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인터넷을보고 하노이 지사를 하겠다고 자처한 이래 하노이 결혼은
줄잡아 650내지 700여명을 성혼시켰다.
다른 어느 지사보다도 특별한 말썽도 문제도 없이 2012년까지 10여년을 사업 파트너로 일했다.
중국 이소장처럼 위장결혼으로 추락하지도,베트남 최00씨처럼 서류를 무책임하게 진행하지도 않았고,
우즈벡 박실장처럼 검찰의 핍 박을 당하지도 않고 무난하게 파트너 쉽을 끝까지 유지했다.
나이도 나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나는 항상 서사장의 노력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스스로 베트남어를 독학하여 말을 알아듣고 쓸 정도이며 그 열악한 하고 바쁜 상황속에서도
골프를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서 배울 정도로 서사장의 노력과 집념은 빛났다.
때로는 작은 불편이 있었지만 베트남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라와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정도로 깨끗하고 신사다왔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하향 추세는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인후염으로 쓰러저 병상에 있다가 회사 문을 닫을 무렵 서사장도 더 이상
베트남에서도 국제결혼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현지에 조그마한 수퍼마켓은 하나 열었더니
의외로 잘되어 네개를 열었다고 했다.
내가 회사를 접을 무렵 어느날 그는 연락도 없이 강변역 리제트 오피스텔에 있는 나의 사무실에 들렀다.
반가운 마음에 동네 식당에서 민물메운탕을 시켜놓고 옛날 이야기를 했다.
초창기 김K.R가 와서 100여명 맞선을 보고도 맘에 든 여자가 없다면서 귀국한 후 고소하고
민사소송으로 이기고도 결국 100만원을 못받은 이야기.고사장덕 분으로 골프를 배웠다는 이야기.
식사후 마지막으로 실내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자고 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다음에 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십여년간 참으로 아름다운 파트너였다.
서사장이 한국에 오면 꼭 전화하기로 했으니 그를 기다리겠다.
서사장은 지금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굳굳하게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끝