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2월 31일 주일설교
설교제목: 하나님의 사람답게 삽시다
설교본문:골 3장12에서17절
사람이 언제 아름다워 보입니까? 사람이 외모와 주변을 잘 가꾸어서 생기는 아름다움은 시선은 끌수 있으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만일 외모적 아름다움이 최고의 기준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원망을 들으셔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모와 환경적인 아름다움을 최고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고, 삶의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었을 지라도, 뒤돌아보고 고칠 줄 아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을 제대로 정리할 줄 아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뒤돌아설 때와 앞으로 나아갈 때, 감당할 때와 놓을 때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것도 참 아름답습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지킬 때와 버릴 때, 잠잠할 때와 말할 때’를 파악하여 바르게 처신하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한 해가 바뀌는 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교회 속에서의 삶과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앞날을 더욱 향상시키고, 더욱 훌륭한 삶을 가지기 위하여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도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인생은 아닙니다.
자신의 나이 들어가는 얼굴 즉 자신의 지나온 세월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자신의 인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냐 하는 것입니다.
나이들어 갈수록 생기는 고집이나,
젊은 사람들의 자신감과 자유를 넘어 선 방종은 스스로 고쳐야 할 일들입니다.
고집이나 방종이 인격이 되지 않도록 애쓰는 자는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존재입니까?
오늘 바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다운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 무엇으로 우리를 꾸미고 치장하며 살아야 할 지를 살피고 결단하며 한 해를 마감하는 주일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자신의 신분을 알고 행할 때의 하나님의 사랍답게 사는 것입니다.
12절 상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신분을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자처럼, 하나님의 사랑하신 자처럼’으로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 하나님처럼 거룩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은 자라고 말해야 쉽게 이해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니, 우리의 신분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에게 뽑혀진 된 제자이며, 성도요, 백성이고, 하나님 나라 시민입니다. 하나님이 뽑아 세우셨으니 하나님을 닮은 자로써 하나님처럼 살아야 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택하심을 받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루어야 할 두 가지 일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자들이 가져야 할 성품으로서의 신분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거룩한 자이고, 사랑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입니까? 거룩과 사랑이 어우러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사랑하는 자들이 될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있는데, 거룩함이 없거나,
거룩함은 있는데 사랑이 없는 것은
균형 잡히지 못한 모습입니다.
거룩함과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는 균형잡힌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여 이것이 없이는 주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화평함과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랑은 화평함과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함을 이루고, 사랑하며 화평함을 이루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거룩함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평하게 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닮기 위해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다운 신실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게 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으로 주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았는지 그 삶을 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렇게 우리들이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볼 때에 그들에게서 거룩하면서도 사랑이 있고, 화평을 이루면서도 하나님은 닮은 거룩한 모습이 나타날 때에, 우리는 서로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날마다 거룩해 지고,
하나님의 택함받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날마다 사랑과 화평함을 힘쓰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많아 질 때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마음들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해가 바뀌는 이런 때에,
성도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답게 날마다 거룩해 지고, 날마다 사랑과 화평함을 힘쓰며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라는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신의 신분답게 꾸민 성도는 아름답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을 꾸미기에 힘쓰며 사는데
베드로는 외모로 치장하는 것 보다는 마음을 온전하게 치장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역시 우리들이 꾸며야할 옷 차림은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12절의 ‘옷 입고’와 14절의 ‘매는 띠’라는 표현은 사람의 옷차림을 통해 마음에 무엇을 입어야할 지를 설명하고 입니다. 잘 꾸며야 성도는 아름다워집니다.
1)먼저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령으로 꾸며야 합니다.
12절,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그리고 14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것들 즉 마음을 꾸미기 위한 재료들인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그리고 사랑은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거의 비슷합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어다’고 갈 5:25이하는 권면합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하심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법이 없다,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라, 성령을 소멸치말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 해서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의 꾸밈의 재료는 성령님에게 맡기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께 맡겨야합니까? 이유는
성령은 상담자이시며. 성령은 후원자이시며. 성령은 위로자이십니다. 또 성령은 가르치시는 자이시며. 성령은 돕는 자이시며. 성령은 기도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삶 가운데 맺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이런 성령님으로 꾸며진다면, 참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써 모든 일을 대할 때에, 참으로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움이 있었는지에 대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에게 삶을 맡기고 살고자 힙스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2)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마땅히 예수님으로 치장하고 꾸며야 합니다.
