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문학 제 37집 원고
미인 홍수 시대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갔는데 입구에 '내부 수리중’이라고 쓰여 있어서 천사에게 사연을 물어 본즉 한국사람 때문이란다. 한국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사람들의 얼굴을 감쪽같이 미인으로 바꾸어 누가 누군지를 알 수가 없어서 식별감식 CCTV를 설치하느라 잠시 문을 닫게 되었다고 ...... 사실 요즈음 TV를 봐도 그렇고 도회지의 시가지를 거닐 때나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트를 오르내릴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을 산책할 때, 어딜 가나 만나는 사람 모두가 미인들이라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술집에 가보면 놀라 자빠질만한 미인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비행기 승무원을 봐도 그렇다. 도대체 어디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을 불러왔을까 싶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에 예절까지 고루 갖춘 수많은 여성들이 공항에 흘러넘친다. 이들 모두 한결같이,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개성 있는 얼굴에, 거기에다 세련된 옷차림까지 겸하고 있으니 금세기의 한국은 미인 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눈과 입이 작고 계란 모양의 갸름한 얼굴을 한, 옛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모두가 크고 길고 멋있는 대형화된 시원한 모습들이다.
삽시간에 밀어닥친 서구화의 물결, 어느새 변해버린 서양식 식단, 손바닥 크기의 지구촌에 그물처럼 얽혀진 사이버 미디어의 영향, 이런 것들로 인해 인종과 사상, 문화 예술 종교 등에서 공동 운명체가 된 탓일까 ? 마치 서구 유럽의 한 지역을 한국에다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날이 갈수록 발달한 화장술에 선진 성형의술까지 가세하여 너도 나도 잘 생긴 얼굴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그야말로 미인 천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앞으로는 미인을 뽑는 대회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미인이기 때문에 못 생긴 사람 뽑는 대회가 오히려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잘 생긴 사람보다 못 생긴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긴 얼굴들을 한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솜솜 뜯어보면 진정 아름다움이 아닌 경우가 있어 실망할 때가 많다. 모두가 특징 없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데다 마치 스티커 사진처럼 만들어, 틀에 박힌 인상을 준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꾸며 만든 아름다움에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왕과직(矯枉過直), 굽은 것을 바르게 하려다 오히려 더 굽게 되는 과오를 범한 이들을 볼 때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포도아가씨에 뽑힌 어느 아가씨가 가는 곳마다 예쁘다는 칭찬만 들어오다가 어느 날, 감쪽같이 얼굴을 뜯어고쳐 자기보다 더 예쁘진 절세미인의 친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성형수술을 했는데 의사의 실수로 그만 얼굴을 망쳐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가늘고 갸름했던 눈을 왕방울 만하게 만들거나 억지 눈썹을 붙여 자연의 미를 손상시킨 이들, 전체적 밸런스가 맞지 않아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문제는 모두가 비슷비슷하여 처음 보는 사람도 낯설지 않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이란 점이다. 예쁘고 잘 생겼는데도 왠지 정이 가지 않고 곧 식상해진다. 때문에 정작 내가 바라는 미인을 찾기가 매우 힘이 든다. 미인을 고르는 능력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미인에 대한 옛, 묵은 향수가 남아서 일까 ? 진정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장희빈 같은 아름다움보다 신사임당 같은 아름다움을 더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속에서 배어나온 아름다움이 겉에서 치장한 아름다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중년이 되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 자기가 살아온 모든 것이 자기 얼굴에 녹아 흐르기 때문이리라. 얼굴의 생김새는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얼굴의 관리 문제는 스스로 충분히 조정이 가능하다. 천사의 얼굴을 하고 악마 같은 행동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악마같이 생겨도 천사처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우리 속담에 ‘뚝배기보다 된장 맛’이라는 말이 있다. 겉모양보다 속에 든 것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리라. 같은 항아리도 꿀을 담으면 꿀 항아리가 되고 똥을 담으면 똥 단지가 된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야 좀 투박하고 모양이 덜하면 어떠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름다운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
청산도를 찾아
