 마음의 원인이 경계가 아니고 실제는 나의 분별에 있는 것이다.
일어나는 마음도 내가 만드는 것인데 하물며 경계를 따라 심지가 요란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공부서 경계가 내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여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자연히 경계가 심지를 요란하게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는 원래부터 요란함이 없다(心地無亂). 심지는 언제나 청정하며 두렷하고 고요하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자성광명(自性定)이 나타난다. 요란해지는 것은 경계에 착된 마음일 뿐이며 심지가 아니다. 무시선에서 보면 도심이 상한 마음이다. 이는 하나의 착각이요 전도 몽상이며, 분별의 잠을 자고 있을 때 스스로 일어나는 무명의 마음인 것이다.
정신 수양장에서 정신이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두렷하고 고요한 마음] 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분별 주착이 있는 마음은 심지가 아니다. 심지는 푸른 하늘과 같다. 자성과 정신과 심지는 하나이다. 요란함이 없고 어리석음과 그름이 없다. 천만 경계에 부동한다. 반면에 경계를 따라 요란해 지는 것은 분별 주착심이요. 전도 몽상한 사념(思念)의 구름이다. 푸른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어서 천둥 번개가 친다 하여도 푸른 하늘은 그대로 고요히 있는 것이다.
대종경 수행품 1장의 내용중에 [심지에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이를 대조하라고 하셨다. 이 법문은 처음부터 일상 수행의 요법의 실천을 말씀하고 있다. 즉 경계를 따라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대조하라는 말씀이다. 심지 그 자체가 요란하다는 뜻이 아니다.
심지에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푸른 하늘에 구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심지가 요란한 것이 아니다. 심지에는 나도 없고 경계도 없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마음공부가 한층 더 재미있게 열려 갈 것이다.
[ 요란한 마음이 묘유인가 ? ]
또하나 심지가 요란해 진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요란한 마음(어리석음 그름)을 묘유로 잘못 보고 있다. 이를 진리의 작용이라고 정의한다면 대조하여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묘유란 자성광명이 텅빈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작용을 말한다. 적적성성(寂寂惺惺)에서 적적이 진공이요 성성이 묘유이다. 무시선에서는 천만경계에 부동하는 마음이며, 깨끗한 청정심으로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내는 마음이다. 이것이 곧 묘유다. 경계에 착된 마음은 결코 묘유가 아니다.
그리고 수심결에서 <성품은 작용하는 데에 있다.> 라는 말씀을 "요란함이 성품의 작용이다" 는 잘못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요란함(어리석음. 그름)은 성품을 여인 경계에 착된 마음이며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탐진치에 가린 무명심이다. 성품의 작용은 텅빈 마음을 통해서 맑고 밝고 훈훈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ㅡ [행복을 여는 마음공부] 중에서.
*경계(境界) ?
⑴ 인과의 이치에 따라서 일상생활속에서 늘 부딪치게 되는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 염정미추·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 인간 생활의 모든 일이 다 경계이다. ⑵ 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이 경계가 된다. ⑶ 시비·선악이 분간되는 한계.
인간은 항상 경계속에서 살아가고, 경계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되며, 경계가 곧 삶의 내용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경계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또는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으로 구별 하기도 한다. 사람은 항상 경계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삼대력도 현실 경계속에서 길러지는 것이요, 그 사람의 참 가치도 경계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천만 경계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경계에 끌려가거나 물들지 않고, 나와 경계를 다 잊어 버리고 하나가 되는 경지 곧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가 바로 해탈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