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모여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진정한 염불 수행자는 망상이나 사견을 품지 않으며, 오직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일념에만 집중합니다. 그 외에 무슨 다른 생각이나 견해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정토에 왕생하여 아미타불을 뵙기를 바랄 뿐입니다. 설령 다른 이들이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더라도, 우리는 그저 성실하고 진실하게 염불을 계속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염불은 유일하게 공유하는 수행이며, 이는 잡념이나 불필요한 요소가 섞이지 않고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수행입니다. 경전 강의를 들을 때는 온전히 집중하여 들어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분석하거나 논쟁할 필요가 없으며, 그래야만 비로소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토론을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불법(佛法)을 세속적인 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염불은 일념의 경지를 닦는 수행이며 경전 청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일념의 경지에 이르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일에 대해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경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듣는 사람은 마명(馬鳴) 보살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설한 원리, 즉 이름과 말, 그리고 마음의 개념이라는 형상을 초월하는 경지를 체득하게 됩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동시에 온전히 닦게 되는 것입니다.
◎ 성인은 외부 환경을 없애려 하지 않고 마음을 닦지만, 범부는 마음을 닦지 않은 채 외부 환경을 없애려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수행에 있어서는 환경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할 때는, 그곳의 중생들과 인연이 있는 장소를 택해야 비로소 그들에게 진정한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장소가 자신과는 인연이 맞지 않더라도 다른 훌륭한 스승에게 적합하다면, 우리는 그곳의 중생들이 그 스승에게서 배워 이익을 얻기를 바라며 기뻐하고 찬탄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중생을 널리 구제하기 위해 그들과 폭넓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 불법(佛法)을 널리 펴는 진정한 공덕과 이익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번뇌를 다스리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중생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부추기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스승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중생을 구제하는 일은 올바른 조건과 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마치 과일을 따는 것과 같아서, 먼저 익은 것을 수확하고 익지 않은 것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는 이치와 같습니다.
◎ 설법이나 도(道)를 전하는 일은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인연이 무르익는 대로 따르며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는 것이 근본 원칙입니다. 조건이 성숙하면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세존께서도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단 한두 사람의 인연이 무르익었을 때는 그들을 위해 특별히 법을 설하셨고, 대중의 인연이 성숙했을 때는 많은 이들을 위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인연에 따라 가르치고 청중의 근기에 맞춰 지도할 때 비로소 중생에게 진정한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시대는 질서가 잡힌 시기와 혼란스러운 시기로 나뉩니다. 질서가 잡힌 시기에는 통치가 투명하고 올바르며, 사람들의 마음이 정직하고 진실하여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따라서 확립된 규범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수행의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체계나 규정이 부재하고 환경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효과적인 불법 수행을 하려면,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합니다. 혼란한 시기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개인적인 수행은 가능할지 몰라도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곧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적절한 방법을 이해하고, 이를 숙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공법사법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