김천에서 새벽 5시의 이른 시간에 출발했건만 9시를 훌쩍 넘은 시각에 해남을 거쳐 완도 터미널에 도착했다. 혹시나 싶어서 뛰어 들어 갔더니 이미 9시30분 배편은 매진되었다. 10시 30분 출발, 왕복 티켓을 사고 나서, 두리번거리다가 항구 앞쪽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백반을 시켰더니 생선 등10여 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음식에서 섬 특유의 비린내는 약간 나지만 배는 부르다. 늦은 시각인데도 식당 안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배가 부르니 이것저것 보이는데 눈길이 멈추는 곳에 ‘늙은 동백의 고백’이라는 시를 적은 걸이 식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 할까? 부두에서부터 반기는 것은 하얀 백구들이다. 날개의 윗부분은 비둘기처럼 갈색이지만 그 외에는 모두 하얗다. 털썩 물위로 앉는 모습에서 물갈퀴도 갖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만에 바다갈매기를 모처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참 넓고 깊은 그리고 청정의 검푸른 바다다. 2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우선 완도 전망대를 올라 가 보기로 했다. 손에 잡힐 정도라서 쉽게 출발했건만 계단을 오르다 보니 꽤나 힘들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그래도 이 정도는 이겨낼 만한 하니 다행이다. 완도 주변의 섬들이 잘 보인다. 특별히 장보고의 본거지로 유명한 이곳 아니던가? 전망대에서 보니 강진군과 완도 사이엔 완도 대교가 아름답게 벋어있었다. 약 10 리 거리를 연륙교로 연결시켜, 지금은 많은 수산 자원을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아주 훌륭한 고장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완도항을 떠나 청산도로 향하는 카훼리에는 400여명이 함께 승선했다. 사이클를 가지고 탄 분, 각 지역 산악회 회원들, 그리고 가족 단위 여행객 등 주로 젊은 층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카훼리의 후미를 쫓아오는 바다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아이와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갈매기의 날렵한 비행 솜씨가 이채롭다. 태양은 이글거리지만 배에 의해 부서지는 바람은 차다 못해 춥다. 출발한 지 약 50분 후에 드디어 청산도에 도착했다. 청산도에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과거의 어려웠던 삶을 보여주는 생생한 삶의 모습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소청산도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신비한 섬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어서 오겨! 어디서 왔소이? 구경 잘~허고 가쇼!” 만나는 마을주민들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먹고 사는 사람들... 한 때는 신선이 살았다고 해서 선산도(仙山島)라 불리어지기도 했으나 언제부터인지 하늘도 산도 바다도 푸른 섬, 그래서 청산도라 일컬어졌단다. 전남 완도군 다도해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청산도, 바다를 배경으로 계속 이어지는 청보리 밭, 길 양편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유채 꽃밭이 나지막한 산과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기에 1960 년대 한창 유행했던 빨강 파랑 노란색의 스래트 지붕과 돌담장으로 이어진 마을 풍경은 타임머신을 타고 반세기를 되돌아온 느낌을 준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머잖아 스래트 지붕이 헐리게 된다니 아쉽기도 하다. 청산도(靑山島)의 첫인상을 한 번 읊어 봤다.
돌들이 출항소리를 들을 때면
파도는 그들을 씻긴다.
소금에 절여 절여져
갯 모래가 되고파 씻고 또 씻는다.
쪽빛에 눈이 시리다.
아주 눈물 섞어 씻는다.
솔들이 아침에 눈뜰 때면
바람은 저들을 빗긴다.
갯 내음에 향을 내고
계절에 더하는 푸른 빛,
깊은 숲이 되고파 빗는다.
정말 한숨 섞어 빗는다.
봄나들이 온 느린 걸음걸음을 위해
억만 번의 붓질로나 될까?
꿈에서나 본 듯한 청산도(靑山圖)를 내어 놓았다.
도항을 따라 걸으니 ‘슬로우 길’이라는 푯말이 안내원을 대신하고 있는데 1,2,3코스가 있는데 마을회관 앞에서 3,000보 스티커를 받고 1번 코스를 택하여 출발했다. 다시 새끼줄을 당겨 종을 치고 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윗길은 바로 서편제 촬영지, 봄의 왈츠 세트장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아래 길이 슬로길이다. 느림의 풍경이 가득한 곳,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저절로 천천히 걸어가게 된다는 슬로우 길, 우리 일행은 윗길을 택했다. 청산도 연혁 안내판을 보니 나주 임씨들이 청산도에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유채꽃이 보이고 황토 꼬부랑길과 막 논에 물을 댄 모습이 눈에 보인다. 바로 여기가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서편제의 촬영지라니! 딸에게 득음을 가르치기 위하여 두 눈을 멀게 한 아버지가 소경이 된 딸을 이끌고 나오던 그 길이다. 진도아리랑의 소리 울림이 희미한 기억으로 흐르던 곳. 한국인의 정서 자극에 강렬하게 다가간 소설가 이청준의 명작 아니던가? 계속 길을 가다 보니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범(호랑이 형상)바위로 가는 길에서 또 6,000보 스티커를 받고 돌탑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니 짙은 솔 향과 바다 바람이 어우러져 묘한 흥을 준다. 다리도 아프고 중도에 쉬고 싶지만 만보 인증표를 받기 위해 계속 걸었다. 서편제의 영화 프레임이 걸려 있다. 바다는 썰물 때라 그런지 물이 빠져서 일명 돌-그물이 훤히 보인다. 해변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시원한 물 한 잔을 샘터에서 떠먹고 페트병에도 담았다. 놀랍게도 물맛이 짜지 않고 평소 먹는 맛이다. 마을의 집들은 대궐이 아니라 모두가 작고 아담하다. 벽들엔 청산도의 특산물을 소개하는 사진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그 길을 돌아 나오니 처음 갈라졌던 도항이 보인다. 3시간 30여분 만에 드디어 출발했던 곳에서 만보 인증서를 받았다. 2시를 약간 넘기고 있었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시장에서 팥죽 칼국수(4,000원), 전복죽(7,000원), 호박죽(4,000원) 등을 팔고 있다. 팥죽 칼국수를 시켰는데 설탕은 덤으로 주신다. 도항에서 약 1시간이상을 기다려 4시 반 배를 타고 청산도 여행을 마감하고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 오후 9시30분에야 김천에 돌아왔다. 여행은 경쟁이 아닌 공존의 지혜를 알아가는 과정의 습득으로 자연과 동화되는 삶의 추구야 말로 비록 느리지만 서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한결같은 템포로 참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여행의 자격이 부여되는 것 같다. 슬로우길, 가파른 낭길에서 보이는 청정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약력>
*김천시 감천면 출생
*<시세계> 신인상 수필부문 당선
*한국문협 및 경북문협 회원
*문학세계 문인회 회원
*푸른문학사 문인회회원
*경북중등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협 김천지부장 역임
*매계문학상 운영위원
*김천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