13절,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했습니다.
용서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문 분야입니다.
물론 사죄함은 아버지께로 나오지만,
용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신 분은 예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해서
마치 주님이 가르치신 주 기도문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6:12이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했습니다. 사실상 주기도 중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여기가 아닌가 합니다.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는 뜻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하면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참 어려운 기도이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늘 용서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늘을 공허하게 울리는 빈 소리 나는 기도가 되기 싶습니다. 허공을 치는 기도라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본문 13절은 용서의 전제가 ‘용납’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라고 했습니다. ‘서로와 피차’는 같은 용어입니다. 따라서 용납을 먼저 할 때에, 진정한 용서가 뒤따른다는 것을 말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답게 우리의 삶의 꾸밈에 있어서 중요한 단어는 ‘용납’입니다. ‘용납’은 장례 용어입니다. 장례 때에 우리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땅에 묻습니다.
시신을 묻을 때에, 같이 묻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이미 사람은 죽었는데, 무엇을 남겨두겠습니까? 사랑도, 미움도, 실수도, 자랑도 다 무덤에 묻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대하실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의 썩어질 육신과 함께 다 묻어 버리십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용납하시는 사랑입니다.
‘용납’이라는 말은 무슨 혐의 즉 무슨 의심나는 일들이든지 땅을 파고, 모두 묻어서 덮어버린다는 뜻입니다. 히 5:2, ‘저가 즉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너나 나나 인간으로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대 제사장같은 거룩한 자라해도 백성들의 연약함과 무식함과 미혹받은 것을 다 용납할 수 있다 즉 용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배신감을 느끼고, 신뢰감이 철저하게 부서질 때가 생깁니다.
이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 일이 우리 자신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입니까?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꾸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납하여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실천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꾸미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적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용납. 이것이 성도된 우리들의 삶에서 치장하고 꾸미는 재료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떤 치장을 해 온 것 같습니까?
부끄러운 치장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하고 살았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꾸미기를 애쓰셨습니까?
이런 것 저런 것, 인생 중에서 자랑할 만한 것으로 자신을 꾸며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리고 한 때는 자신에게 자랑거리가 된 것 같았으나, 결국은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니라면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용납이 아니라면,
그 외의 것들로 우리를 꾸미고 치장하려 한것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 해가 갑니다.
무엇으로 자신을 꾸며서 아름답게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용납으로 서로 아름답게 꾸며보는 성도된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의 바른 삶의 목표를 가질 때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담담하게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는, 한 몸인 교회를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바른 삶의 목표는 공동체의 평강입니다. 서로가 평강을 누리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강입니다.
요한복음 20:19,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21절에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27상반절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 그 신분 답게 살아갈 때. 즉 거룩함과 사랑함과 화평하게 함을 실천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으로 나아가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용납으로 서로 꾸미며 살아 갈 때
비록 세상이나 물질이 주는 평안은 없을 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평강, 심령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참된 감사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는 참된 목표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빌 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모든 지각보다 휠씬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평강은 능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 이러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각에 뛰어나 우리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같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한 몸이요, 한 공동체인 우리 교회를 지키도록 기도에 힘쓰는 성도된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고도 겸손하게 돌아보면서 신앙 점검을 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귀한 말씀으로 오늘 본문을 마치고 있습니다.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을 할 때! 일을 할 때! 그때 모든 것을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 그리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날마다 거룩해 지고,
하나님의 택함받은 성도이기 때문에, 날마다 사랑과 화평함을 힘쓸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용납으로 서로 아름답게 꾸미고자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자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평강으로 하나 됨을 지키고자 힘쓰며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자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감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므로 한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시고 또 새로운 한해를 감사함으로 기대하며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베드로는 네 가지 ‘처럼’을 강조하면서 인생이 살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종처럼’ 근신하면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자식처럼’ 순종하면서 사욕을 본 삼지 말고, ‘거룩한 자처럼’ 행실에 거룩한 자 되고, ‘나그네처럼’ 두려움으로 지낼 것을 벧전 1:14-17에서 권면합니다. 일할 때는 종처럼, 섬길 때는 자식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자처럼, 세상살이에서는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