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고 했다.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최고라고 한 만큼 용인에는 명당이 많다. 실제로, 용인에는 정몽주, 채제공 선생 등 역사적 인물을 비롯해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 삼성의 이병철 회장 등의 묘들이 자리한다. 용인은 속리산에서 북진해 경기 남부의 지형을 이룬 한남정맥의 간룡(幹龍, 내룡과 같은 말로 풍수지리에서 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의미)에 위치하며, 함박산→부아산→석성산→마성터널→법화산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간룡에 따라 물줄기로 두 개로 나뉜다. 이가 운데 한국민속촌(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41㎞, 경부고속도로 수원 I.C에서 동남쪽으로 3㎞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22만평의 부지 위에 마을 뒷산이 병풍처럼 두르는 산기슭 아래로 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마을 가운데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주변에 농경지가 펼쳐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配山臨水)의 터전이다. 한국민속촌은 민족문화 자원을 보존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을 위한 학습장 및 내외국인을 위한 전통문화의 소개 등을 설립 취지로 1973년 착공한 후 1974년에 완공됐다. 실제 조선후기 또는 근대 건물을 각 지역에서 그대로 가지고와 현재의 부지에 옮긴 옛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한 야외박물관인 셈이다.
한국민속촌은 기성 세대들은 아늑한 고향의 정감과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체험할 수 있으며, 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국제관광지다. 전국 각지에서 옮겨온 가옥들과 40여 년 동안 가꿔온 수목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속에 15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국내 최고의 테마파크로 삼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당대의 사농공상의 계층별 문화와 무속신앙, 세시풍속 등을 재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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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방별로 특색을 갖춘 농가, 민가, 관가, 관아, 서원, 한약방, 서당, 대장간, 누정, 저자거리을 비롯하여 99칸 양반주택 등 대토호가가 재현되어 있고, 이곳에서는 농악, 줄타기, 마상무예, 전통혼례식 공연 및 기타 특별한 이벤트를 절기별로 갖고 있을 정도로 컨텐츠가 무궁무진하다.
99칸 양반주택은 일제시대 친일파 이근택이 사용하던 집으로, 지난 1973년 민속촌 건립 당시 수원 남창동에서 이전 복원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건축 연 대나 건축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집은 지난 1950년 6.25 전쟁 당시 수원지방법원, 지방검찰청의 임시청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여인천하’, ‘대장금’, ‘다모’ 등 역사 드라마물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장터에 이르면 증편, 인절미, 북어구이, 빈대떡, 파전같은 우리 고유의 떡과 안주류에, 순 재래식으로 담근 동동주 등을 맛볼 수 있다.
볼거리는 더욱 많다. 관아는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공무를 집행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정문, 행랑, 중문, 정청과 내당이 있고, 뒤뜰에 감옥이 자리하고 있다.
중부지방 양반가는 앞서 말한 속칭 99칸 양반주택으로, 1861년 수원성 안에 지어졌던 건물을 그대로 옮겼다. 솟을대문, 줄행랑, 바깥사랑, 안행랑, 안사랑, 내당, 초당 등 유교를 숭배하던 상류층의 모든 살림공간이 갖추어진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제주 민가는 집이 낮고 3면은 돌벽으로 쌓았다. 시원한 큰 마루와 부뚜막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울릉도 민가는 겨울이 길고 비바람, 눈, 습기가 많아 이중 외벽을 치고 통나무 귀틀벽으로 꾸몄다. 물론 울릉도에서 모두 원형대로 옮겨지었다. 그러나 ‘민속촌’하면 사람들은 식상하게 생각한다. 외국인 손님이 오면 ‘보여줘야’ 하는 의무적인 관광코스이거나,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가는 판박이 관광지쯤으로만 여긴다. 한 마디로 너무 이름난 관광지라 감흥이 사라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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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민속촌의 화려한 가을을 만나 보라. 비처럼 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수북수북 쌓인 나뭇잎을 밟으며, 청사초롱 이끄는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거기 조선의 가을이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이내 마음은 안에서만 열 수 있는 황금보화 가득한 보물 동굴이 된다.
장독대 위에도 가을이 가득히 담겨졌다. 부엌에 사는 조왕신이나 변소에 사는 측간신, 대문간에 사는 수문신, 장독대에 사는 철융신, 마구간에 사는 우마신, 굴뚝에 사는 장군신이나 광에 사는 업신들도 초가지붕 위에 멋스럽게 쌓인 낙엽들, 알몸으로 처마 끝에 매달려 곶감이 되어가는 주황빛 감들을 보고 있을 게다.
한국민속촌은 한국의 각종 담장과 굴뚝의 집합소다. 아니, 수준 높은 퍼레이드를 ‘용인(龍仁)’은 진정으로 ‘용인(容認)’하고 있는가.
사라져 가는 우리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이곳 사대부 양반가와 평민의 담장, 그리고 굴뚝에 올올히 배어 있다. 흙돌담, 토담, 바자울, 와편 담장 등 각종 담장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기라성처럼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토석담과 옹기굴뚝의 조화 하며 울타리와 잘 어우러지는 나무 굴뚝도 보인다. 부엌 밖에 설치한 아궁이와 굴뚝도 이에 지지 않는다.
‘기쁠 희(喜)’자를 두 개를 더하면 ‘쌍희(囍)’가 된다. 바로 이 ‘쌍희(囍)’ 문양 글자 앞에 서 있다. 기쁨이 곱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굴뚝과 합각의 모습이 보인다. 이에 질세라, 부귀와 영화의 상징인 모란꽃 문양도 그 화려함에 압도당하게 만든다. 고풍스런 담장 안의 굴뚝, 참으로 아름답다 못해 곱디 곱다. 저 굴뚝의 사방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보는 위치에 따라 제각각 다른 문양을 뽐낸다. 모란 등 꽃들과 함께 와편(기와) 담장의 조화가 더욱 흠뻑 묻어난다. ‘쌍희(囍)’가 보이는 굴뚝 뒷켠으로 아낙네의 콩을 삶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옆 주련의 글귀는 ‘심지광명월재천(心地光明月在川)’이니 ‘마음의 본바탕은 광명함에 있음이요, 달은 개울가에 도도히 흐른다’는 의미인가.
돌담을 너머 바라 본 한국민속촌의 초가는 고향의 모습 같다. 정겨운 초가의 마루 앞 돌담을 끼고 돌아가면 우물가가 나오고, 바로 그 곁으로 아낙들의 웃음 소리도 들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담아보지 못한 장 담그기를 용기 내어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먼저 좋은 콩을 고르고 콩을 삶아서 메주 틀에 넣고 메주를 만들고 메주를 잘 띄워서 항아리에 넣고 장을 담근다. 많은 항아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왠지 부자가 된듯 하지는 않을까. 비록 궁핍의 흔적이 역력한 사람이더라도 뒤뜰의 장독대는 햇살을 받아 더욱 넉넉하리니 모든 사람들이 한국민속촌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어가리라./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